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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Tech Apr 12. 2018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얼마 전, 교열에 관한 일본 드라마가 있단 사실을 알게 됐다.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地味にスゴイ! 校閲 ガール・河野悦子)’란 묘한 제목의 작품인데, 한 편 한 편 보다 보니 어느새 단 하루만에 전편을 정주행했다. 일본이나 미국 드라마는 국내 드라마에 비해 플롯이 단조롭지 않아 좋아하지만 어쩐 이유에선지 최근에는 잘 보지 않았던 관계로, 요 몇 년 사이에 본 유일한 일본 드라마다.

 

몇 년 만에 굳이 드라마를 찾아본 이유는 ‘교열’이라는 소재가 어떻게 드라마가 되어 극을 이끌어 가는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그런데 주인공 코노 에츠코 역을 맡은 이시하라 사토미(石原さとみ)가 너무 예뻐서 그녀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하나하나의 에피소드가 재미있게 금방 끝이 났다. 패션지 에디터 지망생이 아니라 지금 당장 화보에 등장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수준의 룩으로 극 전반을 활개하는 그녀가 패션지 편집부가 아닌, 같은 회사의 교열부로 배치가 되면서 교열을 배우게 되는 내용이다. 


드라마 속 다양한 에피소드를 보다 보니 자연스레 내 원고를 처음 교열자에게 넘겼을 때가 생각났다. 빨간색 펜으로 난도질된 페이지가 되돌아온 것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었는데, '교열법'이란 것을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던 내게 그런 교열자의 지적은 다분히 불친절하고 무례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나의 부족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납득할 수 없는 경우는 분명 있지만.) 


뛰어난 교열자의 경우 ‘사실 확인’에 철저함은 물론 함부로 수정할 수 없는 경우엔 ‘첨언’을 하거나 ‘사족’을 철저히 달아주었다. 이런 식으로 원고가 몇 차례 교열자와 작가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오탈자는 물론 잘못된 사실도 바로 잡히면서, 글의 방향이 조금씩 수정되어 결국 더 단단한 원고가 된다. 

이런 순기능은 반면교사들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가령 이런 예다. 한 권의 책을 보고 좋아하는 작가가 생겼다가도 그 작가가 직접 관리하는, 그러니까 교열 작업을 거치지 않은 작가 자신의 소셜미디어나 블로그를 통해 초고를 확인했을 때 적나라하게 전달되는 그들의 수준에 실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로 인해 결과적으로 나는 하나의 인쇄물이 가지는 가치를 더 크게 받아들이게 됐다. 온라인 상의 글은 언제든지 쓰고 지우면서 수정할 수 있지만 인쇄물은 그러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그 모든 과정이 세상에 남게 된다. 그래서 그 한계를 타파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고뇌하고, 그로 인해 보다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결과물로 승화된다고 믿는다.


드라마 속에서 자주 나온 대사가 바로 “그만하면 됐어.”다. ‘교열’ 과 ‘사실 확인’이라는 작업은 어떻게 보면 끝도 없는 이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객관적인 정보임을 확인하는 절차를 어디까지 용납할 것인지, 그에 필요한 작업의 시간과 노력의 양을 결정하는 매 순간이 교열자가 서는 기로의 연속일 것이다. 타인이 만족하지 못해도 본인이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가 있고, 모두가 “그만하면 됐다.”고 하더라도 본인은 절대 납득할 수 없는 순간도 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검증을 하더라도 그런 크고 작은 오류 따위에는 별 관심 없는 이들도 세상엔 많다. 


‘완벽한 사실’이란 것은 좀처럼 증명하기 어렵다. 과학적인 사실 조차도 시대에 따라 변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이는 윤리에 대한 기준조차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화하지 않는가. 그렇지만 그만큼 확인이 어렵고 당연해 보이는 사실이라도, 한 번 더 검증의 과정을 거쳐 도달한 결론이 있기에 ‘교열이란 작업이 가치를 가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THE ReeAL MAGAZINE VOL.13 [ CROSSROADS ] 2017 / SPRING

SCRIBBLE -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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