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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푸 Oct 03. 2015

선택은 skyswing같은 것

Rotorua의 둘째 날

  오늘 아침 모모는 다행히 묽은 변이 멎고 열도 내렸다. 예정대로 체크아웃을 하고 루지를 타러 출발했다. 
같이 간 정진이 형제와 안 남매가 잘 어울려 참 편했다. 엄밀히 말하면 모모는 깍두기지만, 놀이의 즐거움을 공감해줄 10살 11살 12살 쪼로록이서 뭉쳐서 자기들끼리 잘 돌아다니니 그게 어디냐.

 루지코스가 여럿이어서 다섯 번이 지루하지 않았다. 모모도 내 앞에 앉아 제법 코스를 골라가며 재밌게 탄다.   

리프트에서 내려다 본 로토루아 시내


   정진이와 안 군이 끊은 콤보권에는 skyswing이라는, 우리나라로 치면 자이로X 같은 놀이기구가 포함돼 있었다. 높은 곳까지 올라갔을 때 손으로 끈을 잡아당기면 연결고리가 풀리면서 몇초간의 자유낙하를 경험하게 되는 놀이기구였다.

아찔하게 높은 곳까지 올라가 멈춘 스카이스윙_사진을 찍을 때는 몰랐네. 그들이 10분을 저기 있을 줄.


  둘이 정상까지 올라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제 끈을 잡아 당겨 내려올 차례.  끈을 힘껏 잡아 당기는 것 같은데 연결고리가 잘 안 풀린다. 아무래도 아이들이라 팔힘이 좀 부족한가보다. 아래에서 몇 분 올려다 보다가 안 되겠길래 그냥 내려주는 게 좋겠다 직원에게 말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놀이기구보다 더욱 공포스럽다. 내려올 수 있는 길은...끈을 잡아당기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내려주는 장치도 사다리도 없는 공중에 매달린 두 소년. 
  직원들이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는 말을 한국말로 바꿔 목청껏 전달하는 세 명의 어른 덕에 주위에는 이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아래의 사정을 알게 되면 아이들이 이성을 잃을까봐 되도록 침착하게 전달해 보지만 속은 별별 생각으로 시끄러웠다. 헬기나 구조대를 불러야하는 건 아닐까? 저 소년들은 저기에서 울며 석양을 바라봐야 하는 건가....11살 12살짜리들은 둘이 아무리 잡아당겨도 자유낙하로 이어지지 않는, 공중에 높이 떠서 다리는 덜렁이는데 안전벨트는 삐걱거리는, 남들은 3분만에 끝나는 놀이기구를 10분에 가깝도록 공중에 매달려 타게 되는 스릴의 지옥을 경험하게 되었다.

  세상 어느 10분보다 길게 느껴졌을 끈과의 사투에서 힘의 양과 방향이 맞아 떨어진 어느 순간, 예고도 없이 그들은 낙하되었다. 떨어질 때의 그 표정이란! 여행의 잊을 수 없는 순간 중 하나이다. 정진이는 형으로서 침착하게 상황을 이끌었고 안 군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끝까지 우리와 대화하며 여러가지 방법을 찾았다. 이성을 잃지 않고 포기하지 않은 소년들의 용기와 자유낙하처럼 갑작스레 떨어진 안심에 오히려 내가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어버렸다. 

35불을 주고 사지 않을 수 없었다. 매달려있는 소년들의 표정이 궁금했으므로.


  매달려 있어도 무섭고 떨어지는 건 더 무서운 그런 순간, 누가 도와줬으면 하지만 결국 누구도 도와줄 수 없어 구경만 하고 있는 _가장 무서울 때 멈춰진 놀이기구를 탄 것 같은 그런 인생의 순간을 우리는 가끔 마주하게 된다. 삐걱거리며 공중에 매달려 오랜 불안과 공포를 감당하든, 온 힘을 다해 끈을 당겨 더 견디기 힘든 상황이 될지도 모를 국면으로 들어서든. 선택도 자기 손에 달려 있어 더 울고 싶은 그런 순간. 이 소년들이 앞으로 마주하게 될 인생의 그런 순간마다 오늘 이 느낌을 떠올려주길 바랐다. 

  언제 그랬나는 듯 웃고 떠들고 있는 두 소년이 썩 어른스럽게 느껴진다.

언제 그랬냐는 듯 웃고 떠들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두 소년


  어려운 상황을 함께 돌파해 나왔다는 동지의식이 아이들을 더욱더 친밀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아이들은 마오리빌리지도 같이 가길 원했다. 예약시간을 맞추기 위해 우린 서둘러 남은 루지와 짚라인을 마무리하고 각자의 차로 출발했다. 내가 오지랖넓은 친절로 구글맵주소를 잘못 찍어드리지만 않았어도 계획대로 즐겁게 저녁을 함께 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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