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카메라로 찍고 싶었는데 핸드폰 카메라가 점점 좋아지다 보니 무거운 카메라는 여행에 있어 짐만 되었다. 그렇게 몇년 동안 묵혀 뒀던 카메라를 오랜만에 짊어지고 갔던 홍콩. 카메라는 내가 짊어진 무게만큼의 만족스러움을 가져다 주었다. 나는 오렌지 빛을 좋아한다.
약간 노란듯 붉은듯한 그 느낌이 좀 더 감성적인, 마음이 몰랑몰랑 해지는 느낌을 준달까.
오렌지 빛을 머금은 노란빛?
이것도 잘은 모르지만 주워들은 지식에 의하면 캐논이 그 색감을 잘 담아낸다고 한다.
그래서 산 건 아닌데 사고 나서 들은 얘기다.
프레임 속 침사추이는 평소 내가 보던 모습과 달랐다.내 눈높이에서 보던 침사추이는 항상 인파로 바글바글하고 퇴근시간이면 버스 정류장으로 모여드는 사람과 버스와 택시들. 그리고 조금 삭막해 보이는 사막이 생각나는 흙빛의 시계탑과 홍콩문화센터.
약간은 차가운 도시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내가 찍은 사진 속 침사추이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이국적인 모습이었다. 높이 치솟아 있는 야자수들과 가로등, 그 뒤로 보이는 오렌지 빛깔의 시계탑과 맑고 푸른 하늘은 홍콩이 아닌 유럽의 어느 도시를 생각나게 했다.
감성에 잘 빠져든다.
너무나 쉽게, 너무나 쓸데없이.
비오는 날 카페 안에서 바라보는 유리창 밖 풍경, 눈이 부시게 내리쬐는 햇빛, 코끝 시린 초가을의 공기, 빛과 바람과 공기의 온도와 냄새까지... 모든 것이 예민하게 다가와 아드레날린을 뿜어내며 텐션이 한없이 올라가기를 허다하게 겪는다.
오후 네시의 홍콩의 빛은 그런 나에게 너무나 매력적이었고 감성의 시간으로 다가왔다.
감성만 있고 재능은 없는 나에게 가장 적절하게 매치되었던 건 필름 카메라다.
빛이 있는 곳에서라면 그냥 셔터를 누르기만 해도 있어 보이는 사진이 나오기 때문이다.
자글자글한 질감과 조금은 뿌옇고 빛바랜 느낌이 느껴지는 필름 카메라.
일회용 카메라는 가볍고 작동법도 쉬워서 앞으로 여행 갈 때 종종 이용해 볼 생각이다.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아도 감성 듬뿍 담긴 결과물을 가져다 주는 필름카메라는 홍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아련함과 빈티지한 느낌을 그대로 살려준다.
홍콩에는 여러 모습이 있다.
스탠리베이 안쪽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해변. Stanley Back Beach.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아담한 해변과, 커다란 나무그늘, 가는 길에 운이 좋으면 마작을 즐기는 할머니들을 마주칠 수도 있다. 나뭇잎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눈부신 햇빛은 언제나 기분을 좋게 해준다.
많은 사람들이 머레이하우스나 메인스트리트의 레스토랑에 앉아 유럽스러운 도시적 느낌을 즐기는 걸 좋아한다는데 내 취향은 캔 맥주 하나 들고 해변가에 철푸덕 앉아 멍때리며 있는 이 곳에서의 시간을 선호하는 편이다.
좀 더 낭만적이지 않은가.
홍콩의 날씨는 대부분 덥고 습하고 뜨겁다.
확실하진 않지만 1년에 9개월 정도는 태닝하는데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혹은 1년 내내.
9월에도 리펄스 베이에는태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편의점에서 산 잭콕 한병에 가벼운 소설 책 한권을 들고 나도 그들 사이에서 오후 네시의 햇빛 아래 드러누웠다. 따뜻한 햇빛 덕에 잭콕은 금새 미지근해졌고, 눈이 부셨고, 나른해졌다. 알듯말듯 미적지근한 듯 뜨거운 고전문학이 어울리는 온도였다. 위대한개츠비를 챙겨갔더라면 좋았을 걸...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진지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챙겨 간 내 잘못이었으리라.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네시의 홍콩은 따뜻했고 여유로웠다. 도심에서 버스를 타고 30~40분이면 멋진 해변이 있는 홍콩. 세련된 레스토랑과 태닝을 원한다면 굳이 동남아의 먼 휴양지까지 가지 않아도 화려한 도시, 가까운 홍콩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오후 햇살 아래 태닝을 즐겼다면 다시 도심으로 돌아가 해피아워를 즐기고 작고 허름한 식당에서 뜨끈한 완탕면으로 허기와 취기를 달랠 차례다. 혹은 야경이 멋진 세련된 루프탑 바를 가도 되고. 아직 한번도 가본적은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