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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식 Jul 10. 2022

57살, 스타트업 세상에 뛰어들다

환갑을 3년 정도 앞 두고, 정확히는 만 57살 생일을 이틀 앞 둔 지난 4월 4일 레드힐코리아 사무실에 출근했습니다. 레드힐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글로벌 PR회사입니다. 스타트업을 주요 고객사로 하는, 테크 기업과 스타트업 전문 홍보대행사고요. 합류하게 된 사연은 길지만, 간단히 말하면 전임 COO가 갑자기 퇴직하는 '사고'가 생겼고 그 사고를 수습하기 위한 구원투수 자격으로 왔습니다. 다음 COO를 뽑을 때까지 잠시만 맡을 생각이었는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스타트업 세계라는 늪에 자발적으로 푹 빠지게 됐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만난 스타트업 사람들은 어떤 분들인지, 장년의 눈에 비친 이 세계는 어떤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세계에서 뒤늦게 시동을 걸고 사는 인생은 어떤지 소소한 얘기를 전해드리려고 글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한 달만 맡기로 한 결심을 바꾸는 덴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고객사인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만나는데, 뭐랄까요, 햇살 좋은 봄날 꽃이 활짝 핀 들판으로 걸어가는 기분이었거든요. 30대 초반이거나 많아야 40대인 창업자들은 눈부셨습니다.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었고 활력은 넘쳐 났습니다. 30대 청년인 한 창업자는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한국의 문제를 풀어보겠다며 시니어 산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아픈 아이를 가진 부모는 아이들의 교육을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 멋진 답을 찾아냈고요. 전 세계인의 아침을 활기차게 만들어 주는 앱을 개발한 창업자도 있습니다. 이 분들의 얘기는 한 분 한 분 나중에 자세히 소개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작년 말, 32년 기자 생활을 스스로 접었습니다. 언론인으로서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였고, 약간 지치기도 했습니다. 적은 나이가 아니지만 앞으로 10년 이상은 더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아 뭐 할까 고민하다가 '청년, 지원, 봉사'를 키워드로 해서 다음을 설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 세계로 들어왔습니다. 


고객사 창업자들은 정말 바빠서 긴 시간 만나기가 어렵지만, 때론 짧은 만남만으로도 많은 에너지를 얻습니다. 제 지인들한테는 "30대와 어울리려면 밥 사고 술 사야 가능할 텐데, 일로 만나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말합니다. 창업자들을 만나면서 내가 이 분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오랜 기자 생활을 통해 쌓은 언론사 인맥과 세상을 보는 안목을 이들을 위해 쓸 수 있겠다는 거죠. 기존에 해 오던 PR에 뭔가 좀 더 맛있는 양념을 얹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일을 시작한 뒤 실제로 많은 언론사 간부들을 만났습니다. 우리 고객사 홍보 뿐 아니라 빠른 속도로 커가고 있는 스타트업 업계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시간과 지면을 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상당수 스타트업들은 본인들을 소개하는 영문 뉴스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영자지 사장님을 비롯해 그 쪽 기자들도 만났습니다. 어느 정도 성과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역시 다음에 더 자세히 전해드리겠습니다.


기자 생활 시작하던 1990년대는 세계적으로 컴퓨터 보급이 늘어나고 통신이 폭발적으로 발달하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인터넷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2007년 아이폰이 인류 문명사에 또다른 획을 그었고 머신러닝과 AI는 앞으로 어떤 세상을 만들어 낼 지 가늠하기가 힘듭니다. 모든 것이 디지털로 바뀌고 있고 그 제일 앞줄에 스타트업 기업들이 있습니다. 우리 삶 전체의 Digital Transformation(DT, 또는 DX)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 현장에 있다는 사실은 저를 흥분시킵니다. 기자 생활 처음 시작하면서 '역사를 기록하는 현장에 왔다'는 사실로 가슴 벅찼는데, 그 때와도 약간은 비슷한 흥분입니다.


월급쟁이 생활을 접기로 했는데 얼마간의 월급을 다시 받게 됐으니 지갑을 열기로 했습니다. 저 같은 중장년이 청년들을 만날 때 지켜야 할 1호 수칙이죠.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라! 고객사 분들에게 밥을 살 일은 많지 않으니, 주로 이제 막 창업한 스타트업 사람들에게 열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밥을 사는 일은 매우 기분 좋은 일입니다. 대신 아내와 아들에겐 많이 미안하게 됐습니다. 집안의 요리사이자 가정주부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기대만큼 제가 스타트업 세상에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런저런 직함으로 스타트업에 뛰어든 중장년 몇 분을 알고 있습니다만, 그 중 일부는 잘 지내고 일부는 결국 견디지 못 하고 나왔습니다. 아무쪼록 몇 년이나마 제 희망대로 스타트업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저도 노력할 테니, 많은 조언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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