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이미 꺽어진 해바라기 밭 옆을 걸으며 해바라기를 그토록 애타게 찾고 있던 것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이거라도 남기자.
우리가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은 할 수 있게.
왼쪽은 현실의 다 엎어버린 해바라기 밭.
오른쪽은 우리 마음속의 먹구름 가득한 해바라기 밭.
마치 공포영화 같았던 순간.
망연자실한 우리들.
오늘 사가에서 우리의 계획은 이거 하나였는데
가장 기대했던 일정이 이렇게 어이없게 끝이 났다.
우리 이제 뭐하지...
아쉬운 마음에 원래는 저랬어야 했는데... 라며 합성사진이라도 만들어봤다.
비록 해바라기 꽃은 보지 못했지만 충격과 함께 큰 웃음까지 주었던 해바라기 밭이었다.
그렇게 갈아 엎어버린 해바라기 밭을 지나 안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연꽃을 띄운 공원이 하나 있었다.
가족들도 뛰놀고 푸릇푸릇 풀밭도 있어서 해바라기 밭에서 받았던 충격과 실망을 이곳에서 조금 위로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애초에 우리의 목표가 아니었기에 뒤를 돌아 허기진 배나 달래러 가기로 했다.
사가에서 제일 크다는 쇼핑몰 유메 타운.
점심시간에 맞춰 갔더니 사가 사람들은 다 여기에 있는지 모든 식당에 대기줄이 늘어서 있었다.
식당가를 돌고 푸드코트를 돌고 어디든 줄 안 서는 곳을 찾아 들어가려 했으나 없는 곳이 없다.
한바퀴를 다 돌고 나서야 1층에 있는 회전초밥 집에 들어갔다.
앉아서 벽에 붙어있는 태블릿 메뉴판으로 주문을 하면 갖다주기도 하고 기차가 오기도 하고 먹는 재미가 있는 곳이었다. 메뉴판이 일어라서 느낌 가는대로 눌렀다가 주문을 안 누르고 취소를 누르고 한참을 기다리는 실수도 하고 맥주를 시킨다더니 말도 안되게 논알콜 맥주를 주문하기도 했다.
음... 매우 허당끼가 넘치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음식이 특별히 맛있진 않았지만 우리에겐 배를 채우는 것이 중요했으므로
밖에서 뜨거운 햇빛 아래 있다가 이렇게 실내에 들어와 앉아서 편하게 밥 먹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우리다.
밥 먹고 쇼핑몰 구경을 하다가 사가에 뭐가 유명한지 검색을 했다.
사가는 정말 할것이 없는 곳이다.
우리가 느낀 바로는 절대 가족과는 가면 안되고 연인은... 글쎄...
뭘 해도 그만이고 하하호호 웃을 수 있는 친구들과 함께라면 즐거울 수 있는 곳인거 같다.
여기에 커다란 게임랜드가 있다고 해서 그렇다면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거기다!!
건물 통째를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몰로 사용하고 있는 Round1.
층별로 다양한 놀거리가 있었다.
스크린 야구, 오락, 농구, 스티커 사진,인형뽑기 등등.
들어가면 눈이 휘둥그레지는 그런 곳이었으나 우리는 할 줄 아는게 없어서 하나 해보고 결국 게임의 룰도 알지 못한채 끝냈고 인형뽑기만 몇 번 하다 말았다.
하지만 승부욕이 강한 한 친구는 목표물을 얻을 때까지 인형뽑기를 끝내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고 돈을 투입한 끝에 원했던 호빵맨 인형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호빵맨은 또 하나의 짐이 되어 한국으로 이송되었지.
라운드 1의 셔틀버스를 타고 숙소 근처에 내려 편의점에서 간단히 먹을 것을 사서 숙소로 왔다.
이제서야 둘러보는 숙소.
예쁜 종이학이 올려져 있는 유카타가 침대 위에 고이 접혀 있다.
일본 답게 방은 매우 작았고 우리는 2개의 방을 예약해서 썼다.
어차피 방에 있는 시간은 길지 않고 우리는 잠만 자면 되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사가에는 택시가 없는걸까.
콜택시만 있나.
돈키호테에 들렸다가 숙소로 오는 길에 택시가 없어서 결국은 숙소까지 걸어왔다.
하루종일 너무 걸어서 이미 발이 아프고 무릎이 시리고 몸뚱이가 만신창이었는데 우리는 애매한 그 거리를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맛집이고 뭐고 찾을 의욕도 없고 맛집이란 것 자체가 없을 것 같던 사가.
그래서 우리는 사가에 첫날 도착했을 때처럼 그냥 무조건 가까운 식당 겸 술집을 찾아 들어갔다.
