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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규진 Sep 30. 2015

뒤로 물러서면 더 잘 보이는 세상

3G 이동통신 표준이 만들어진 직후인 2000년에 ITU에서는 3G 이후의 중장기 계획 수립 차원에서 '3G 이후의  비전'을 만들기로 하였다. ITU의 3G 표준 제정 그룹의 부의장으로서 나는 비전 그룹을 구성하여 약 3년간 작업을 하여 2003년에 4G 비전을 완성하였다.

비전을 만드는 초기에는 이제 막 3G 표준이 만들어 지고 모든 국가가 3G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하는 시점이었으므로, 4G라는 단어 조차 사용하는 것을  금기시하였다. 즉 4G 비전을 만든다고 하면, 동 내용을 잘 모르는 국가에서는 곧 4G가 만들어 지니까 3G를  도입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오해를 줄 수 있으므로 4G라는 단어 대신 '3G  이후'라는 다소 어색한 단어를 사용해야 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4G라는 것을 언제까지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약 10년 후에는 뭔가 더 괜찮은 시스템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4G의 완성 일자를 2010년으로 정하게 되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과연 4G는 3G와 무엇이 달라진다고 비전을  제시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었다. 당시 전 세계의 수 많은 학자와 기술자들이 이동통신 기술 개발에 매진 하고 있었으므로 2,3년 후의 기술이 어떻게  진보하게 될지 예측하기도 어려운데 10년 후를 예측하여 비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자칫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당시 3G 시스템이 제공할 수 있는 용량은 최대 2 Mbps라고 되어 있었고, 이는 그 당시 유선 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용량과 유사한 것이었다. 불과 10여 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수준이었지만 당시로서는 무선통신으로 유선통신에 해당하는 용량을 제공한다는 것은 꿈을 실현하는 수준의 도전이었다.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통신 장비 업체, 학계, 연구소에서 온 전문가들은 10년 후 만들어 질 4G 용량에 대해 10배의 용량  증가(20 Mbps)부터 100배 용량 증가까지의 실현 가능한 숫자를 놓고 논의 하고 있었으나 통신 장비 제조업체들은 자신들이 과연 얼마나 증가된 용량을 만족할 만한 시스템을 만들지 확신이 부족하여 논의는 1년여의 시간만 끌고 합의를 이루고 있지 못하였다. 

그룹의 의장으로서 나는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구현 가능한 목표치에  연연해하기 보다는 차라리 보다 더 도전적인 값을 연구 목표로 제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내었다. 순간 나도 깜짝 놀랄 만큼 참석자 들은  조용해졌고, 모두 안심하는 표정을 보게 되었다. 그 후 논의는 활기 차게 이루어져 500배 용량 증가를 의미하는 1 Gbps라는 연구목표를 비전으로 제시하게 되었다.

일을 하다 보면 주어진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과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탓에 답답한 상황에 빠질 때가 있으나, 가끔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전체를 다시 쳐다 봄으로써 쉽게 해결방안이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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