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eTech Apr 07. 2018

자기중심적 만족

THE ReeAL MAGAZINE VOL.15 [ ENVY ] 中

돈과 행복이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고 우리는 쉽게 이야기한다. 나 같은 경우엔 수년전 발리에서 두 달여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서 그와 비슷한 짧고 굵은 깨달음을 얻었던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주로 오토바이로 이동을 했는데, 타이어가 녹아버릴 듯한 아스팔트의 열기에 짜증이 머리 끝까지 올라 인상을 박박 쓴 채로 신호를 기다리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고서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현지인이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더위 속에 바이커들은 헬맷 밑으로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고,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는 차량 안에서 창문을 다 내리고 담배를 태우며 해맑게 친구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내게는 너무도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적어도 그 순간 인상을 쓰고 있는 사람이 나뿐인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좀 더 지나고서 인도네시아로 이주한 한인의 이야기를 TV에서 보았는데, 그 역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나서 발리로의 이주를 결심했다는 내용이었다. 어쨌든 나는 발리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왔다. 사실 그곳에서는 대부분의 것들이 한국보다 불편했다. 일단 너무 더웠고, 교통 질서는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인터넷 속도는 아주 느리고 그나마도 끊겼다 접속되기를 반복했다. 사람들과의 의사소통 역시 원활하지 않았다. 문화적인 부분이나 식습관에도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차이들이 있었다. 한국과 비교해 절대적으로 우월한 것이 딱 하나 있다면 서핑하기에 적합한 파도, 단 하나뿐이었다. 그 외에는 세속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거의 모든 것이 한국보다 뒤쳐져 있다고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곳에서 행복했다. 뭐가 그리 좋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단순하게도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야 '더 시원한 에어컨, 더 빠른 인터넷 속도, 더 많은 TV 채널, 더 많은 돈이 반드시 행복과 비례하지는 않구나.’ 하는 현실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나 역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경우가 많았던 것을 기억해냈다. 20대 초반 스노우보드에 모든 인생을 걸고 세계 각지를 여행할 때도 그랬고, 30대가 되어서 캠핑과 서핑에 빠져 살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머니에 10원 한푼 없었지만 ‘오늘만 산다’ 심보로 나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사는 내게, 언제나 많은 이들이 “부럽다.”고 말하곤 했다. 


그렇지만 그런 패턴의 삶이 이어지다 보니 소셜미디어가 엄청나게 발달한 요즘에 이르러서는 알게 모르게 나 자신의 만족보다 타인의 만족, 즉 타인으로부터 받는 부러움에 대한 의식을 더 크게 하며 살게 된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예를들어 나 자신은 A란 선택만으로 크게 부담없이 만족할 수 있는데도, 조금 더 부담스럽지만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B라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그렇게 내린 B라는 결정 역시 그 나름대로의 만족은 느끼게 해주지만, 그 결정을 감당할 만큼의 부담에 결국 그런 부담조차 없는 다른 이들을 부러워하게 되는 어리석은 뫼비우스의 고리 안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부럽다.”는 감정을 전달한 경험은 별로 없지만, TV 에 나오거나 바로 가까이에 있는 누군가를 늘 부러워하곤 했다. 누군가로부터 늘 부러움을 샀던 나도 늘 누군가를 부러워했다는 이야기다. 

모니터나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전달되는 소셜미디어의 단편적인 사진 한 장, 텍스트 한 줄로는 결코 행복을 판단할 수 없다. 우리가 보는 평면 화면 속의 단편적인 모습과 비교해 인생이란 얼마나 다각도인가? 돈과 사랑, 우정, 명예, 실력, 건강 등 그야말로 다양하게 얽히고 설켜 있는 단위와 관계, 기준 사이의 적절한 밸런스를 찾아 유지해야만 비로소 건강한 삶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짧게 실소를 머금게 하는 순간적인 만족이 아닌, 삶 전체를 관통하는 포만한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선 말이다.

 

아주 얇은 섬유다발들이 모이고 나서야 완성되는 굵은 밧줄. 그게 바로 인생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99개의 섬유가 끊어져 있지만 단 하나의 섬유가 튼튼하다고 해서 그것이 건강한 밧줄이라고, 행복한 인생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끔 어떤 이들은 그 단 한가닥 건재한 섬유, 단 하나의 경사(慶事)만을 보고서 나머지 99개의 섬유가 굳건할 것이라 유추하고 튼튼한 밧줄이라고 멋대로 판단해버린다. 그래서 이제는 그것들이 얼마나 큰 허상인지 자성하는 목소리들도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온다. 


사실 타인의 행복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당장 나의 행복이 얼마나 근본적인지, 얼마나 타인 중심적인지를 정리해야 할 때라는 느낌이 든다. 나 자신은 만족하지 못하지만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 반대로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지만 나 자신은 만족하는 삶. 어느 쪽이 더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일까? 타인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제 나는 후자를 택하겠다.  



THE ReeAL MAGAZINE VOL.15 [ ENVY ] 2017 / AUTUMN

SCRIBBLE - 자기중심적 만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