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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기로 Mar 17. 2022

UI 디자이너의 PO로 성장하기 프로젝트

feat. 쿠팡의 프로덕트 오너와 스타트업의 프로덕트 오너는 다르다


브런치 글 50개 + !!

느린 속도로 쓴 글이지만 어느덧 50개 이상의 글이 발행되었습니다! 짝짝!


제가 주로 쓰던 글은 주니어 디자이너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기초 조형 디자인, 기본 디자인 이론, 핵심 개념 등 '디자인'이라는 카테고리를 크게 넘어서지 않았습니다. 그건 제가 여전히 디자이너라는 타이틀 안에서 역할과 한계를 규정하고 있다는 고정 마인드셋을 표상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라요. 디자이너의 진로나 연봉에 관한 여러 콘텐츠를 올리긴 했지만 저 역시도 '현재의 어느 지점'에 서서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한 명의 디자이너니까요.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지금까지 쓰던 글과는 조금 다른 결로, 저의 성장기를 써 보려고 합니다.


2년 전 스타트업을 퇴사하고 더 이상 직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그때는 조직이 지긋지긋했어요. 어디로 이직하나 시간이 지나면 비슷한 풍경이었고 특유의 집단주의 정서가 너무 싫었습니다. 그런데 타이밍이 참 기가 막히게 퇴사를 하자마자 많은 기업들이 재택, 리모트 근무로 강제 전환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졌죠. 개인을 지키면서도 조직 문화에 기여할 수 있는 환경으로 나아가게 되면서 제가 원하는 조직 환경을 직접 세팅해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여러 기회와 상황들의 변화 속에서 1인 기업, 프리랜서, 스타트업 창업 등 여러 방향으로 커리어 테스트를 하다가 지금의 회사에서 새로운 성장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어요.


*이제는 디자이너가 PO로 성장하는 프로젝트를 해 볼 타이밍이다.*



이 글이 도움이 될 분

-작은 스타트업의 1인 디자이너

-커리어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
-PO의 역할이 궁금한 디자이너






프로덕트 오너는
내비게이터다


PO(프로덕트 오너)란 무엇일까요? 매니저, 책임자라는 느낌은 오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오너니까 프로덕트의 주인, 최종 결정권자라는 것일까?


제가 PO의 역할을 가장 명료하게 이해한 방법은 기존의 비슷한 직업군이었던 PM (Project manager)이나 PL (Project Leader)과의 차이점 분석을 통해서였습니다. PO가 PM/PL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비즈니스의 우선순위에 관여를 하게 된다는 것과 결정 권한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미니 ceo라는 귀여운 별명이 있지요) 이건 프로덕트 기반으로 매출을 내는 회사라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예요.


프로덕트의 어떤 기능을 우선순위에 두고 기능 개발을 할 것인가

어떤 사용자 (고객)를 위해서 개발할 것인가.

시장 혹은 사용자 니즈를 어떤 방식으로 검증할 것인가.


한정된 자원으로 최선의 프로덕트를 만들기 위한 질문의 답이 비즈니스 방향과 일치하게 만드는 것 - 피오는 실무와 경영의 중간 접점에서 가야 할 방향과 현재 있는 방향을 지시하는 내비게이터라 할 수 있어요. 경영진의 역할이 가야 할 방향의 선정 (추상적이며 여러 개인 경우가 많다)이라면 현재 있는 위치를 명확히 인지하고 나침반을 한 곳으로 가리키는 역할 (집중해야 할 일을 진행시키는 것)이 환경을 불문하고 PO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면 PM/PL은 우선순위나 목표가 정해져 있는 프로젝트를 한정된 시간과 인력으로 관리하고 마무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PM/PL은 직무의 성격이 강한 반면, PO는 책임과 권한이 확대된, 직책의 성격이 더 강합니다.


