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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에서 사업 방향성, 결국 '나'의 정체성까지

쉽지 않은 책방 사업일기

by 한수련

2025년 내내 고민한 게 2가지가 있다. 하나는 '리댁션을 계속 해야 할까', 폐업하느냐 마냐의 문제가 6개월 넘게 내 목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그 문제는 다른 책방 사장님들을 만나 좋은 질문을 받고, 여러 이야기를 들으며 해결이 됐다. 어떤 형태로든 리댁션은 계속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지금 이 자리가 아니라도 6평 짜리 공간이 됐든, 정말 어렵다면 온라인으로 유지를 하든. 리댁션은 지금 모습으로만 유지되어야 한다는 나의 좁은 생각에 부끄러웠다. 한편으론 이런 경직된 생각을 하게된 건 내가 지금 너무 맞지 않는 환경에서 일하는 게 아닐까 라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두 번째 고민으로 이어진다. '내가 즐겁게 일하려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이건 아직도 내 마음을 흔드는 질문이다. 여기에 작은 조약돌 하나 던진 질문이 '서점과 서점지기의 본질은 무엇인지'였다. 나름대로의 답은 냈으나 그 질문은 다른 질문들을 계속 데리고 왔다.


"브랜드 마케터면 에이전시나 프리랜서로 활동할 수 있었을 텐데, 왜 서점이야?"

"서점과 서점지기는 여유와 느긋함이 있는데, 나는 그런 사람인가? 그런 이미지인가?"

"내가 처음에 추구한 '유쾌하고 발랄한 책방'이 사람들에게 필요로 하나? 매력이 있나? 또 올 가치가 있나?"

"나는 정말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나?"


리댁션 재계약이 3개월 남았기에 지금 더 조급한 것도 사실이다. 뭔가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 또 다시 위험을 감수하고 이곳을 이어가기에 겁이 나는 것도 있다.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아예 오프라인 공간을 없애는 건 나중에 크게 후회할 것 같다. 아직 여기서 못다한 일들이 많이 있어서...


내 일을 하는 많은 사업가, 창업가들이 그렇겠지만 '나'로부터 출발한 것이 각자 품고 있는 사업체일 것이다. 디저트 가게, 드립 커피 전문 카페, 마케팅 에이전시, 1인 크리에이터.. 각자의 개성을 안고 일을 시작하는 것처럼 나 역시 그러했다. 리댁션은 정말 온전히 '나'로부터 출발하기도 했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 일이 사람들과 세상에 필요한가?

모든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괜히 낭비와 오염을 주는 걸 만들어내는 건 아닌가?


이런 질문으로 시작된 게 결국 책방&라운지였고, 지금의 리댁션이 있을 수 있었다. 사적인 경험에서 느꼈던 좋은 어른의 부재라는 결핍을 책으로 채웠고, 책이 항상 내게 내일을 꿈꾸게 하는 가능성을 주었기에 그 경험을 전하고 싶었다. 요즘 워낙 일을 쉬고 방황하는 청년이 많다보니. 라운지는 책 읽을 공간이자 일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내가 프리랜서로 일하기 때문에 카페 출근이 잦았는데 길어봤자 2시간이었다. 눈치보이고 시간 제한 카페가 많기에.. 그래서 조금 더 안락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가꾸고 싶었다. 그 2가지 마음으로 출발!


그런데 6개월도 채 안 되어서 나는 금세 탈진했다. 지금도 감기보다 더 자주 찾아오는 게 번아웃과 무기력이다. 왜 그럴까, 왜 그럴까... 난 이 일이 맞지 않는지, 어떤 부분이 날 힘들게 하는지 등 나와의 대화를 자주 나눴다.


1. '책'의 정적인 이미지와 '나'의 발랄하고 유쾌한 이미지의 간극이 크다.

대중적으로 책과 책방은 조용하고 차분한 이미지. 물론 나도 그런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나의 전부가 아니다. 책방 안에 내내 있는 건 오히려 나를 소진시키는 환경인 것. 나의 수많은 캐릭터 중에 책이 가진 ‘진중함, 사유, 성찰’ 같은 대중적인 이미지가 지속가능성에 부합하지 않는 느낌이다. 100의 모습 중 책이 가진 이미지는 20-30인 것 같다.


오히려 난 사람들을 만나며 대화하고 웃고 유쾌하게 농담 나누는 발랄한 모습에서 활력을 얻고 재미를 느낀다. 거기서 이질감이 든다... 리댁션은 결국 ‘나’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나’의 모습이 투영될 수밖에 없는데, 유쾌하고 발랄한 책방 사장의 포지션도 좋다고 생각. (그런 사장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해주신다.) 다만 내가 이걸 계속 가져가고 싶은지 자문하게 된다. 서점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질(진득함, 침묵, 반복)이 '나'라는 사람과 거리감이 있다.


2. 리댁션의 정체성이 모호하다.

서점, 라운지, 모임. 크게 3가지 축으로 리댁션은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와주시는 분들의 목적도 명확하다. 정말 책 손님, 라운지 이용 손님, 모임 손님 다 따로 있다. 가끔 책 손님이 모임에도 나오고, 모임 손님이 책도 구매하시지만 리댁션을 찾는 이유가 명확하달까. 이건 결국 비즈니스 모델을 다시 설계하는 것과 관련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얘도 역시 '내'가 고민이다. '한수련 너 뭘 하고 싶냐고..' 나 스스로가 재미와 흥미, 믿음이 없다면 움직일 수 없기에...


