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 (1)
“우울, 불안 지수가 높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자기 자신을 끌어올리는 힘이 엄청 강하게 나오네요.”
돈도, 시간도 없는 주제에 살고 싶어서 찾아간 곳은 심리상담소였다. 작년 겨울이 시작된 11월, 매일 검색하며 집과 가까운지- 비용은 너무 과하지 않은지- 상담사는 어떤 생각을 가진 분인지- 꼼꼼히 살핀 후에 그곳에 갔다. 테스트를 한 후 결과를 설명해주시던 선생님의 가장 아리송한듯 내게 건넨 말이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 없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이니 몸으로 표현을 해주셨다.
“마음이라고 생각하면, (몸을 숙이며) 이렇게 바닥에 있어요. 근데 자꾸 그렇게 가라앉으면 안 된다고 위로 끌어올리는 거야. (어깨만 올리며) 그러면 어떻겠어요? 진짜 본심은 바닥인데 억지로 들어올리니까 몸과 정신에 긴장감이 돌지. 힘이 팍 들어가고. 그러면 몸도 아프게 되고, 힘든 거예요.”
아. 이해 완료. 그 이후 왜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지 못하는지를 더 알고 싶어졌다. 6개월 이상 선생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본질적인 문제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 같아 안도했고, 전처럼 죽고 싶다는 생각은 바위덩어리에서 조약돌 정도로 작아졌다.
그렇게 나는 괜찮아지기 위해선 나와의 화해가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 같아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
미안해, 항상 나보다 남이 중요해서 눈치만 보느라 내가 진짜 힘든 줄도 모르고 내가 보내는 신호를 다 무시했어. 다음에, 주말에, 시간이 나면 그때… 그런 핑계로 나는 날 위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어. 샤워를 하면서도, 베개에 머리를 대면서도, 지하철 환승을 하면서도 관계와 일에 대해서만 몰두했어. 사실 나는 내가 힘든 걸 알고 있었지만 그냥 시간이 지나면서 알아서 회복이 되기를, 괜찮아지기를 바랐던 건지도 몰라. 여지를 줘야 그게 가능했을 텐데, 온갖 추측으로 나 자신을 괴롭혀서 미안해.
미안해, 숫자에 나를 가두고 판단하며 혼만 냈던 거. 나는 참 언행이 일치하지 않지.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일기장에는 가능성과 영향력을 숫자로만 이해하지 말자고 했으면서 결국엔 방구석에서 나를 쪼아댔지. 출간한 책의 평점, 반품 수, SNS 좋아요와 댓글 수, 내가 해낸 것의 결과값. 이런 것들이 낮기 때문에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했어. 가장 위로해주고, 괜찮다고 다독여줘야 할 사람은 나였는데 이것도 못할 거면 이제 그만하라고 재능 없고 머리 나쁜년이라고 욕해서 미안해.
미안해, 탓만 해서. 시간이 꽤 지나도 단단해지지 않은 것 같다고, 물렁한 속이 진절머리가 난다고 가슴을 퍽퍽 쳤지. 나 자신을 인정해주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나는 그런 거 싫다고- 타인의 좋은 점만 쏙쏙 뽑아서 왜 나는 이러지 못하느냐며 닦달했어. 내가 무슨 원하는 걸 부품 교체할 수 있는 로봇도 아닌데 말이야. 아홉을 잘해도 하나를 못하면 그 하나에 집착해서 아홉은 안중에도 없었지. 잘한 것도 꽤나 많았을 텐데, 못한 것만 집중해서 나를 대접해주지 못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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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것은 자주 잊고, 흘려버려도 되는 것에 집착하는 모진 질병 같은 것들을 꽤 오래 달고 살았다. 하지만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나를 위한 시간, 내게 용서를 구할 순간들이. 상담선생님과의 대화보다 나와 책상에 앉아 대면하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안다. 용기를 내 시작한다, 화해의 손을 내미는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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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면서 하나 알게된 것은 내가 깊은 곳에 있는 어떤 덩어리를 마주하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무섭고, 두려운 거겠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쓰면서 나와 대화를 시도해보고 조금씩 한겹씩 벗겨내보면 직면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오늘의 화해는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