그렇게 들어간 꼬치가게. 손님은 우리 뿐이었고
녹색의 옷을 맞춰 입은 부부 주인장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운명처럼 이끌려 들어간 곳.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이 곳에서 꼬치가게 사장님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매직을 보여주셨고 우리는 환호했고~ 맛있었고 즐거웠다.
즉석에서 숯불에 구워주는 꼬치를 마법의 꿀단지 같은 항아리 안의 소스에 폭 담갔다 꺼내주신다.
우리가 뭘 시켰는지도 모르는데 그냥 주시는대로 받았을 뿐인데 유레카!!!
아니 이게 뭐라고~~ 소스가 비법인가. 소스가 제일 잘 스미는 두부꼬치는 특히나 너무너무 맛있었다.
메뉴판은 일본어였고 사장님은 영어를 하실 줄 몰랐다.
어찌저찌 한 주문은 우리의 생각보다 많은 양이 들어갔고 우리는 조금 초조했다.
마지막 밤이라 돈이 많지 않았고 이곳은 현금 결제만 가능한 곳이었다.
내가 처음 제대로 접해 본 오차즈케.
우리가 이 가게에서 먹은 음식 중 제일 맛있었고
우리나라에서 술 먹고 국밥 먹는 것처럼 오차즈케 한사발에 속이 뜨끈해지면서 편안해졌다.
중간중간 정산을 잊지 않으며 우리는 오차즈케를 추가했다.
얼마 나왔을까? 더 먹어도 되나?
중간 중간 총액을 물어보면서 생각보다 적은 금액에 안도하며 우리는 배부르게 술과 안주를 시켜 먹을 수 있었다.
차가운 사케를 먹다가 따뜻한 도쿠리로 전환했다.
아니 근데 이건 또 무슨 일이람. 나는 지금 어느 시대 어느 곳에 있는 것인가.
사케를 실험관 같은 주전자에 넣어 숯불에 데워주신다.
어머~ 이건 찍어야 해!! 어디 가서 이런 광경을 보며 이런 아날로그식의 데운 사케를 먹을 수 있단 말인가.
또 한번 유레카를 외친다.
이 곳에서의 모든 음식과 사람과 내 눈앞에 펼쳐진 모든 순간과 시간이 마법 같은 곳이었다.
우리가 액션캠을 놓고 찍으니 사장님이 매우 신기해 하셨고 카메라를 요리조리 살펴보시며 관심을 가지셨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만국 공통어인 바디랭귀지 만으로도 주인장 부부의 따뜻함과 친절을 느낄 수 있었다.
가게 이름도 모르지만 우리의 마지막을 훈훈하게 마무리 해줬던 꼬치구이 집.
사가에 다시 간다면 꼭 찾아 가고 싶은 곳이다.
돈이 조금 남았다.
그렇다면 마트를 털어볼까.
술 코너 앞에서 정신 못차리는 나.
내가 어디를 여행하든 가장 좋아하는 곳 마트.
아무리 가도 지겹지 않은 곳이다. 신기한 아이템들이 무궁무진한 곳.
전날 남긴 고구마 소주를 먹다가 아무래도 이건 아닌거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와인을 사서 먹었다. 고구마 소주는... 우리 입맛에 안 맞는걸로 결론. 마트에 팔던 당고와 치즈, 과자 등 주전부리와 함께 새벽까지 우리의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휴족시간 한팩으로 나눠서 써보겠다고 작은 바느질 가위로 잘라가며 그거 하나 같이 공유해 쓰겠다고 애쓰는 우리들. 사실 취한건지 정말 콩 한쪽도 나눠 먹겠다는 의지인건지 그냥 객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지켜보는 입장에서 내 친구들이 참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2만보 이상 걸었던 날. 사실 너무 많이 걸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꼭 필요하긴 했다.
남은 경비를 깨알같이 털어서 공항에서 셋을 위한 아주 작은 기념품을 샀다.
우리가 이 귀여운 아이를 고른 것은 선택이 아니었다.
수중의 돈으로 살 수 있는 거라곤 저것 뿐이었기 때문이지만 너무 귀여워서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다.
뭐라도 남기길 잘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무리 배부르고 졸리다 해도 이것만은 꼭 먹어야 한다며 사들고 온 계란 샌드위치.
잠결에 먹어도 맛있던 계란 샌드위치.
나에게 계란 샌드위치란 무엇인지를 깨우쳐 준 세븐일레븐 계란 샌드위치.
우리의 첫 해외여행은 적어도 우리에게만은 완벽했다.
그리고 공항가는 버스 안에서 시청 버스정류장 안내 방송을 듣고서야 떠올린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사가에서의 한가지 일정. 시청 전망대에서의 야경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