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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찰스 Sep 05. 2016

꽃말이 이상한 거야

이별 편

- 꽃말이 이상한 거야 -


"설탕물 한 잔만 가져다줄래?"

끈적이는 침대에서 아침을 시작한 나는 누구에게든 들려라. 하는 심정으로 물 한 잔을 찾았다. 그리고 곧 지쳐있는 몸을 일으켜, 서랍 세 번째 칸에 반듯이 접혀 있던 초록색 가을옷을 꺼내 입었다.


'세상에 행복은 없어. 행복한 순간이 있을 뿐이야.'

오랜만에 꺼내진 옷을 보니 얼마 전 책에서 읽은 문장이 생각났다.

"내가 오늘 특별히 이 옷을 고른 이유는, 이 옷이 나의 행복한 순간이었기 때문이야. 그동안 잔뜩 인상을 구겼던 여름이 천연덕스럽게 가을 흉내를 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도 없는 집이었지만, 옷걸이나 거울, 그림자들은 항상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늦은 오후였음에도 나는 꽃을 찾으러 가야 했다. 노란색 마리골드. 마리골드의 꽃말은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다만, 그 언젠가 오게 될 행복이 나는 지금 당장 필요했기 때문에 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그러니 내가 초록색 옷을 꺼내 입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리골드의 두 번째 꽃말은 '이별의 슬픔.'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아?"

"슬픔을 간직하고 싶은 거야? 아니면 행복해지고 싶다는 거야?"

모순적으로 보이는 나의 행동에 그림자들이 웅성거렸다. 나 역시 뭐가 맞고 뭐가 틀린 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일단 문을 열고 나서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었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더는 버틸 수가 없으니까.


문을 열어보니 세상은 여전히 경쾌한 발걸음 소리를 내며, 잠시 인사할 틈도 없이 바쁘게 흐르는 중이었다.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시간의 물결에 몸을 맡긴 뒤 나는 몇 송이의 꽃을 마주해야 했고, 또 가벼운 바람이 불면 쉽게 헤어지기도 했다. 흐름에 의해 만났던 그들은 매 순간 내게 정중했고, 조심스러웠고, 상냥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뿐이었다. 마리골드를 찾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겨우 꽃 한 송이를 찾고 싶을 뿐인데."

의미를 찾지 못한 채 흘러가는 시간과 만남들에 지쳐 내가 이야기했다.


"그런데 너는 왜 그 꽃을 찾는 거야? 네게도 꽃이 심어져 있었잖아."

마침 곁을 지나던 바람이 물었다.


"응. 붉은색 양귀비 꽃이었어. 그런데 기어이 그 붉은 꽃잎이 떨어졌거든."

"그래서?"

"꽃잎이 진 자리는 끔찍했어. 그래서 뭐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너무 외로워서. 그러니까 나는 그 자리에 마리골드를 심기로 한 거야."


어렵다는 표정으로 바람이 다시 물었다.

"왜 하필 마리골드야?"

"행복해지고 싶어서. 그렇다고 슬픔이 잊혀지는 건, 너무 슬프잖아."

역시 이상한 대답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애초에 꽃말부터가 이상한 거다. 행복을 기다리면서도, 떨쳐낼 수 없는 슬픔을 가지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슬픔을 붙잡고 있다가, 다가온 행복을 담아낼 손이 부족하면 어떡하지. 어쩌면, 놓지 못하는 기억이 내게 와야 할 행복을 못 오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꽤 오랜 시간을 흘러왔는데도, 나는 여전히 마리골드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다. 꽃을 찾았을 때의 나는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나는 창망한 하늘을 본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걷고, 움직이고, 흘러간다. 그러니 나도, 조금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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