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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을리 Jul 09. 2024

좀 못하면 어때?

그럼 박살나버릴 것 같아

잔인한 겨울이다. 아주아주. 

메일 한 줄 혹은 인터넷의 모르는 사람이 쓴 글 한줄에 마음이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하고 있다.


매우 간절히 원하는게 있고, 그게 될 지 안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감정들이라고 생각하다가도, 내가 왜 이렇게까지 마음이 힘든지 생각하면 이내 약간은 부끄러워진다. 내 힘든 마음에는 온전히 이 기회를 갖고 싶은 열망만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도, 내가 부족해서 그 기회를 갖지 못하는 상황이, 누군가 나의 부족함을 알아차리는 그 상황이 너무나도 두려운 것 같다.


이 '부족함'이라는 단어는 아주 오랜 세월 나의 정체성이나 다름없었다. 내 정체성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였을 것이다. 남들도 다 그러는 줄 알고 살았다. 남들도 모두 '진짜 나'를 보여주는 것이 두렵겠지, 진짜 나를 알게 된다면 실망할 사람들의 얼굴이 무섭겠지, 그러면서 남들이 원하는 나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진짜 나를 보여주지 않기 위해 내 얘기를 하지 않고 혼자 힘든 것을 무언의 자부심으로 알고 살았다. 누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입밖에 꺼내면 아, 정말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힘든가보네, 하고 살았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 때의 내 상황이 충분히 하드코어했고,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이었다는 걸. 언젠가 상담에서 얘기했던게 기억나는데, 진짜 나는 뭔가 어둡고 구깃구깃한 보잘 것 없는 모습이라, 이걸 들키면 안될 것 같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 나를 알면 모두 다 떠날까봐. 그 후로 몇달 동안은 '오 요새는 왜이렇게 재미가 없어?' 라는 말을 들어가며 평범한 내 얘기를 하려고 노력했었다. 시덥잖은 농담으로, 그 대화에서 내가 몇번이나 남들을 웃겼나 세는 대신.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진짜 나를 보여주는 것이 괜찮다는 걸, 그리고 어마어마한 지지와 사랑을 받고있었다는걸 깨달았었다. 진짜 나로 살아도 괜찮다는 느낌은 정말 큰 선물이었다. 그런 날들이 없었다면 절대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겠답시고 회사를 때려치고 캐나다 깡촌에 올 결정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아직도 나는 나의 부족함을 매분 매초 두려워하며 사는걸까? 인정하기 싫지만 '잘 하는 애'라는게 아직도 내가 아는 나의 정체성이어서 그런 것 같다. 전교 1등에 올백맞는 괴물인 적은 없었지만,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공부도 안하는데 성적이 괜찮은 애'였고 나는 그 썩 노력하지 않아도 좋은 결과를 얻는 나의 이미지가 참 마음에 들었다. 소년 만화에 한두번씩 나오는 그런 캐릭터들은 항상 호감형이고, 좋은 친구들이 있고, 좋은 결과를 얻고 그러니까. 간절하게 원하는 것을 하지 않은 덕분에 그 이미지를 지키면서 이십대를 보낼 수 있었다. 정말 하고싶은게 없으니 노력할 것도 없었고 실망할 것도 없었다. 사람들이 신경쓴다고 하는 스펙, 직장이름 같은건 경쟁이 너무나 치열해서 정말 지원자들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만 봐야 하는 한국에서, 알맹이 고민 없이 껍데기만 열심히 조각하는 데 토가 텄던 나에겐 역시나 '노력 대비' 쉬운 일이었다.


그런 인생에 지쳐서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내가 원하는 것에 진심을 다해 보겠다고 캐나다에 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전과 같은 노력으로 이전과 같은 결과를 얻을거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아니, 이번엔 진심이니까 오히려 더 잘하겠지. 같은거. 나이 서른에 18-19살 들과 공부할거라는 것에 자신감도 있었다. 다 놀겠지 뭐. 그런 생각? 은 물론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생각이었고 나는 영어를 제 2외국어로 사용하면서, 떨어지는 집중력과 체력으로 생전 처음 겪는 영미권의 교육과정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핸디캡이 너무 많았는데 마음처럼 안되니까 온갖 군데에 진상을 부렸다. 그리고 어쨌든 끊임없이 시도했다. 교수들한테 메일을 보내고, 리서치 미팅을 가고, 캘거리 사람들도 잘 안가는 구석에 있는 센터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내가 받는 결과가 100점이 아닐 때마다 모자라는 부분만큼 서글펐다. 아깝다 정도가 아니라 너는 30살에 진심을 다해 이걸 하고있는데 이것밖에 안돼? 라고 날 꾸짖는 거 같아서 도망가고 싶었다. 와중에 코로나가 터졌고 난생 처음 흰머리가 우수수 나는걸 지켜보며 겪지 못했던 고독감과 불확실성을 맛봤다. 지원서를 쓰느라 중간고사 볼 시간이 없어서 하루에 강의를 몰아 듣느라 점심을 먹지 못했던 적이 있는데, 이게 고시 공부도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 서러웠던 적이 있다. 고작해야 학부 공부인데 난 왜이렇게 힘들까. 돌아보니 더욱 선명하지만 나는 1의 문제가 있으면 내 자신을 한 열대는 패야 성에 차는 스타일의 사람이었다. 그렇게 일년 반을 지나, 자가격리중에 지원서를 쓰고, 이사한 집에서 인터뷰를 보고, 지금 여기 있다.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면서.


내가 나를 쥐어팼던 그 모든 빈틈들을, 들키고 싶지 않다. 어쨌든 그 노력으로 만들어 낸 빛나보이는 cv와 성적표로만 내가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인터뷰라는 건 이런 나를 고스란히 드러내서, 그 드러난 나를 받아들일지 거절할 지를 결정하는 과정 아닌가? 그게 나를 잡는 쥐약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마침내 나의 부족함을 드러낼 시간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이런 마음을 적다가 불현듯, 아니 뭐 좀 못하면 어때? 인터뷰를 망했으면 어때? 말을 버벅거렸으면 어때? 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내가 생각지도 못한 사이 내 손이 적은 다음 말은, '박살나 버릴 것 같아'. 였다.


박살 나 버릴 것 같다. 초조하게 바라 온 것들이 나를 거절할 때, 그것이 내가 가진 태생적인 부족함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면, 다시는 그것들을 바라고 원할 수 없을까봐, 그렇게 와장창 부숴져서 다신 일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여태까지 살아온 날들과 해 온 일들과 별개로, 나는 여전히 '남이 볼 수 없었으면 하는 나의 부족함'을 마치 나인듯 떠안고 있었고, 그게 혹시 들켜버릴까 전전긍긍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혹시라도 맘에 안드는 결과가 나올 때마다, 그걸 들킨 내 탓이라며 나를 쥐어패가면서. 사실은, 인생과 사람이 어떤 틀 안에서 부족하고 넘치고 하는게 아니라는걸 아는데도, 어딘가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있는 모양이다. 그건 누굴까. 어디에서 뭘 하는 사람이길래 항상 그 사람과 비교했을 때 날 이렇게 부족하게 보이게 만들까. 그 사람은 그냥 날 부족하게 느끼도록 만들기 위해 태어난 사람일텐데, 어떤 모습의 누구인지 참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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