사족 / 예전 회사에서 디자인 팀장님이 CPO 직책을 겸임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팀장님 하는 것을 보고 PO 역할을 완전히 오해했었죠. 당시 회사는 조직 문화상 수평적 혹은 바텀업 식의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CPO 역할을 누군가에게 주긴 줘야겠는데 이름만 주고 권한은 주지 않았던 케이스였어요. 이런 경우는 차라리 프로덕트 PM이라고 했다면 명료했을 것 같아요.








디자이너가 PO로

성장하는 테크트리


에이전시의 워터폴 관습 때문인지 제 머릿속에서는 PO/PM/PL = 기획자, 매니저, 윗 사람(?)이라는 암묵적 공식이 있었어요. 실무 하기도 바쁜데 무슨 매니징인가 싶기도 했고요. 내 할 일만 열심히 잘 하자 생각으로 프로덕트 디자인을 해 왔었는데, 일을 하면서 점점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과연
디자인에 한정된 것일까?

 

어쩌면 저는 디자인 이외의 것은 책임지고 싶지 않았는지도 몰라요. '디자이너'라는 명함을 자랑스럽게 달고 죽고 싶었고  실무자로서 제네럴리스트 (Individual Contributor)가 되느냐, 매니저로 직무의 중심을 이동하느냐에 대해 명백한 답은 전자였기 때문이죠. 저는 저의 강점과 한계를 아주 잘 파악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제가 가장 잘하는 것은 실무 역량이지 커뮤니케이션과 조율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결코 실무 역량 위에 매니징 혹은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두 가지는 별개의 재능입니다, 따라서 디자이너가 PO로 성장하는 것이 꼭 승진의 의미는 아니라는 점을 밝혀두고 싶어요! 단, 실무 위에 디렉팅이 있는 건 맞습니다 :))


각설하고, 지금 상태로도 딱히 문제는 없었지만 외부 미팅을 하면 자꾸 자기소개가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더라는 거죠.


"서비스 기획과 디자인 이외... (눈치)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담당하고 계시는 하기로님"이라고 저를 소개하는 대표님을 보고, 그리고 혼돈의 저 자신을 보고, 이제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할 때가 왔구나 깨닫게 되었어요.


"대표님,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역할이 프로덕트 오너 같은데, 이제 저의 정체성을 명확히 해야겠습니다"






당시 제가 하고 있던 디자인 이외 업무 리스트는 아래와 같았어요.


개선 및 성과 검증을 위한 서비스 kpi 수립

서서히 지표와 데이터에 눈을 뜨기 시작하며 ddux로 영역 확장
*10년 차 디자이너라도 회사 시스템과 자원, 문화가 바탕되지 않으면 데이터 드리븐 ux 따위는 꿈같은 이야기

출시 일정을 맞추기 위한 기능 개발의 우선순위 설정

회사 비전과 로드맵에 관여

회사 홈페이지, ir 자료, 채용, 기업 문화 콘텐츠 등을 리터칭(단순 디자인이 아닌 스토리텔링, 콘텐츠 메이킹, 카피라이팅 등)하며 회사 경영과 실무 사이에서 정보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됨

출시 후 개선을 위한 시스템 만들기와 우선순위(백로그) 생성 - 애자일로 이행

애자일을 도입하면서 프로덕트 팀의 문화 개선 연구

비즈니스 모델(경영)과 실무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 창구


이 업무들은 스타트업의 1인 디자이너라면 어쩌면 필수적으로 겪어야 하는 일들일지도 몰라요. 따라서 PO의 역할을 연차나 경력이 충분한 사람만이 해야 한다기보다는, 디자인을 하다 보면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질문들의 답을 생각하고 고민할 줄 아는 디자이너들이 반드시 겪게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에게 PO란 멋진 이름이나 직책이 아닌 내가 원래 하던 일에서 결정 권한과 책임을 더 지겠다는 의미로 다가왔어요.


다른 거 다 제쳐두고 결국 이 역할을 할 사람은 나밖에 없는 거야.







나는 PO 역할을 해 내기
충분한 사람인가?

