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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꿀 Jul 07. 2021

엄마가 밥솥과 상장을 보내왔다

[은유카드] 감옥, 상장

* 매일 두 개의 단어를 뽑아 은유 문장을 짓고, 떠오르는 이야기를 씁니다.
오늘의 단어: 상장, 감옥


감옥에 갇힌듯 뜻대로 되지 않던 어린시절, 학교에서 받은 상장은 내게도 잘하는 게 있고 희망이 있단 걸 가르쳐주었다.




엄마가 밥솥과 상장을 택배로 보내왔다. 두 달 간 우리(남편, 나, 첫째, 둘째)랑 함께 지내다 제주에 내려간 지 일주일만이었다.


상자를 열자마자 웃음이 나왔다. 6인용 빨간 밥솥을 신문지와 상장 무더기가 빙 둘러싸고 있었다.


'이것은 신개념 완충제인가?'

우리 엄마, 유머감각이 풍부한 건 알았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엄마에게 전화를 했더니 홀가분한 목소리였다.


"밥솥 보내는 김에 집에 있던 상장도 보냈어. 이제 네 물건 없다."


아아! 엄마는 대청소를 한 거구나. 치우고 싶었던 내 물건을 밥솥 핑계로 정리한 것이다. (고마워 엄마)


"아참! 너희 쓰던 밥솥은 나한테 보내라. 끊는다."

엄마는 이렇게 말하고 여느 때처럼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먼저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엄마 혼자 쓰기엔 너무 큰 6인용 밥솥과 4인 가족이 쓰기엔 다소 작은 2인용 저당 밥솥을 체인지 했다. 두 달 간, 생후 9개월 손주를 돌보며 막내딸의 살림살이를 지켜본 엄마에게 '장난감 같은 밥솥'은 못마땅하고도 서글펐던 모양이다.

(엄마,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돈이 없어서 작은 밥솥 산 게 아니고요. 탄수화물 줄이려고 작은 걸로 산 거라고요...)




상장을 봤더니 어린시절 내 모습이 떠올랐다. 뜻대로 되지 않아 잔뜩 성이 난 아이. 그러나 속은 외롭고 한없이 여린 아이. 슬프고 외로울 때마다 글을 쓰던 아이.



나는 유년기의 대부분을 할머니와 살았다. 바다가 내다보이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국민학교 입학식 날도, 운동회 날도 할머니 손을 잡고 갔다. 어린 마음에 몹시도 서글펐다.


날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보고 싶지 않은 날이 없었다. 왜 엄마랑 살 수 없는 걸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자주 생각했다. 물음표를 따라가다보면 "내가 착한 아이가 아니어서" 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언니, 오빠랑 달리 나는 바라는 게 많은 아이였다. 지나가다 쇼윈도에 진열된 물건이 보이면 사달라고 뒹굴었고,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엄마 말에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고분고분하지 않은 아이였다. 그래서 엄마가 날 데리고 가지 않은 걸까?나는 엄마가 좋은데. 비록 엄마가 내가 원하는 걸 다 들어주지 않고, 때로 크게 화를 내도 엄마가 좋은데. 아무리 혼나도 엄마랑 살고 싶은데.


나라고 착한 아이가 되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대체 착한 아이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 걸까? 만약 당시의 내가 하는 행동이 못된 아이의 것이었다면, 나는 어차피 착한 아이는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그렇게 생겨먹었으니까.


차라리 엄마가 구체적인 기준을 주었으면 했다. 다른 친구들의 엄마들처럼 상장을 받거나 시험을 잘 보면 원하는 걸 들어주겠다고 말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엄마는 나에게 구체적으로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다. 자식에게 바라는 게 없는 부모의 마음은 어떤 모양인 걸까. 당시의 엄마는 그저 삶이 바쁘고 벅찬 사람처럼 보였다.




왕복 두 시간이 넘는 길을 등하교하며 자주 생각했다.


"나는 왜 나일까?"

여덟, 아홉 살 때 했던 생각이다.


"나는 내가 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하면 삶이 감옥처럼 느껴졌다. 사방으로 둘러싼 바다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담벼락 같았다. 엄마에게 당장 달려가고 싶어도 돈이 없었다. 형기를 채워야 감옥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처럼, 나의 유년시절은 꼭 형벌 같았다. (다행히 나는 그 시간을 무사히 보내고 모범수로 졸업했다.)


당시에는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그렇지 않았다. 나에게는 맘이 맞는 친구가 있고, 언제든 내맘을 털어놓을 수 있는 일기장이 있고, 어렴풋한 꿈이 있었으니까.


엄마가 보내온 상장들을 훑어보며 생각한다. 감옥에 갇힌 것처럼 갑갑하고 외로웠던 그 시절이 나를 작가로 만들어주었구나. 밤톨처럼 작고 까맣던 나에게도 우주같은 꿈이 있었구나. 내게도 잘하는 게 있었구나.


"잘 버텨줘서 고마워."

어린 시절의 나를 꼭 안아준다. 너는 반드시 행복해질 거라고, 올레(제주어로 골목)를 외롭게 걸으며 되뇌었던 절망과 상상들이 너를 탄탄히 만들어 주었다고. 그 시간들이 네게 '오늘'이라는 상장을 주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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