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 음식의 미스터리
대영제국이 만들어진 건,
영국보다 맛있는 음식을 찾으러 나선 결과다.
미국의 작가 마거릿 홀시가 남긴 이 뼈아픈 농담은 맛없는 영국 요리에 대한 세계적인 악평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실제로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은 영국 음식을 두고 "핀란드 다음으로 형편없는 나라"라며 대놓고 비판하기도 했죠. 세계를 호령했던 대영제국, 셰익스피어와 비틀스를 배출한 문화 강국이 유독 음식에서만큼은 혹평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만약, 이 악명의 중심에 영국의 가장 상징적인 음식, '피시앤칩스'가 있다면 어떨까요? 많은 이들이 피시앤칩스를 영국 미식의 발전을 가로막은 주범으로 지목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한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 국가의 정체성과 자존심, 그리고 씁쓸한 현실이 뒤얽힌 아주 흥미로운 미스터리 추적입니다.
모든 사건에는 배경이 있습니다. 피시앤칩스라는 '용의자'가 처음 등장한 19세기 영국은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는 공장 굴뚝과 귀를 찢는 기계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밀려든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에게 요리는 사치였습니다. 하루 12시간이 넘는 고된 노동 끝에 그들에게 필요했던 건, 지친 몸을 다시 움직이게 할 '연료'이자 고된 삶을 붙들어줄 한 끼의 위로였습니다.
바로 이 시대적 필요 속에서 두 가지 음식이 운명적으로 만났습니다. 하나는 17세기경 영국으로 건너온 스페인-포르투갈계 유대인 이민자들이 가져온 생선튀김, '페스카도 프리토(Pescado frito)'였습니다. 안식일에 불을 피울 수 없어 금요일에 미리 튀겨두고 차갑게 먹던 음식이었죠. 다른 하나는 영국의 궂은 날씨에도 잘 자라던 감자로 만든 칩스로, 이미 노동자들이 즐겨 먹던 값싼 간식이었습니다.
1860년경 런던의 유대인 이민자 조셉 말린이 이 둘을 함께 팔기 시작한 것이 피시앤칩스의 시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영국 전역에 깔린 철도망이 북해의 신선한 생선을 내륙까지 빠르게 운송했고, 값싼 식물성 기름이 대량 보급되면서 피시앤칩스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결국 피시앤칩스는 한 사람의 독창적인 발명품이 아니라, 이민자들의 음식 문화와 산업화 시대의 사회적 필요가 만나 탄생한 '시대의 산물'이었던 셈입니다.
피시앤칩스가 영국 식문화를 장악한 것은 그 자체의 힘이 막강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당시 영국 미식의 기반이 너무나 취약했기에, 그 텅 빈 공간을 쉽게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기회를 만들어준 '공범'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공범은 '종교'였습니다. 17세기 영국을 휩쓴 청교도 혁명은 음식 문화를 말 그대로 초토화시켰습니다. 청교도들은 사치와 향락을 죄악시하며 '미식'을 탄압했고, 음식은 오직 생명 유지를 위한 수단일 뿐 즐거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이 퍼졌습니다. 심지어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일찍 주는 것은 죄악"이라는 생각까지 퍼져있을 정도.
두 번째 공범은 '환경'의 한계였습니다. 1년 내내 흐린 기후 탓에 다양한 식재료 재배가 어려웠고, 자연히 식탁은 육류와 감자 같은 뿌리채소 위주로 단조로워졌습니다. 섬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해산물 문화가 크게 발전하지 못했고, 고기 요리조차 로스트 비프처럼 특정 부위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이는 다양한 요리법의 발전을 막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공범은 '사회적 무관심'이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 계층은 요리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습니다. 반면, 상류층은 자국 음식 대신 화려한 프랑스 요리를 선호하며 전통 식문화의 발전에 무관심했습니다. 이 세 가지 요인이 만들어낸 영국 미식의 '텅 빈 공간'을 빠르고 간편한 즉석식품과 테이크아웃 음식이 파고들었고, 그 정점에 바로 피시앤칩스가 있었던 것입니다.
자, 이제 검찰이 피시앤칩스를 영국 미식의 '주범'으로 기소하는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피고인 피시앤칩스는 압도적인 대중성을 무기로 영국인의 입맛을 획일화하고, 영국 식문화의 다양성을 파괴했다.'
피시앤칩스의 엄청난 성공은 역설적으로 영국 미식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바삭한 튀김옷과 촉촉한 생선 살, 짭짤한 감자튀김의 중독적인 조합은 영국인의 입맛을 '튀기고 기름진 맛'에 길들여 버렸습니다. 그 결과 섬세하고 복잡한 풍미를 가진 다른 요리들은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이는 마치 "값싸고 맛있는 국밥집이 즐비해서 다른 종류의 한식당이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과 같았습니다.
20세기에 들어 이탈리아의 피자, 미국의 햄버거처럼 국가를 대표하는 음식이 필요해지자, 가장 대중적이었던 피시앤칩스가 영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추대되었습니다. 문화인류학자 파니코스 파나이는 이를 두고, 밀려드는 외국 음식 속에서 영국만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었다고 분석합니다. 노동자의 고된 삶을 달래주던 한 끼 식사가 졸지에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게 된 것입니다.
결국 '영국 요리 = 피시앤칩스'라는 공식이 만들어졌고, 피시앤칩스는 영국 요리가 맛없다는 악명을 대표하는 상징인 동시에,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변명거리가 되는 모순적인 상황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변호인의 최종 변론을 들어볼 차례입니다. 피시앤칩스는 비판만 받는 '배신자'가 아니라, 시대를 구한 '구원자'였다는 강력한 반론도 존재합니다. 소설 『1984』의 작가 조지 오웰은 그의 저서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피시앤칩스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피시앤칩스 같은 값싼 사치품들이 혁명을 막았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의 말처럼, 피시앤칩스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착취에 가까운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 계급에게 주어진 거의 유일한 위안이자 소소한 행복이었습니다. 고된 하루의 끝, 따뜻한 피시앤칩스 한 봉지는 내일을 버틸 힘을 주는 소중한 의식이었습니다.
그 중요성은 전쟁 때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중 대부분의 식료품이 배급제로 통제될 때도, 정부는 국민 사기 진작을 위해 피시앤칩스의 배급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윈스턴 처칠이 '좋은 친구(good companions)'라고 불렀을 만큼, 피시앤칩스는 하나의 '전략 물자'였습니다. 심지어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아군을 식별하는 암호로 "피시(Fish)!"라고 외치면 "칩스(Chips)!"라고 답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마저 전해집니다.
피시앤칩스가 영국 미식의 다양성을 희생시켰을지는 몰라도, 가장 어두운 시절 영국인들의 영혼을 달래준 '소울푸드'이자 이름 없는 영웅이었던 것입니다.
피시앤칩스는 영국 미식의 '배신자'인 동시에 '구원자'라는 역설적인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산업혁명의 부름에 응답해 태어났고, 가장 힘든 시절 영국인들의 곁을 지키며 그들의 배와 영혼을 채워주었습니다.
오늘날 런던은 세계적인 미식 도시로 변모했지만, 피시앤칩스는 여전히 그 중심에서 맛을 넘어선 복잡한 문화적 상징으로 남아있습니다. 한 시대의 아픔과 영광이 뒤섞인 이 음식에 대해 우리는 어떤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요?
이제 여러분의 차례입니다. 피시앤칩스는 영국 미식의 배신자였을까요, 아니면 시대를 구한 영웅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