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남매에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꿀 Jul 08. 2021

2000원짜리 애착인형

딸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

때가 꼬질꼬질한 야옹이 인형


02. 딸에게


기특한 우리 딸, 지금쯤 너는 뭐하고 있을까? 친구들과 낮잠을 자고 일어나 이런저런 놀이를 하고 있겠지? 오늘은 '미세먼지'가 아주 심한 날이라 어쩌면 네가 좋아하는 바깥 놀이를 건너뛸 수도 있겠다.


엄마는 네가 어린이집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알 수 없어. 그저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상상을 해볼 뿐이야. 널 보살펴주는 선생님들을 신뢰하고, 네가 오늘 하루도 신의 가호 안에서 잘 지내길 바랄 뿐이지.


엄마는 어릴 적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닌 적이 없거든. 그래서 엄마의 과거 경험으로 추측해볼 수도 없지. 분명한 건 어린이집 프로그램은 매우 알찰 것이고, 너 또한 즐겁게 지내고 있다는 거야. 그렇지 않다면 네가 이토록 '등원'을 좋아할 리가 없지. 아침에 눈을 뜨면 현관으로 달려나가 신발 신을 준비부터 하는 너니까.


어젯밤, 너는 자다가 울면서 깼어.

"야옹, 야옹! 엉엉."

누가 보면 고양이 흉내를 내는 줄 알겠지만 엄마랑 아빠는 알지. 네가 야옹이 인형을 찾는다는 걸 말이야.


"그래! 엄마가 가져다 줄게."

엄마는 화들짝 놀라 거실로 뛰어나왔어. 어제 작은방에서 인형을 본 게 기억 났거든. 네가 잘 때 야옹이 인형을 침대에 둬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귀찮아서 깜빡 했더니 기어이런 일이 생기네.


인형을 줬더니 너는 안심하며 잠이 들었어. 얼굴을 야옹이 품에 묻고, 한 손으로 야옹이 꼬리를 만지작 거리면서. (덕분에 야옹이의 꼬리는 다리미질을 한듯 납작해 졌단다.)




그래, 야옹이는 네 애착 인형이야. J 이모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선물 받은 인형이지. J이모는 몸이 불편해. 어릴때 사고로 다리가 다쳐서 휠체어를 타야만 움직일 수 있단다.


J이모는 엄마에게 뭐든 주고 싶어해. 우리 집에 있는 상자, 발레리나 악세서리함도 이모가 선물해 준 거란다. 이모는 선물을 하면서 언제나 미안해 해. 좋은 게 아니라고, 새 것이 아니라고, 비싼 게 아니라고 말이지.


하지만 J 이모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일부를 선물로 내어주는 거야.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말이야. 네 애착 인형도 J 이모의 추억이 담긴 것이란다.


이모는 인형 뽑기 기계에서 야옹이를 뽑았대. 한 번에 인형을 뽑았다면 2000원, 몇 번 시도 했다면 아마도 배 이상이 들었을 거야.


왜 하필 가격을 이야기 하는 거냐고?3살의 네가 얼마나 특별한 눈과 마음을 지녔는지 말하고 싶기 때문이야. 오가닉으로 만든 새 인형보다 J이모의 손때와 추억이 묻은 야옹이 인형을 더 아끼고 사랑하는 너의 마음을 잊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야.


딸아, 세상에는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것들이 많단다. 비싸다고, 새것이라고, 화려하다고 가치 있거나 좋은 것은 아니야. 하지만 세상은 겉으로 드러난 조건만 보고 너무나 쉽게 평가한단다. 너 역시 세상에 나가면 숱한 평가를 받고, 때로는 평가하며 살게 될 거야.


하지만 그때마다 잠시 호흡을 멈추고 네가 사랑했던 애착 인형을 떠올려 보렴. 세상의 가치나 기준이 아닌, 그저 네 마음에 들기 때문에 힘껏 사랑하고 꼭 껴안아 주었던 야옹이 인형을 말이야.


엄마는 네가 야옹이 인형을 품었던 그 마음으로 세상을 살길 바란단다.


2020년 6월 20일

엄마가



(덧) 보관함에 이 글이 있었네요. 작년에 써놓고 일 년이 지나 올립니다. 그 사이 딸은 4살이 됐고, 아들은 2살이 됐어요. 그리고 딸아이는 여전히 야옹이 인형을 품에 껴안고 잠을 잡니다. 예전보다 말이 늘어, 더욱 다채롭게 애정 표현을 하지요. ^^






매거진의 이전글 너의 발은 안식년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