더불어 와주시는 손님들의 이야기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우연히 오시는 분들은 다들 '북카페'라고 생각한다. 커피 마시며 책 읽거나 책도 구매할 수 있는 곳. 그게 대중적인 키워드이긴 하지... 그래서 더 듣고 싶다. 어떤 이유로 리댁션을 다시 찾아주시는지, 가장 좋았던 점이 무엇인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더 리댁션을 찾아주실지, 내 친구나 부모님을 데리고 올 수 있을지... 그걸 안다면 그 부분을 더 강화시킬 수 있을 테니. 리댁션은 내가 빠지고 다른 분이 운영하셔도 굴러갈 테지만, 손님들이 없으면 아예 운영이 안 될 테니까.


솔직히 책방의 기능을 아예 빼버릴까 싶었다. 온라인, 멤버십으로 전환하고 오프라인은 '꿈을 준비하는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라운지 기능을 강화하려고. 대신 각 책상마다 주제에 맞는 책 큐레이션은 더 강화시키며 1:1 맞춤형 고객 만족도를 높이고, 리댁션에 와서 확실한 충만함을 느끼고 갈 수 있게 설계하고 싶다. 그동안 워크인으로 책방 구경하다 책 구매가 가능했다면, 이제는 그게 불가능하고, 온전히 라운지에서 방문한 목적을 충족시키도록 구성할까 싶다. 이 역시 전환의 문제...


(이걸 쓰면서 또 느끼지만)결정, 선택은 역시 내 몫이다. 갑자기 북클럽 1기 <결국, 오프라인> 모임이 생각난다. 거기에는 '짬뽕, 짜장면 맛집은 있지만 짬짜면 맛집은 없다'는 문장이 있었고, 리댁션이 그런 게 아니냐는 멤버의 염려가 기억난다. 그때는 일단 해봐야 알 수 있으니 시도한 후에 짜장으로 갈지 짬뽕으로 갈지 결정할 시기가 내게 올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 시기가 지금 온 것인가? 아니면 너무 빠른 것인가? 어쩌면 할 필요가 없거나 짬짜면 맛집도 있는 것인가?


3. 혼자의 한계

혼자의 가능성보다 한계를 절절하게 느낀다. 주변 사장님들은 다 혼자 일하는데, 그걸 원해서 퇴사하고 일하시는 분들이다. 내향인, 묵묵하고 천천히 나아가는 걸 추구하시는 분들. 그래서 부럽고 존경스럽다. 난 그게 잘 안 되기 때문에... 난 외향적이고 생각이 들면 추진력있게 나아가는 속도감을 즐긴다. 물론 여유도 좋지만.. 그건 굉장히 일부같다. 그런 면에서 '서점'이 잘못된 건가.. 싶기도 하고..


혼자 일하면 기댈 곳이 없다. 온전히 다 내가 해야 하고, 책임을 지고, 결정을 내고, 행동을 취해야 한다. 그래서 더디다. 난 그게 답답한 것 같다. 내 머리와 노트에는 하고 싶은 것과 리댁션이 유지되기 위해 해볼만한 것들이 가득한데 혼자라서 좀처럼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그렇다고 직원을 뽑을 여력도 안 된다. 급여를 줄 상황이 안 되니까... 하지만 여기서 더 괜찮아지려면 움직여야 하고, 누군가가 필요한데, 그렇지 않으면 내년도 이런 상황이 반복되지 않을까 싶은데... 보상이 없으면 함께해줄 사람도 없고 지속력 없는 관계가 될 것 같아 꼼짝도 못하겠다. 일단 혼자 해야지 뭐..


박소령 저자의 <실패를 통과하는 일> 읽고 있는데, 거기서 꼭 창업자가 '대표'가 아니라도 된다는 구절이 나온다. 다른 창업자들의 사례를 들며 누구는 영업을 하고, 누구는 고객의 목소리를 듣고, 누구는 전략을 짜는 등.. 본인이 더 잘하는 파트를 한다는 거다. 나는 너무 영세한 사업체를 꾸리고 있어서 당장 불가하겠지만, 고민해볼만한 지점이다. 사실 명함에도 브랜드 디렉터라고 되어 있기도 하구 ...


결국 브랜드는 ‘상’이 맺혀야 하는데 리댁션의 ‘상’은 무엇일까 image를 고민하게 되는 것과 연결된다. 더 나아가서 내가 서점을 하고 싶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품고 몇 달을 지냈다.


여기까지 쓰면서 든 생각은.. 결국 리댁션 방향성 고민이 내 일과 삶의 방향성과 닿아있어서 내가 선택해야 할 문제인가.. 어제 손님들에게 물어본 고민 게시물을 발행하기에 앞서 내가 이걸 먼저 정했어야 했나.. 싶기도 하고 복잡한 요즘이다. (사실 어제 게시물 괜히 올렸나 하루종일 자책 중. 힘든 일만 올려서 .. 그치만 의견을 물어본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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