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먹고 싶었다. 남들 다 하는거 따라한다고 종일 밀크티로 배를 채웠더니 커피 마실 틈이 없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카페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못 본건지 없는건지...
그러다 내가 묵는 숙소 1층에 작은 카페가 있다는 걸 알았고 나오자마자 커피부터 샀다. 규모는 작았으나 손님도 많고 메뉴도 많았다. 시간이 있고 배가 고팠다면 파니니를 먹었어도 좋을 것 같았다.
커피를 들고 카오룽 공원에 산책을 갔다. 주말 아침이여서인지 태극권 같은 무술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제와 달리 해가 매우 쨍쨍하고 덥기까지 했다. 짧은 여행이라 욕심 부려 다니자면 쉴 틈없이 움직였어야 할 하루. 혼자는 이래서 좋다. 급하지 않아도 되고 관광지마다 둘러보지 않아도 되고 현지인들의 주말 아침 풍경을 맘 편히 볼 수 있다.
도심 속 거대한 수목원 같았던 공원. 이번 여행 중 제일 좋았던 곳 중 하나다.
가까운 맛집을 찾는다. 혼자여행하다 보니 구태여 먼곳을 찾아 가고 싶지는 않았다.
쌀국수로 유명하다는 성림거가 근처에 있다. 오픈 시간에 맞춰 가니 한산하고 좋았다. 나는 향신료에 거부감이 없는 편이다. 심지어 고수는 좋아한다.
아직 식자재가 배달이 안 된 걸까?
슬프게도 이 날 고수가 없었다.
주문서가 복잡했지만 찬찬히 보면 할 수 있다. 적당히 신맛을 가미하고 토핑은 이것저것 뭔지 모르지만 홍콩야채라는 것도 주문해봤는데
음... 이건 아닌걸로... 아는 야채만 먹자.
맛집이라더니 내 입맛에는 조금 느끼하고 다시 찾고 싶은 맛은 아니였다.
토핑 선택을 잘못해서 일 수도 있고.
커피와 홍차를 섞어 만들었다는 동윤영도 궁금해서 시켰는데 밀크티와 딱히 다른 점을 느끼지 못했다.
내 여행은 큰 덩어리로 이루어지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포인트를 대충 정하고 그때그때 맞춰서 연결을 시킨다. 짧은 여정엔 계획적인 일정이 효율적일 수는 있지만 즉흥과 우연함을 좋아하기에 가고싶은 곳 리스트를 쭉 뽑았다가도 보통 여행이 가까워질수록 내 계획은 점점 더 흐릿해지기 일수다.
이번에 다 보지 못하고 먹지 못한 건 다음에 또 오기 위함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나의 게으름과 꼼꼼하지 못한 성격 때문에 생긴
나만의 여행 방법일지도 모른다.
도심공항에서 체크인을 하고 캐리어를 먼저 보낸 뒤 가벼운 몸으로 남은 하루를 즐겼다.
오늘도 2층버스를 타고 스탠리베이까지 먼 길을 떠난다. 오기 전 빅버스 투어를 신청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안하길 잘했다. 일반버스를 타니 시간도 여유있고 마침 2층 맨 앞자리도 비어서
뻥 뚫린 시야로 편하게 구경하며 갔다.
40~50분 걸리는 짧지 않은 길이었지만 창 밖 구경에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리펄스 베이와 스탠리베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이유는 모르겠으나 난 그냥 스탠리베이를 택했고 이 날의 포인트는 내리쬐는 태양과 푸른 하늘이었다. 완벽한 날씨덕에 행복했고 순간 외로웠으며 시원한 블루걸 한캔으로 또 다시 행복해졌다.
홍콩의 맥주라는데 제조사는 우리나라 회사인 오비라고 들은 것 같다. 맛은 뭐...
날이 너무 좋아서 한참을 걷고 바라보고 계속 걷다보니 마켓도 있고 야외에서 식사나 술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해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거대한 넝쿨나무아래 꽃집. 너무 이쁘다. 그런 나무아래 푸른맥주. 너무 이쁘다.
이 시간을 조금 더 즐기고 싶었지만아직 가야 할 곳이 있기에 맥주 한 캔의 여유를 마무리로 버스에 올랐다. 맥주 덕에 숙면을 취하며 창문에 머리도 박으면서 그렇게 다시 센트럴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