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탐라유배일지] 마지막 인바디

125일차

by 태희킷이지
KakaoTalk_20170124_223201464.jpg

2017. 1. 23.


아침으로 김밥을 한 줄 사먹고, 형을 깨워 인바디를 하러 갔다. 탐라국에서의 마지막 인바디라고 생각하니 이제껏 했던 세 번의 인바디와는 또 다른 기분이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전극에 발뒷꿈치를 잘 가져다 대고 올라섰다. 결과지가 인쇄되자마자 눈이 먼저 체지방률을 찾는다. 지난 12월 30일보다 2퍼센트를 줄인 22퍼센트가 되어야 나는 메로나를 먹을 수 있다. 21.51%. 브금으로 합창교향곡이 나올 것 같은 상황이다.


인바디에서 내가 더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서 형이 점심을 사줬다. 큼직한 돼지고기가 둥둥 떠다니는 김치찌개에 라면사리를 세 번이나 빠뜨려 먹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차가운 커피까지 한 잔 마시고 나서 오랜만에 701번 버스에 짐을 실었다. 오늘은 표선에서 한시적으로 운영한다는 팝업 게스트하우스에 가기로 했다. 중간에 가져온 겨울 옷 때문인지 짐이 생각보다 무거웠지만 버스정류장 부근까지 픽업을 나와주셔서 무사히 게하에 들어갔다.


한시적으로 운영하다보니 한달살이 입주자를 중심으로 모집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사람들도 오늘 들어온 터라 분위기가 참 어색하다. 만원을 내고 저녁으로 나온 삼겹살을 먹는다. 젓가락을 처음 들 때만해도 무한리필 고깃집만큼은 양을 뽑아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막상 젓가락을 움직이고 나선 적당히 먹고 가장 빨리 일어나 설거지를 하고 있다. 고기를 적.당.히.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으면 되게 아쉬울 줄 알았는데 그러지도 않다. 그동안 '이정도는 먹어야 배가 부르다'는 거짓된 허기가 날 과식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게스트 중엔 미취학아동 둘이 포함되어 있어서 생각하던 분위기는 아니었다. 침침한 조명이나 커다란 거실창문은 둘러 앉아서 이야기하기 딱 좋은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꽥꽥 소리를 질러대는 애들 소리가 싫어서 밤산책을 나왔다. 말라비틀어진 개똥을 두 번 밟고선 아 로또를 사야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개가 손을 핥아서 깜짝 놀라 꾸엑 하고 소리를 질렀다.


방에 처박혀서 손으로 입을 막고 끅끅대며 라스를 보다가 누웠다. 아 굳이 이 시간에 푸욱 자려고 커다란 짐을 낑낑대며 여기까지 들고 온 건 아니라서... 좀 아쉽긴 한데 아직 밖을 활보하는 아동들 덕분에 일찍 자야겠다. 이불이 노란색이었다는거 빼곤 아주 특별하게 맘에 드는 구석이 많았던 게하는 아니라 많이 아쉬웠다. 나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KakaoTalk_20170124_223141433.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탐라유배일지] 탄산온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