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캐쳐-미국의 불안을 파헤치다
영화 폭스캐쳐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살해한 재벌가의 상속인 존 듀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역사상 가장 부자였던 살인자였던 탓에 당시 우리나라 뉴스에서 소개될 정도로 기이한 이 이야기는 카포티, 머니볼까지 실화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 왔던 베넷밀러에 의해 영화화 되었다.
평소 영화를 좋아하지만 내 취향이 무엇이라 뚜렷히 정의 하기 어려웠던 난 이 영화를 보고 드디어 그 대답을 찾게 되었다. 이제 좋아하는 감독이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베넷밀러가 좋아 라며 폼사리 잡으며 말 할 수 있을것 같다. 머니볼을 보며 느꼈던 공허함과 불안의 정서가 폭스캐처에서 더욱 증폭되어 다가왔다.
왜 좋은데? 라고 물으면 베넷밀러는 대화의 틈을 내버려둘줄 아는 감독이야 라는 멋진 대답도 준비해 놓았다. 정말 폼사리 난다.
주인공인 마크와 데이브 형제는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이다. 자산가인 존 듀폰은 폭스캐처라는 레슬링 팀을 만들어 이들의 코치를 자청한다.
인류 문명 초기부터 있었을 동물스러움. 두툼한 근육이 땀흘리며 맞닿을때의 끈적함. 불안하고 정돈되지 않아 금방이라도 선을 넘을것만 같은 몸짓. 레슬링은 매우 원시적인 스포츠다. 영화 속 소재가 다른 종목이 아닌 레슬링이란 점은 영화의 주제 의식을 보다 선명하게 한다. 그리고 이 모든것을 표현한 채닝 테이텀의 두터운 몸통은 영화 그 자체였다.
자연스레 영화 '마스터'가 떠올랐다. 첫번째, 세상과 유리된 커뮤니티에서 강력한 리더가 이끄는 공동체 생활을 한다. 두번째, 두 인물의 종속관계가 역전되는 순간 순간의 긴장감을 영화의 동력으로 삼는다. 존이 마크와 다른 선수들에게 코칭을 해주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움을 넘어 연민 마저 느껴지는 서스펜스를 낳았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반감움에 어린애처럼 잔디밭에 뒹굴며 즐거워하는 마스터 속 장면은 레슬링을 하며 즐거워하는 폭스캐처의 씬과 고스란히 겹쳐졌다. 너무나 이질적인 둘이지만 그러기에 서로의 결핍을 채웠던 관계. 두 씬 모두 이동진의 말마따나 약한 수준의 동성애 코드가 느껴졌고 이것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게 퀴어영화 겠구나 싶었다. 결핍과 갈망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뭐 그런것들.
아쉬운 점을 꼽자면 음악이다. 영화에 음악을 많이 쓰는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머니볼때는 음악을 넘어 가사로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해 불만이었다. 폭스캐처는 결말 부분에서 음악으로 긴장감을 올리려는 의도가 다소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대화의 틈을 내버려두듯이 소리도 내버려뒀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아, 이 대답 역시 폼사리 난다.
존 듀폰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은 마치 미국을 말하려는 듯 하다. 넘치는 부를 물러받았지만 채워지지 않는 결핍으로 파국에 치닫게 되는 모습은 미국이란 거대한 성이 실제로는 너무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 불안을 가진 곳이라 이야기 하려는 것은 아닐까? 계속된 폼사리 나는 대답에 지치겠지만 어쩔수 없다. 난 베넷밀러가 이 영화를 통해 미국의 불안을 탐구하려 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 영화는 단순히 존 듀폰이란 살인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 존 듀폰의 쉽게 설명되지 않는 목적성 없는 악행이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인지를 묻고 있는 영화다. 그리고 이것은 곧 미국민들이 가지는 불안은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그리고 이 불안은 과연 해결 가능한 것인지를 묻는 것과 같다. 마크를 쏘기로 결정한 그때 존 듀폰의 표정을 우린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우린 과연 듀폰이란 괴물의 출현을 막을 수 있는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