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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네 경지 May 14. 2018

이드로부터 해방된 기투존재, 폴(2)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Attila Marcel)>; 존재와 기억

슈게트와 잡초, 그리고 공간 - 폴의 심리적 상태

 폴은 어릴 적 부모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로 인해 말을 하지 않는다. 그가 하는 일은 이모들의 춤 교습소에서 피아노 반주하기다. 대화를 하지 않고 대강의 의사소통만 가능한 그는 매사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런 그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동네 빵집에서 슈게트를 고를 때이다. 겉은 바삭하지만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속이 텅 빈 슈게트는 폴의 공허한 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즉, 보이지 않는 공기로 속을 채운 채 부푼 형태를 가진 슈게트는 부모(특히 어머니)에 대한 명확한 기억이 없는 폴을 의미한다.

슈게트를 고르는 폴과, 그것을 무기력하게 먹는 모습

 그런 그가 우연히 마담 프루스트를 만나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과자가 아닌, 남몰래 햇빛을 받아 비밀스레 ‘성장한’ 싱그러운 풀들. 너무나도 장대한 피아노(grand piano)인 나머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겐 비좁은 공간만이 허용되는 집과 대조되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이 곳은 그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장소는 아니지만, 폴에게 호기심을 갖게 하기에는 충분한 장소이다.

폴이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에 들어오자 생경한 풍경이 펼쳐진다.






폴의 십자가, 유년기

 폴을 기절시켜 몰래 열쇠를 훔친 마담 프루스트. 흔한 상징물로써 당연하게도, 폴이 가지고 있던 열쇠는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장치이다. 몰래 폴의 방에 잠적한 프루스트는 이상한 광경을 마주한다.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랜드 피아노는 남은 공간마저 집어삼킬 듯했다. 또 이상했던 것은 33세의 (겉보기에) 다 성장한 청년의 방에 유아기 때나 가지고 놀 법한 인형, 장난감, 사진들 투성이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사진은 어머니만 잘라 간직하고있다.

유아시절의 장난감이 가득한 폴의 책상



 그런 폴의 방에도 여느 평범한 사람과 다름없이 침대 머리맡에는 십자가가 걸려있다. 그러나 약간의 환경 변화(충격)에도 쉽게 떨어져 버리고 만다. 이에 보란 듯이 작은 곰 인형을 십자가 대신 걸어두고 나오는 마담 프루스트. 성자 예수가 33세에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십자가를 짊어졌음을 생각해 볼 때, 이러한 연출은 폴이 자기 의지와 관계없는 그리고 (마담의 차가 없이는) 기억하지도 못할 유년기의 기억이라는 십자가를 짊어졌음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20세기는 특출 나게도 변화가 많았던 시기였다. 아인슈타인은 대상과 물질을 에너지로 환원하였고, 음악은 소음과 청각 현상으로 해체되었으며, 미술은 진정한 비구상 추상미술에 이르렀다. 같은 시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현재’를 과거 유년기의 경험과 기억으로 설명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폴은 자신의 유년기를, 평생의 십자가로 짊어진 채 살아야만 하는 존재인가?






열쇠의 주인

 이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마담은 자신이 훔친 열쇠를 폴에게 돌려준다. ‘열쇠’는 타인인 프루스트가 폴의 마음속(폴의 방)을 들여다보게 해 준 물건인 동시에, 폴의 마음을 극복할 수 있는 열쇠 또한 그 자신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마담 프루스트는 언뜻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충실하게 따르는 듯하지만, 인간 주체는 그것을 스스로 돌아보고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캐릭터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프루스트는 스스로 사람들에게 비밀스러운 차를 내주지만, 그녀의 비밀정원이라는 공간에서 유일하게 ‘행복했던 기억이 현재의 고통을 달래주리라는 안일함’에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병들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자기 생명을 유지하고, 누군가에게 공간으로서 존재했던 나무가 더 이상 무가치한 ‘객관적 사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존재를 기억에 한정하면 인간은 참으로 덧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존재가 기억으로 환원된다면, 망각은 존재 가치의 상실이 되기 때문이다. 프루스트가 그토록 나무를 지키고자 했음은 마음이 병들어 그녀를 찾은 모든 이들의 존재가치를 대변해주고, 세상에 항변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오히려 그녀는 정신분석학적 이기보다 존재로서의 자유, 즉 실존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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