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Whangarei 로......
여행은 계획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크리스마스날 이가 하나 빠지고 31일날 또 하나가 빠져 뉴질랜드 과수원 어딘가에 묻고 좋아했던 안 군은 지금 캠퍼밴 뒷좌석에 앓아 누워있다. 행동의 결과는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걸까. 이를 뽑을 때 우리는 1시간 30분 걸리는 곳에 떨어진 카이이위 호수에서 다시 왕가레이로 돌아오게 될 줄 몰랐으니.
점심 즈음 카약을 빌려 카이이위 호수에서 놀았다. 새해들어 계속 열이 오르락 내리락하던 안 군은 오늘도 오한이 있어 한여름의 호수가에서 유일하게 긴팔 방수재킷을 너줄하게 입고 모래를 조물거리고 있다. 얕은 물이라 모모만 구명조끼를 입히고 카약에 올랐다가 호기심에 급새파래지는 경계 가까이 가본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 경계 너머 저쪽으로 가봐야하지 않을까? 넘어가면 곧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물색에 소스라쳐 다시 노저어 오기를 여러 번. 경계를 넘고 싶어하는 사람의 심리를 자극하는 카이이위 호수는 매력이 있다!
점저로 라면이나 먹을까 하던 중 안 군이 혓바닥이 아프다며 기운이 더 없다. 혓바닥에 온통 구멍이!! 이 혓바닥으로는 먹고 싶어하던 라면이 문제가 아니라, 큰 병이 아닌가 싶어 겁이 더럭 났다. 전화도 잘 터지지 않는 곳이라 통신이 쉽지 않았으나, 겨우 연락이 닿은 김태훈아저씨께서 왕가레이의 병원으로 연락을 해주는 소동 끝에...결론은 발치로 인한 구내염. 우리말로는 아구창! 이란다. 안 군은 처방받은 약으로 입안을 소독하고, 강된장에 비빈 밥을 아파도 맛나게 먹었으며, 그리고 우리는 지금 아저씨댁 앞마당에 난민모드로 캠퍼밴 진을 치고 앉았다. 그제의 뜨거운 작별이 무색하게도....
왕가레이로 돌아오는 시골길 어디쯤에서 쌍무지개를 만났다. 평생 처음 보는 크고 선명한 쌍무지개. 호수에서도 물빛의 경계를 넘지 않았더라면 그 깊은 물빛이 주는 복잡한 감정의 뉴런은 생기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계획대로 카이이위 호수에서의 2박을 보내고 있지는 못하지만, 좁고 굽은 한적한 도로에 차를 세워두고 커다란 무지개가 둘이 되었다가, 또 꼬리를 지우며 사라지는 모습에 황홀해하는 경험은 기약없이 미뤄졌겠지. 우리는 틀 혹은 경계 너머로 넘나드는 법을 배워가는 중인가 보다.
우리는 밤에 좀 다퉜다. 계획한 대로 되지 않으면 예민하고 불안해지는 내 마음도 경계를 넘나듦에, 좀더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