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민 Jan 31. 2019

아이를 씻기다가 내 아버지를 떠올렸다

내 아버지가 느끼셨을 감정에 대해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다. 칠순이 넘은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와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어린 시절을 어렵게 보내셨던 탓에 마음에 여유가 있는 분이 아니었다. 결혼 살림도 어렵게 시작했고, 평생을 넉넉하게 살아본 적이 없었으며, 옛날 사람들이 많이 가지고 있던 남성 가부장적인 모습(폭력성까지 포함하는) 마저 가진 분인 탓에 어린 시절부터 나는 행복하다는 느낌보다는 내가 항상 불행하고, 힘들고, 어렵게 자랐다고만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결핍은 내가 아버지에 대해 일종의 불신과 원망을 갖게 만들었고,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아 결혼 8년차에 접어든 지금도 아버지와 관계가 그리 돈독하지 못하다. 


 어쩌면 내 아버지의 세대는 불행을 떠안고 살아야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린 시절의 경험을 핑계삼아 아버지를 불편해했고, 어렵고, 지금도 그를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 아버지의 삶처럼, 나 역시 아이를 키운다. 이제 8살, 6살 먹은 남자 아이 둘이다. 이 녀석들과 매일 씨름하며 지내는 일은 힘들면서도 뿌듯하고, 지치면서도 신이 난다. 특히 아이들을 목욕시킬 때가 그렇다. 


아이들의 머리를 말려주다 문득 든 생각


 욕조 안에서도 신나게 까불어대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춰대는 두 녀석들과 장난을 치며 한참 목욕시킨 뒤에, 물기를 닦고 머리를 만져주려 헤어 드라이기를 꺼냈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마음 속에서 이런 마음이 들었다. 


"그래, 사랑스런 우리 아이들과 지내는게 행복이지. 이런건 부모가 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즐거움이구나. 녀석들이 이렇게 예쁘고 귀여웠다는 것을 이 아이들이 크고 나면 기억할 수 있을까?"


 스물여덟이란 나이에 결혼해서 지금까지 쉴 새 없이 달려온 시간들이 힘들기도 헀지만 아이들의 밝은 모습을 바라보면 행복한 기분이 내 안에 가득 채워지는 것을 느낀다. 


 이 찰나의 행복을 즐기고 있는 사이, 어떤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다. 


"아, 나 역시  기억못하지만 내 아버지도 여섯살의 나를, 내 동생을 씻기며 이런 감정을 느끼셨겠지. 내 기억속엔 나쁜 추억들이 더 많다고 생각하지만 내 아버지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런 순간들을 기억하고 계시겠지. 나 역시 이렇게 자랐을텐데..."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런 어린 시절을, 나는 결코 기억하지 못할 내 어린 시절을, 우리 아버지 역시 나처럼 뿌듯한 마음으로 행복한 마음을 느끼며 '잘 자라거라, 건강하거라' 하며 애지중지 키우셨겠지.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 내가 그토록 불편해하던 내 아버지의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모습이 아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들을 행복으로 기억하며 가슴으로 키우셨을 내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마음에 다가서기


 아이들의 머리를 말려주고 나서,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마음이 저려서 걸었지만 대화는 여느 때와 같이 무뚝뚝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평소처럼 차가운 내 자신이 답답했지만 그래도 한 두 마디라도 더 건네려 애썼다. 


 전화를 끊은 뒤,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제 조금은 아버지가 느끼셨을 감정에 대해 공감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아직 내 아버지가 느끼셨을 수많은 경험들을 이해할 순 없지만 그래도 멀게만 느꼈던 아버지와의 거리가 조금은 가까워 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버지에게 한 발 더 다가간다.



++ 썸네일의 사진은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스틸이미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