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개인의 시간, 비치워크와 서핑 아웃렛
꾸따 비치와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우리 숙소는 하루에 3만원이 조금 넘는 가격이다. 침대와 작은 냉장고, TV와 옷장이 있고 한쪽 벽에는 아기침대를 두었다(3만원에 아기침대를 제공해준다!). 화장실은 현재 화장실 본연의 역할 외에도 부엌과 세탁실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에서 세수와 양치질은 물론 설거지와 아기 젖병 소독, 손빨래까지 하고 있다. 방 안에는 우리가 가져온 트렁크부터 이런저런 짐들이 쌓여있는데, 손에 집히면 뭐가 됐든 바로 먹거나, 던지거나, 찢어버리는 아이 때문에 대부분의 짐을 긴 선반 위에 올려두었더니 선반 위는 아수라장이 돼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와 함께 나흘 정도 지내니 숙소가 점점 아노미 상태가 되었다.
몸과 마음의 재정비를 위해 오늘은 아이를 데리고 나와 남편이 각각 따로 나갔다오기로 했다. 그러는 사이 집에 남은 사람은 '개인의 시간'을 가지며 정신을 차리기로. 오전에는 내가 단호를 데리고 꾸따비치 옆에 있는 비치워크몰(Beach Walk)에다녀왔다. 케이트 스페이드, 베스 앤 바디웍스, 톱숍 등 서양 냄새 물씬 나는 브랜드들이 1층에 포진해있었다. 2층에 올라가면 길 건너 바로 앞에 있는 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바다가 보이는 쇼핑몰이라니! 3층에 있는 푸드코트에서 3,000원도 되지 않는 저렴한 음식을 시키면 이 바다와 하늘을 보며 밥을 먹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거기 서서 한참 바다를 바라봤다. 해변에 서서 바다를 보는 것과는 다른 신선함이 있었다.
숙소에 돌아오는 길에 이곳이 적도에 위치한 섬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비치워크에서 숙소까지는 10분 정도 거리였는데, 작정하고 햇빛이 내리쬐기 시작하자 금세 지치기 시작했다. 단호를 메고 걸으니 더위를 먹는 게 가속도가 붙었다. 희미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숙소로 옮겼다.
아, 유모차를 몰고 싶다.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남편은 아기를 데리고 서핑숍 아웃렛에 다녀온다고 했다. 걸어서 가기엔 꽤 거리가 있는 곳이다. 아기띠를 메주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우리 때문에 더운 날씨에 계속 아기를 내보내는 것도 미안했고, 이래저래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보내야 한다! 남편에게 매달려 다리를 흔들며 가는 아기를 바라보며 문을 닫았다. 아기를 낳고 난 후부터 자유시간이 생기면 뭘 해야 할지 몰라 늘 허둥지둥 댔다. 아기가 낮잠을 자면 티비를 봐야 하나, 못 봤던 책을 봐야 하나, 밥을 먹어야 하나 하다가 결국 제대로 아무것도 못한 적이 훨씬 많다. 사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이 훨씬 많기도 했다. 글 작업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방이 너무 블랙홀이었다. 밀린 설거지를 하고, 난장판이 된 화장실 안의 세간살이들을 하나 둘 정리했다. 한 시간 가까이 아기의 방해를 받지 않고 신이 나서 청소를 했다. '개인의 시간'이라고 하기엔 너무 공적인 일을 했지만 속이 다 후련했다. 이게 바로 주부의 마음인가 보다.
얼마 후에 단호와 남편이 얼굴이 벌게진 채로 돌아왔다. 알뜰한 남편은 서핑숍에서 구경만 하고 돌아왔다. 고생한 단호에게 기내에서 받은 맛있게 생긴 이유식을 주었다. 긴 유리병에 담겼는데 'Creamy Pasta and Tuna'라고 적혀있다. 매일 소고기 양송이 당근 맛이나 닭고기 브로콜리 호박 맛 정도만 먹어본 단호에게는 새로운 식재료였다. 한 입 먹어보니 내가 먹어도 맛있었다. 너무 맛있으니 문득 아이에게 줘도 괜찮나 싶었다. 호주와 우리의 육아관이 얼마나 다른가. 5초 정도 고민하고 단호에게 한입 줬다. 단호는 너무나 잘 먹었다.
점심은 웬디스에서 믿을 수 없는 가격으로 나온 쪼꼬미 버거 세트에 20k(1,600원)를 먹고, 저녁으로는 배달앱 고젝(go jek)으로 아얌 바까르(Ayam Bakar)를 숙소로 배달시켰다. 닭 좋아하는 남편이 사진과 메뉴 설명을 열심히 읽고 시켰는데, 여기 와서 먹은 음식 중 제일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