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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푸 Sep 30. 2015

Hamilton, 너를 만나 다행이야.

Hamilton

  그러나. 가는 길엔 내 시선을 앗아가는 풍경들이 도처에 있었고, 한편 아이들은 내 손길을 수시로 필요로 했다. 애초에 서둘러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던 것이다. 9시쯤 해가 넘어가는 이 곳, 우리는 해밀턴으로 들어가는 길목 어딘가에서 석양을 맞이해야 했다. 마음은 조급하고 울고 싶은데, 석양도 울고 싶도록 멋지다. 낮은 구릉과 평원 위 넓은 하늘의 면적이 여러장의 도화지인 양 한 쪽은 블루베리색으로 물들어 있고 또 다른 쪽은 살구색, 조금 더 시선을 돌리면 환타색의 노을이 체리색으로 이어져 있다. 하나의 하늘에 이렇게 많은 색이 놓여질 수 있다니...고개를 넘을 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롤러코스터의 정상을 향하듯 누군가 심장을 쥐고 조물락거리는 뻐근한 느낌이 여러번이다. 

 
  이제 밤이 되니 언덕너머 해밀턴 시내에 가로등이 별처럼 빛난다. 헤드라이트를 찾아 급히 켜고 시내에 들어갔다. 인기척의 불빛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갑자기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우리의 발목을 잡지만 않았어도 그날은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그려졌을 텐데.
갑자기 나에게 갑의 도전장을 내민 것은 핸드폰 배터리였다. 구글지도는 배터리를 많이 잡아먹는다. 홀팍까지는 10분정도 남았다는데 내 배터리는 유명을 달리하셨다. 전기선 연결이 안 되어 충전도 못하고 시거잭을 연결하려해도 상점들이 모두 문을 닫은 시각. 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글지도 없이는.   
 

  나는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졌고  아이들은 초긴장상태로 내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히스테릭한 모습으로 차를 몰며 시내를 배회했다. 지금 생각하니 아이들이 얼마나 불안했을지...
차를 일단 안전한 곳에 세우고 생각해보았다. 정 안되면 이곳에서 노숙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에 공간이 생겼다. 그러고 나니 준모의 핸드폰이 보였고 그와 내가 같은 기종이라는 생각에 닿았다! 배터리를 교체하고 전원을 눌렀는데 이런....이것도 배터리가 없다. 그나마 몇 분 정도 남은 양으로 홀팍까지의 지도를 머리에 저장했다. 공원을 보며 우회전...공원을 보며 우회전...5분이면 가는 거리라는데 우회전 한 번을 잘 해야한다. 이게 마지막 희망이라며....

  결국 우리는.....으하하....홀팍을 찾았다!! 문은 닫혔지만 우리같은 여행자를 위해 사무실앞 임시 캠핑장을 마련해 둔 사려깊은 홀팍을. 그래도 인당 17불은 지불해야한다고 써붙여 놓은 철저하게 합리적인 홀팍을. 아직은 노숙보다는, 전기가 없는 곳일지라도 내 자리가 마련되어야 안심이 된다. 차는 진입은 못해도 사람은 들어가서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기에 감사해 하며 우리는 찐 옥수수로 저녁을 때우고 하루의 긴장과 노곤을 씻고 누웠다. 오늘 저녁 내가 너무 예민해서 아이들이 주눅이 잔뜩 들었다. 나만 믿고 이 멀고 낯선 곳까지 왔는데...생각하니 측은하다. 잠자리에 누워 마음을 누그러 뜨리려 혼잣말로 '여기라도 도착해 있어서 다행이야....'했더니 준모가 뒤를 이어 '주인이 친절하게 여기에 자리를 마련해 둬서 다행이야...' 하고 받는다. 이내 준현이가 '캠핑카가 있어 따뜻하게 잘 수 있어 다행이야...' 이어간다. 
 
  그렇게 다행인 것들을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동안 마음이 따뜻하고 행복해졌다. 다행이다. 고생은 했지만 피하의 해변을 눈에 담고 올 수 있어서. 잘 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정말! 다행이다. 오늘을 무사히 살아 남아서.



 * 사진을 찍을 정신이 없을 정도로 급박했음을 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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