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okopa fall, Kiwi house, Otohanga
여행을 다녀보니 숙소의 시설이나 분위기가 다음날 컨디션에 한몫을 한다. 오늘은 좋은 컨디션으로 출발했지만 덩치 큰 차로 좁고 굽은 2차선 도로를 운전하는 것은 여전히 힘들었다.
이 차는 동양여자의 신체치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는지....동양여자의 평균신장인 내가 액셀과 브레이크를 밟으려면 살짝 까치발 자세가 된다. 아니면 허리를 엉덩이 삼아 앉고 뻗정다리를 하거나. 오르막내리막 산길에서는 그나마 힘주어 꽉 밟아야 한다ㅠㅠ 한 시간쯤 운전하면 허벅지와 종아리가 뻐근하게 아파오는 부작용이 있다. 마로코파 폭포는 그 자체로는 볼만한 비경이었으나, 발도 못 담궈보고 오기엔 가고 오는 길이 너무 길었다. 계곡까지 내려가는 길이 너무 험해, 가다가 돌아온 우리의 모험심은 무색해졌고, 그덕에 오전에 내 다리는 벌써 풀어져 버렸다.
키위하우스도 그렇다.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키위새 군락지인 것 같은 광고가 무색하게도. 키위새는 단 두 마리. 그나마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어두운 자기만의 장소를 찾아 떠나 사육사도 어디있는지 모른다는 싱거운 대답을 듣고 말았다. 오히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큰 새장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앵무새를 본 것이 기억에 남는다. 앵무새는 늘 내 공간과는 분리된 새장에 갖혀있는 모습으로만 봤던 터라, 큰 새장 속에 함께 갖혀 한 공간에 놓여있는 경험이 참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래. 입장료는 이 경험치로 지불했다 치자. 애들은 오리떼와 한참 논 것으로.
오토로항아의 번화가에서 모모의 신발을 찾아헤맸으나 마땅한 게 없다. 작아진 신발을 아빠편에 보내고, 운동화 신고 다녔는데 물에 젖은 채로 신고 잘 안 말려서 냄새가 너무 심하다. 그리고 그 마저도 작아져서 신기 불편해 했다. 여기와서 많이 컸지만, 그래서 더 안고업고다니기가 힘들단 말이다!!
여기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화 내면 미친 사람인 줄 안다는데, 걷기 싫다고 어딘가 불편하다고 걷다 넘어졌다고 오빠가 괴롭힌다고 이유도 다양하게 안아달라고 쟁쟁대는 모모에게 자꾸 화가 났다. 그렇게 되면 안 군한테도 불똥이 튄다.
편한 신발을 못 찾아 모모를 안고 시내를 헤매느라 온 몸이 힘들고 아팠다. 미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얼른 홀팍을 찾아들어갔는데...나는 심지어 오토로항아가 싫어지게 되었다. 도시마다 느낌이 있지 않은가. 키위새도 상점가도 홀팍도 모두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었고 힘이 들기만 했으니까. 주변의 공장 소음과 가끔 들리는 사이렌 소리가 나를 긁었고 야외테이블에서는 개미들이 먼저 먹겠다고 떼로 달려들어 좁은 캠퍼밴 안으로 우리를 몰아 넣었으며 놀 공간이 없는 아이들은 자꾸 나에게 매달렸다. 홀팍마다 흔했던 그 나무 한 그루가 귀해 땡볕사이트뿐이어서 서쪽으로 지는 기분 나쁜 햇볕이 오래도록 우리 차 안을 맴돌아 차안은 찜통같았던 그 곳.
오누이의 싸움에 드디어 내 고함소리마저 더해져 최악의 저녁을 맞이해야 했다. 오늘 아침 로토루아나 타우포로 뜨지 못한 나의 선택을 탓하며. 그렇게 찝찝하게 누워 밤이 흘러가는 동안에도 바로 옆,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는 피트니스클럽에서는 빠르고 둔탁한 리듬소리가 공기를 울려오고 주변의 공장에서는 규칙적인 웅-소리로 밤새 잠들지 않았음을 알려왔다.
내일은 좋은 자연을 만나 정체모를 내 화가 누그러졌으면 좋겠다고. 아주 절실히 되뇌이며 겨우 잠을 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