이제부터는 시행착오입니다. 위 테크트리에 진입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어요. 항상 하던 일들이라 자신 있게 진행했고, 모르는 것, 내 경험 데이터에는 없는 것,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 간접 체험은 브런치 혹은 다른 칼럼의 도움 (참 좋은 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 또한 더 나은 업무 생태계에 기여하기 위한 사명감이라 쓰고 한풀이 글을 쓰고 있고요ㅋㅋ)


정말 어려웠던 건 스스로를 프로덕트 오너라고 선언한 후 느꼈던 부담과 압박감이었어요. 이것이 말로만 듣던 가장의 어깨인가? 피오 역할을 하겠다고 이야기하니 신나신 대표님은 프로덕트 오너라는 책을 선물하셨습니다. 입문자를 타겟으로 한 쉽게 쓰인 좋은 책이고 흥미진진했어요. 강 건너 불구경하듯 읽을 때는 말이죠.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그냥 하면 되지 했던 자신감이 바닥으로 꺼져가더라고요? 또르르.



이 책은, 아니 작가님, 아니 글을 쓰신 쿠팡 프로덕트 오너 김성한 님은 저의 이런 면들을 자극했습니다.


사람 사이의 매끄러운 소통을 위해 단어, 제스처, 눈동자, 표정, 조사 하나하나 신경을 쓴다.
ㄴ이걸 의식하기 시작하면 미춰버림, 글쓰기처럼 퇴고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원활한 감정 조절을 위해 카페인을 완전히 끊고 운동을 한다.
ㄴ이 대목은 충격적. 이렇게까지 노력하는구나...

동영상 리뷰 기능 같은, 워터폴에서는 '넣어주세요' 한 마디로 결정될 일도 결코 그냥 만들지 않는다.
ㄴ직관에 의한 발언, 많이들 이렇게 하는데요, 이게 훨씬 보기 편하지 않나요? (당장 증명하긴 어렵지만) 이게 사용자를 위한 길일 것입니다 같은 아이디어 베이스의 태도가 튀어나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위축
 

쿠팡 피오 님은 엔지니어링, 경영을 베이스로 삼고 있기 때문에 디자이너 출신의 PO와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디자이너의 DNA는 직관과 감성, 상상력에서 탄생했는데. 그렇다면 직관형 디자이너인 나는 피오 역할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일까? 저절로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어요.


쭈굴...






쿠팡의 PO와
스타트업의 PO는

다르다

바람직한 프로덕트 오너의 끝판왕을 간접 체험하다 보니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원래 저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구별을 매우 잘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레벨까지는 해 내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이끌어 갈 수 있겠구나 너무 많은 생각과 걱정이 절로 어깨 뽕을 넣더라는 거죠.


내 입으로 괜히 한다고 해서 대표를 실망시키는 것이 아닐까.

개발팀이 기대하는 역할을 해 낼 수 있을까.

지금까지 워터폴로 해 왔는데 애자일 전환에 성공할 수 있을까.

유효한 지표와 데이터를 우리 인력으로 모을 수 있을까.

데이터로 의사 결정이 가능한 문화를 어떻게 만들지.


그렇습니다. 제가 있는 회사는 유니콘이 아닌, 아직 mvp도 출시 전인 극초초초초초기 스타트업입니다. 실리콘밸리처럼 하고 싶은 마음과 별개로 아직 만들어가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은 신생아 기업인 것을 잠시 잊게 되었던 것이죠.


