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나라에서 먹은 온갖 식당 이야기
3월 말, 이박 삼일로 홍콩을 다녀왔다. 지인이 홍콩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손쉽게 계획하고 갈 수 있었다. 숙소 걱정 없이 여행을 간다는 것은 정말 많은 짐을 덜어준다. 그저 우리는 먹을 것, 볼 것, 마실 것만 잘 찾아보고 돌아다닐 루트를 짜면 됐었다. 딱히 사야만 하는 것도 별로 없었다. 짧은 일정이기에 짐도 간소했다. 둘 다 배낭 하나씩 들쳐 매고 갔을 뿐, 체크인할 캐리어는 필요 없었다.
오전 9시 인천에서 출발하여 홍콩시간으로 오후 12시 30분경에 도착했다. 바로 시내로 나갈 AEL라는 고속철도 티켓도 사고, Octopus라는 만능 교통카드도 구입했다. 미국 달러를 가지고 있어서, 공항에서 홍콩달러로 환전까지 한 다음 시내로 나갔다.
Olympic Station에서 지인을 만나 Tim Ho Wan이라는 Cantonese 음식점을 갔다. 미슐랭 가이드에 선정된 가게로 오후 2시 반쯤 갔는데도 바깥에서 웨이팅을 해야 했다. 홍콩 음식은 정말 한국 사람 입맛에 잘 맞는 것 같다. 내가 고수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특별히 코에 걸리는 냄새가 없었고, 재료들도 참 신선해서 딤섬 속 새우가 정말 탱글탱글했다. 딤섬은 쪄서 되는대로 나오는데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았고, 차근차근 나와서 코스가 아니지만 코스처럼 먹을 수 있었다. 4명이 247 HKD가 나왔다. 한화로 35,000원 정도. 첫 식사가 이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높여줬다.
1인에 279 HKD에 스테이크와 식전 빵, 샐러드, 질 좋은 스테이크를 즐길 수 있는 La vache에 갔다. 물론 와인이나 스파클링을 시키면 값이 조금 올라가지만, 우리의 호스트에게 대접하기엔 완벽한 저녁식사였다. CNN에서 홍콩에서 꼭 가봐야 할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이 곳은 메뉴를 오직 스테이크 하나만 선보이고 있다. 스테이크는 소스 두 가지와 케첩을 함께 서빙해주고, 다 슬라이스 해서 가져다준다. 스테이크 플레이트 밑에 초를 켜서 계속 따뜻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함께 나오는 감자튀김은 무한리필이라 고기로 배가 다 차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귀여운 일러스트와 와인병으로 인테리어가 되어있어 아기자기하면서도 트렌디하고 맛있는 집이었다.
Samsen은 Wan Chai에 있는 태국 음식점이다. 여기도 역시 미슐랭 가이드에 선정된 곳이고 현지의 맛, 분위기 등 을 잘 표현했다. 특히 소고기가 들어간 누들은 나도 처음 먹어본 음식이었는데 진한 육수의 맛이 생소하면서도 중독성 있어서 끝까지 먹게 됐다. 이 식당은 길가에 완전히 오픈되어있어서 문이 따로 있긴 하지만, 테라스 쪽에 자리가 있으면 그냥 뚫린 곳으로 들어가 앉을 수 있고, 홍콩의 좋은 날씨를 그대로 만끽하며 먹을 수 있다. 호스트 언니까지 세 명이 먹었는데, 맥주 두 병, 밀크티 한 잔, 음식 3개 시켜서 500 HKD 정도.
정말 배가 부르지만 안 먹어 볼 수가 없어서 IFC 3층에 있는 정두에 방문했다. 역시나 미슐랭에 선정된 곳. 완탕면은 사이즈를 정할 수 있어서 가장 작은 걸 시켰고, 새우 딤섬도 하나 주문했다. 서울에서 몇 번 완탕면을 먹어봤는데, 아 이게 정말 완탕면의 면발이구나를 알 수 있었다. 계란 노른자로 만든다는 이 면발은 특유의 식감이 있는데 파스타면과 다르고, 우리나라의 메밀면과도 정말 다르다. 과연 배부른 건 맞았을까 싶을 정도로 깔끔하게 다 먹고 나왔다. 차(茶)까지 마시고 나니 100 HKD 정도.
침사추이 쪽에 있는 탐짜이 쌈거에 갔다. 마라 국수의 맛은 우리나라에는 마라탕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는데, 나는 홍콩의 진짜 마라 국수가 처음이었다. 마라의 국물 맛은 시큼새큼 매콤 얼큰한 맛. 1인당 1주문서로 되어있고 주문서 종이에 원하는 데로 체크해서 직원에게 전달하면 된다. 즉, 탕 안에 어묵을 넣을지, 소고기를 넣을지, 면은 얼마나 할지, 그리고 맵기 정도는 얼마나 할지까지 다양하게 커스터마이즈 해서 즐길 수 있다. 해장하기 딱이고, 얼큰한 맛이 한국 사람의 보편적인 입맛에 잘 맞을 맛이라서 누군가 한국으로 잘 데려오면 좋은 사업이 될 것 같다. 다소 시큼한 맛은 조절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가격은 워낙 저렴해서 얼마에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홍콩에서 저녁까지 다 먹었지만 밤 9시에 급하게 뛰어가 문 닫기 전에 겨우 먹었다. 안 먹었으면 후회했을 맛이었다.
홍콩을 떠나는 날, 아침을 못 먹고 공항을 갔다. 사실 시내에서 워낙 갈 곳이 많다 보니 크리스탈제이드는 (한국에도 있긴 하니까) 계속 미루고 미뤄졌는데, 공항에서 먹을 곳을 찾다 보니 크리스탈 제이드가 딱이네. 탄탄면과 샤오롱바오를 시켰는데, 탄탄면이 먼저 나와서 한참을 먹다 보니 샤오롱바오가 따뜻하게 서빙됐다. 사실 좀 오래 기다렸는데, 샤오롱바오의 육즙 때문에 서운한 기분도 가실 정도였다. 나는 늘 만두, 딤섬 같은 stuffed food는 진짜 맛있는 것들을 집약해서 한 입에 먹을 수 있게 만든 혁신적인 음식의 형태인 것 같다고 찬양을 하는데, 특히나 샤오롱 바오는 그 안에 국물까지 넣어서 단연 가장 우수한 종이라 칭하고 싶다. 홍콩을 다시 오고 싶게끔 만드는 좋은 음식이었다.
이번 여행은 테마가 미식 여행인 만큼 맛있는 곳을 정말 많이 다녔다. 나와 함께 여행 한 여니 언니는 요식업계에 종사하면서 서울에서 '여니 투어'를 할 만큼 맛있는 곳을 많이 알고 있고, 나도 Foursquare, Google, Yelp 등 각종 맛집 리뷰를 검색해서 정말 검증된 곳을 찾아가는 취미가 있어서 둘 다 이 여행이 재미있고 취향에 잘 맞았었다.
'홍콩으로 간 두 여자 2' 에선 이틀 동안 돌아다닌 카페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