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있지만 홍콩에도 요가 컨퍼런스가 열린다. 지금은 컨퍼런스 기간이 아니지만 홍콩의 요가를 접해보고 싶었다. 힘들게 찾아갔지만 홈페이지상의 시간표와는 달랐고 사무실이 없이 방 하나에서 수업이 진행되고 있어 문 앞까지 가서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뒤돌아서야 했다.
여기 오기 전 우주박물관에서 하는 천체 영화도 매진으로 실패했는데 연달아 2번의 실패다.
기분이 바닥을 뚫고 가라앉는다. 이제 뭘 해야 하나.
무작정 걸어본다. 건물 뒤 가파른 길목 위에 야외 테라스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올라가보니 몇개의 펍이 늘어서 있다.
기분도 꿀꿀하니 맥주나 한 잔 해야겠다. 생각보다 혼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마침 해피아워. 한잔 마시고 나니 기분이 나아진다.
두번째 잔과 함께 주문한 깔라마리. 오징어튀김은 어딜가도 실패하지 않는 거 같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배가 불렀지만 남김없이 다 먹었다. 홍콩에 와서 내가 먹은 가장 비싼 한끼였다.
저녁이 되니 길거리에 사람이 넘쳐난다. 홍콩의 밤거리는 발 디딜 틈 없는 인파와 화려한 조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음 타임 티켓이 있다면 보고 아니면 말지라는 마음으로 다시 간 우주 박물관. 이번엔 다행히 티켓이 있었고 내용이 간단해 영어로도 알아 들을 수 있었다. 무계획은 때론 이렇게 생각지도 않은 기회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덕분에 저렴한 가격으로 인생 처음으로 천체관에서 아름다운 우주쇼를 보았다.
말랑말랑 해진 마음을 안고 상쾌한 강바람을 마주하며 나왔다. 하지만 그런 나의 감성은 얼마 가지 못해 패닉 상태로 넘어갔다. 내가 밖으로 나온 그 시각 심포니 오브 라이트가 진행중이었고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사방이 꽉 막혀 있었다. 그래도 구경은 해야지라며 그들 뒤에 서서 나도 동조하여 열심히 사진을 찍었으나 뭘 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는 급 무기력해지며 숙소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아침에 느꼈던 낯섬과는 다른 또 다른 느낌의 우울감 비슷한 무언가가 가슴으로 훅 날아들었다.
나는 혼자이면서 혼자이지 않았다. 친구들과 실시간 채팅을 하며 나의 이 급작스런 마음의 동요를 알렸다. 아직 8시 밖에 안 된 이 시점에 내가 무얼 해야 할지 도움을 요청하자 한 친구가 말했다.
어서 뭐라도 해. 뭐라도 더!더!더!!! 하란 말이야.
그렇다. 난 지금 누군가는 부러워 할, 그리고 미래의 내가 부러워 할 그 시공간 속에 있었다.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마치 등떠밀려 온 여행 같은데 온전히 나의 의지로 분명히 설렘과 기쁨을 안고 온 여행이었다. 단지 너무 오랜만에 혼자였고 그래서 조금 가라앉고 외로웠을 뿐이다. 난 분명히 즐기고 있었다. 아직 적응하지 못했을 뿐.
페리를 타고 홍콩섬으로 넘어갔다. 버스 정류소를 찾느라 좀 헤매기는 했지만 2층버스를 타고 빅토리아 피크에 갔다. 홍콩에 와서 처음으로 탄 2층 버스. 2층 맨 앞자리에 앉아 홍콩의 밤을 구경하며 산을 뱅글뱅글 오르고 또 올랐다.
바람이 불었고 조금 서늘했다. 날이 조금 흐렸지만 그래도 야경은 아름다웠다. 잠시 야경을 감상한 뒤 조금은 서둘러 돌아 나왔을 때 피크트램을 타려는 사람들은 바람속에 여전히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온 건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내려가는 길은 정차할 일이 거의 없어 버스 기사님이 쾌속으로 운전해 주셨다.
쇼핑몰과 상점들이 있는 거리라 그런지 밤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홍콩역의 입구는 매우 여러갈래로 퍼져 있었고 또 잠시의 헤맴을 겪고 지하철을 타고 침사추이로 향했다.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으나 이제 하루를 알차게 보낸듯한 뿌듯함이 몰려왔다. 이제는 이 밤을 이렇게 보내는게 아쉬웠다. 주변에 갈 곳이 없어 숙소 옆에 있는 라멘집에 들어갔다. 배는 고프지 않았으므로 간단히 교자에 맥주를 시킨다. 역시 교자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여기가 일본인지 홍콩인지 알 수 없는 순간. 하지만 실패하지 않는 조합. 맛있는 야식을 끝으로 숙소로 들어갔다.
처음이란 늘 그렇다. 실수와 실패와 혼돈이 함께한다. 나의 첫 홍콩도 그러했지만 어쨋든 결국은 다 해냈기에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마음이 평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