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차든 10년 차든
7년 가까이 가깝게 지낸 엄마들을 오랜만에 야밤에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내가 요새 빠져있는 드라마 주인공 사진을 보여줬는데, 다들 반응이 진짜 말 그대로 이러했다.
"극혐!"
오 마이갓, 이런 스타일 싫다는 것도 아니고 극혐이라니, 약간 충격을 받았지만 곧 괜찮아졌다. 사람마다 스타일은 다른 거고 사실 나도 그녀들이 그녀들의 스타일을 얘기할 때마다 별대꾸하지 않았으니까, 무언의 부정이랄까. 그리고 사실 내가 보여준 외국 배우는 그 드라마의 주연이었고 실제 내가 더 눈길이 가는 건 정말 외모적으로도 나이적으로도 일반적인 여성들이 추구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떨어진 다른 배우였기에 그녀들의 그런 강한 부정의 반응에도 되레 안심이 들었다. (안보여주길 잘했다는.)
이렇듯 난 최근 몇 달간 한 미국드라마에 빠져있다. (앞에 극혐이니, 추구하지 않는다느니 이런 표현이 난무했기에 굳이 드라마 제목을 언급하진 않겠다.) 워킹맘의 입장에서 평소에 체력도 받쳐주지 않고, 시간도 없어서 드라마 볼 시간이 없지만 아주 가끔 출장을 나갔는데 일찍 끝나서 한 30분 정도의 짬이 생기면 얼른 집에 들어와서 핸드폰으로 보거나, B형 독감같이 법정전염병에 걸려서 출근을 하지 못할 때는 그 아픈 몸을 끌고 굳이 굳이 소파에 누워 TV를 켤정도로 아주 푹 빠져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한참 드라마를 보다가 의문이 들었다. 한국드라마는 정말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 정도로 유명한 오징어게임, 더글로리, 요새는 뭐 폭싹 속았어요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그 흔한 유튜브 짤도 찾아본 적이 없는 내가 왜 다른 나라 드라마에 이렇게 푹 빠져있는 걸까.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는 스토리가 계속계속 이어져서 한번 보기 시작하면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는 패턴이 나에게는 잘 안 맞는다고 말하지만, 진짜 그게 다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또다시 번뜩 깨달았다. 내가 우리나라 드라마 말고 다른 나라 드라마에 유난히 빠져있는 이유. 바로 늘 느껴왔지만 너무 당연시되어서 비합리적이고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엄두조차 못 냈던 "서열"에 대한 거부감. 이것이 바로 큰 이유였다.
드라마얘기하다 갑자기 서열이라니 너무 생뚱맞다고 느껴지겠지만, 내가 몇 년간을 다른 나라 드라마를 보면서 못 느꼈던 대리만족의 근본적인 이유. 바로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그들만의 서열세계이다.
한 번은 드라마를 보는데 중간 관리자급 돼 보이는 팀장이 그 팀을 총괄관리 하는 국장에게 위로의 의미로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국장실을 나가는 장면이 나왔다. 그 나라 사람들이라면 그냥 일상적인 장면으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난 한동안 황당하여있을 정도로 놀라웠다. 아니, 놀라웠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지, 무려 신기했다.
드라마의 배경을 그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바꿨을 때 과연 중간관리자가 위로의 의미로 부서장이나, 부사장의 어깨를 툭툭치고 지나간다면, 바로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상상조차 하기 싫다. 이는 마치 내가 실장님에게 혹은 팀장님에게 어떤 안 좋은 일이 생겨서 위로한답시고 어깨를 툭툭 치는 것과 같은데, 난 그 순간 이후로 이 조직에 "미친놈"으로 소문나지 않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멀찌감치 서서 "힘내세요." 라든가,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술이나 한잔 두 손으로 공손이 따라드리거나 뭐 그 정도가 최선일 것이다. 그것조차 안 한다거나, 그 이상으로 어깨동무나 손을 잡거나 하는 행동을 하면 진짜 말 그대로 순식간에 조직 부적응자가 되는 것이다.
물론 각 나라가 지켜온 윗사람에 대한 예의의 기준이나, 종교적 배경을 생각할 때 아무리 이상적이라 하더라도 당장 그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도입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가상현실 속 가족과 같이 일하고 서로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되 격 없이 서로를 대하며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어떤 일이든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그들이 너무 부럽다.
"급"과 "관"에 얽매여 단 한 번도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일해보지 못하고, 한 끗차이는 아니지만 한 급차이의 무게에 늘 숨 막힐 듯 정신이 짓눌려왔던 내 피 같은 세월이 하루하루 통곡하는 듯, 나는 이제 진저리가 난다. 하다못해 우리와 늘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는 옆동네 사람들도 자기들끼리는 평등하게 존중하며 살아가는데 우리는 정말 한결같이 내가 너를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네가 나를 밟고 갈 테니, 그 꼴은 못 보겠다며 눈이 시뻘게져서 경계하기 바쁘니, 진짜 한탄스럽다.
나를 밟고 올라서는 건 돌아서서 배는 좀 아프겠지만, 나의 선택이고 너의 선택이니 어쩔 수 없다 쳐도 그렇게 올라서면 왜 그리도 뻣뻣해지는 건지, 뭘 그리 대우가 받고 싶은 건지, 아랫사람들은 자기보다 못한 버러지처럼 보이는 건지, 그저 나는 떠나고 싶다. 하지만 떠날 수 없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은 그 옛날 진짜 허기에 허덕이며 이 나라를 지켜주신 분들에게 염치가 없어 못하겠고 조금 틀어서 목구멍에 낙오자라는 세 글자를 처박고 싶지 않아 오늘도 존버하기 위해 좀비처럼 집을 나선다.
좀비 같은 나에게 주어진 좀비 같은 시간이 이렇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