쿠팡과 우리 회사는 다른 회사고, 김성한 님과 하기로는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성장 방향의 롤 모델은 될 수 있지만 아기가 어른이 먹는 것을 먹으려고 하면 백 퍼센트 탈이 납니다. 오히려 안 좋다는 이야기






당위가 아닌
상황에 나를 맞추자


결국은 외부가 아닌 내부를 봐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현재의 나의 능력(강점), 나의 동료,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 시장 상황 등은 변수이자 과정이자 결과거든요. 가진 것에 집중하고 가지지 못한 것은 보완이나 개선의 영역에 두어야 합니다.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하면 방향은 분산되고 추진력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데이터를 최대한 많이 모으고, 데이터와 논리 기반으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며 일을 진행하는 모습은 많은 초기 스타트업이 꿈꾸는 이상적인 업무 환경일 것입니다. 실제로 주요 서비스가 시장에 먹히는지 빠르게 테스트해 보는 프로덕트들을 현실에서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이웃과 같이 주문하고 배달 팁 줄여요" (+대문짝만 한 큐알코드)

워드로 작성한 것 같은 A4 용지 한 장이 문 앞에 붙어있거나,

"배달 음식 그릇과 남은 음쓰 밖에 두기만 하면 다 치워드립니다"

지역 광고로 이런 것들도 봅니다.




사용자 테스트 없이 이런 서비스를 무작정 만들기 시작했다면 아무도 안 쓰는 서비스를 공들여 만들게 되었을지도 모르죠. 그렇다고 이 정도로 러프한 수준의 mvp만이 스타트업의 정답이냐? 그것은 또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용자 테스트나 니즈를 반드시 확인하고 진행해야 하는 프로덕트가 있는가 하면 자본과 마케팅으로 승부하게 되는 프로덕트, 초기 출시부터 경쟁사에 비해 프로덕트의 퀄리티가 높아 사용성이 매우 뛰어난 경우 등 여러 다양한 케이스가 있는 것 같습니다.


비즈니스 모델이 성공하기까지는 어떤 이벤트가 운으로 작용할지 아무도 몰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으로 향해 가는 최선의 방향은 주어진 자본을 가장 low effort / high impact에 넣고 집중 투자 및 실행하는 방법이겠죠. 리소스를 적재적소 가장 효율적인 곳에 쓸 줄 아는 것이 대표의 수완이 될 거예요.


따라서 프로덕트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PO의 역할은 실행을 위한 집중을 방해하는 모든 요인들을 제거하는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우선순위의 선정이란 그런 의미가 되어야 해요. tmi/ 저는 요즘 의도치 않게 노를 너무 많이 말하는 사람이 되고 있어요. 이것도 이것대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되긴 합니다.









잘 못하는 것은
과감히 인정


제가 가장 어려워하는 영역은 화술(말하기로써 표현)입니다. 사람과 상황을 재빠르게 파악하고 적절한 단어나 뉘앙스로 표현하는 능력이 뇌 속에 기본 탑재가 안 되어 있는 것 같아요. (뇌의 시냅스는 3살 전후로 끊어집니다) 말하기보다 글쓰기를 선호하는 이유도 생각과 표현을 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져서 그렇습니다. 체질이 재택근무인가 봐요. 대부분은 글로써 소통하거든요. 한 때는 단점을 평범한 수준으로 고치려고 스피치 학원을 다니는 둥 노력을 했는데 그럴수록 자신감은 더 결여되더라고요.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죠. 잘하지 못하는 것은 쿨하게 인정하고 주변의 도움을 받거나 최대한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편이 좋습니다. 어느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러기에 조직이 필요하고 협업이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프로덕트 오너 해 보다가 잘 안 맞으면 다시 IC의 역할로 돌아갈 수도 있고,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해 보지 못 했던 것들을 좀 더 시도해 보고, 브랜딩 디자이너로서 요즘 배우고 싶은 3D나 애니메이팅을 파 볼 수도 있겠죠. 커리어 방향성을 잡더라도 유연함을 살리면서, 가볍게 걸어가고 싶어요. 이거 못 한다고 죽는거 아니니까.


시니어 디자이너의 성장기, 재밌게 보셨나요~~? 이 분야는 배울 것이 항상 넘쳐나서 즐거운 것 같아요. 이 글을 씨앗으로 뿌려 내년쯤엔 브런치 북으로 발행하게 되길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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