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드디어 시리즈로 연재할만한 삶의 굴곡이 왔다
*이 도시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는 이방인의 시각에서 편견을 가득 가지고 쓰는 글이니 비판적으로 읽으시길 바랍니다
8월 7일 캐나다를 떠나 미국 버지니아에 위치한 작은 시골마을 윌리엄스버그로 왔다. 여긴 안동 하회마을이랄까 영국인들이 미국에 처음 정착했을 때 그 동네를 그대로 남겨놓고 일하는 사람들도 일부러 그 시절 옷을 입혀서 가족단위로 관광을 오는 곳이다. 그때도 노예 데리고 배부르게 살았을 백인 놈들이라 그런지 초가집 다닥다닥 붙은 우리나라 민속촌과는 다르게 큰 집들이 널찍널찍 떨어져 있고 정부청사 법원 등 있을게 다 있는 (그래봐야 얼마 안된 과거이기 때문에), 부유한 1등 미국의 역사가 시작되는 지점에 사람들이 향수를 느끼는 그런 분위기.
은퇴후 정착지로 유명한 동네답게 조경이 정돈되어 있고 길은 깨끗하고 동네 자체가 부자 냄새가 물씬 난다. 비싼 휴양림이나 수도원 같은 분위기. 사진만 보면 이런 마을에 사는게 행운이라고 절해야 할 판이다. 어딜 가든 울창한 나무와 꽃밭, 아름다운 2층 벽돌집들과 깔끔하게 닦인 도로들이 보인다. 그런데 이 도시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 보이는 사람들이 정말 백인뿐이다. 호주, 미국, 캐나다, 독일에 살아봤지만 이렇게까지 이질감이 느껴지는 도시는 처음이다. 독일은 애초에 외국인 인구가 적어서라고 쳐도, 여기는 정말 버지니아에 사는 인종비율과도 너무 다르게 정말 독일급의 백인비율을 자랑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부내 철철 나는 백인들의.. 돈을 안벌어도 되는 자식들이, '안전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역사나 철학 등 문과쪽의 과목을 하러 선택하는 학교가 바로 여기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안전하고 조용하다는 말을 당연히 객관적으로 받아들였었는데 와서 보니까 그게 완전히 백인에 해당한다는걸 알겠다. 조용하고, 뭐 객관적으로 봐도 길거리에 홈리스 하나 없고 소리지르는 사람 하나 없긴 한데, 이방인으로서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안전함을 느끼냐고 하면 그건 전혀 아니다. 음식점이나 학교 교직원 등 일하는 사람은 여지없이 유색인종이고, 관광객, 학생, 교수는 백인 뿐인 이곳에서, 노예해방 전의 건물이 버젓이 있는걸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그 시대에 사는 사람이 된 듯한 갑갑함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저 겉으로 친절한 백인들이, 내가 어딘가에 쓰러져있다고 하면 당장 와서 911을 불러줄 것 같지 않다 라는 느낌이다.
독일은 외국인 비율이 절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어딜가나 백인이었고 이방인인 나에 대한 경계가 자연스레 이해되는 느낌이었다면, 여기서 느끼는 백인들의 묘한 태도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고 소름끼치는 느낌이다. 다른 인종이 있다는 것과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만 백인이기때문에 가지는 특권을 당연히 가지면서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것 같다는 감이 오는데, 물론 절대로 밖으로 그렇게 표현하거나 하지 않으니 미루어 짐작할 수 밖에 없다. 어디서 알게 되냐면, 백인 교수든 학생이든 유색인종들과 이야기 할 때 티키타카가 잘 안되는 사람들이 극명하게 보인다. 아무리 아닌 척 하려고 해도 흥미와 관심의 정도가 차이나는걸 본인이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이지. 이 도시라서만은 아닌것 같은게, 여러 도시에서 온 내 백인 동기들도 그런 태도를 내재화하고 있다. 나는 백인이고 우월하지만, 또 교육을 받았으므로 너에게 차별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오픈되어있고 나는 절대 차별하지 않는다. 라는 그런 선민의식 비슷한 것이 몸에 배어있다. 이 정도가 내가 느낀 우리 시골 동네 (= 버스 한시간에 한번 다니고, 가로등 없고, 밤에 귀뚜라미 소리 말고 아무것도 안 들리고, 별 가득함)에 대한 배경 설명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나까지 8명인 대학원 동기들과, 하루 최소 6시간 함께 매번 같은 강의실에서 토론이 대부분인 강의를 들으면서, 유일한 동양인이자 외국인으로서 그들과 어울려야 하고, 같은 시험을 치뤄야 하고, 박사과정에 가기 위해 준비/경쟁해야 하고, 조교로서 백인 대학생들도 가르쳐야 하고 백인 교수와 일해야 하기도 한다. 벌써부터 막장 드라마 몇 편이 펼쳐지는 배경설정과 인물관계도가 아닌가! 브런치 시리즈를 읽어보니 어느정도의 갈등서사가 있는 연재물도 꽤 재밌었던 기억이 나서 드디어 내 삶이 거기 부합하는 조건을 갖춘 것 같아 매거진으로 연재해보려고 한다. 자잘한 에피소드는 다음회부터 시작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