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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Mar 05. 2022

집이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총체'

뒤늦은 집 소개

이전까지는 딱히 독립 생각이 없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새로 옮긴 회사가 본가인 인천과도 거리가 있다 보니 자연스레 독립이 절실해졌다. 그래서 서른이 넘은 다소 뒤늦은 나이에 독립을 시작하게 되었다.


온전히 혼자만의 공간을 갖게 된다는 사실에 내가 떠올린 건 단 하나였다.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채워 넣자


여기까지 독립한 지 3개월 정도 되던 때에 적었는데, 무려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야 이 글을 다시 꺼내게  되었다. 이 공간에서 1년을 살았으니, 이제는 조금 더 진짜 나의 집을 소개하는 느낌으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각설하고, 전체적인 집의 모습을 찍은 사진부터 보도록 하자.


미드 센츄리 모던 콘셉트와, 지난 1년 간의 변화

초창기 테이블이 오기 전의 사진이다. 테이블이 없어 급하게 캠핑할 때 사용하는 간이 테이블을 놓고 사용하던 때의 모습이다. 테이블이 낮다 보니 허리가 아파 제대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테이블이 들어오고, 어느 정도 집에 굵직한 가구들이 모두 들어왔을 때의 사진이다. 지금은 여기서 한 두 가지 정도의 물건들이 더 추가됐지만, 대략적으로는 여전히 이런 느낌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좀 더 지저분해진 것 같긴 하지만..


처음 집을 구할 때 가장 많이 생각했던 건 자는 공간과 생활하는 공간이 분리된 집이었다.


평소에 요리를 자주 해 먹기 때문에, 주방이 있는 공간에 침대까지 있으면 음식 냄새가 날 뿐 아니라 위생적이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1.5룸인 지금 사는 집을 만나 들어오게 되었다.


전체적인 인테리어 콘셉트는 집 꾸미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알만한 미드 센츄리 모던 느낌으로 가져갔다. 작년만 해도 이 정도로 흔한 느낌은 아니었는데, 요새는 꽤 흔해졌다.


내가 미드 센츄리 모던을 선택했던 이유는, 가구 간의 조화를 상대적으로 덜 고민해도 된다는 것에 있었다.


유럽풍, 클래식, 앤틱 느낌이나 보타닉 느낌의 인테리어는 잘 관리할 자신이 없었다. 이들은 자칫 조화롭게 꾸미지 못하면 너저분함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 같았다. 때문에 전체적으로 통일감을 주지 않더라도 그것조차 나름의 멋으로 느껴지는 미드 센츄리 모던 스타일로 정했다.


이렇게 결정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서촌의 '이라선'이라는 사진 책방의 공간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첫눈에 반한 공간이었달까.

레퍼런스라고 하면 레퍼런스라고 할 수 있는 이런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공간을 꾸미기가 수월했던 것 같다. 인테리어는 보통 상상한 대로 잘 나오지 않는다. 아예 상상 자체가 쉽지 않은 영역이다. 하나의 가구나 오브제가 공간에 놓인 건 상상이 되는데, 여러 개의 오브제가 섞였을 때의 모습은 상상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확실하게 내 눈앞에 꾸며진 공간을 통해 내가 꾸밀 공간에 대한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미드 센츄리 모던을 콘셉트로 택한 건 오히려 초반보다도 살면서 더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아무리 처음에 다 갖췄다고 생각하더라도 결국 살다 보면 가구나 집기를 하나둘씩 더 들여놓게 된다. 그런데 미드 센츄리 모던 콘셉트는 전체적인 인테리어 톤에 어느 정도만 맞으면 무얼 들여도 그렇게 이질적인 느낌이 들진 않는다.


이를테면 아래 사진처럼 말이다. 최근에 1인용 소파가 필요하겠다 싶어서 이케아의 노란색 스트란드몬 윙 체어를 들였는데, 공간의 분위기를 크게 해치는 느낌이 없어 좋았다(물론 의자가 좀 유난히 큰 느낌은 있다...)

주변에서는 '자취방엔 뭘 많이 들이는 게 아니다'라는 말들을 했지만, 그래도 퇴근하고 집에 들어왔을 때 적어도 '내 공간'이라는 기분을 주고 싶었다. 퇴근해서 들어왔는데 휑하게 아무것도 없는, 특색 없는 공간이면 너무 싫을 것 같았다.


결국 지금은 얼른 퇴근해서 집에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집으로 만든 것 같아서 뿌듯하다. 부작용이라면, 집에 너무 가고 싶어 진달까.


특징적인 가구들

책장은 스튜디오 모쿠의 모듈형 책장이다.


책을 꽂을 공간이 부족하면 같은 곳에서 한 칸씩 따로 주문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어서 구매하게 되었다. 책이 많기도 하거니와 좋아하는 사진집 등 일반적인 책 사이즈와는 다소 다른 사이즈의 책을 꽂아야 할 때도 있는데, 칸막이 크기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실제로 두 칸만 샀다가 모자라서 한 칸을 더 사서 얹어둔 상태다. 저것도 지금 꽂을 공간이 없어서 더 살지 말지 고민 중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호평을 받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카페트와 벽난로다. 카페트는 사이즈를 실측해서 주문 제작한 제품이다. 거실에 파란색 카페트를 깔아주는 것만으로도 포인트가 되는 것 같아서 만족스럽게 쓰고 있다. 다음 집에서는 페르시안 무늬가 있는 카페트를 깔아볼까 싶어 진다.


벽난로는 그레이 멘션의 에탄올 벽난로인데 주말을 마무리하면서, 혹은 지인들이 놀러 왔을 때 불멍 & 감성용으로 종종 틀어놓는다. 에탄올 냄새가 많이 날까 봐 걱정했는데 거의 없어서 만족스럽게 쓰고 있다.


이 제품은 솔직히 처음엔 좀 과한가? 싶었는데 분위기 있게 즐기기 좋아서 무척 만족스럽게 쓰고 있는 아이템이다. 존재만으로도 공간에 분위기를 더해주는 건 덤이다.

이 공간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모아놓은 일종의 디스플레이 공간이자 취향의 공간이다. 오디오 테크니카의 입문용 턴테이블 AT-LP60 XBT과 LP들, 마샬의 블루투스 스피커 스탠모어 그리고 향수나 인센스 등 향에 관련된 아이템들이 모여있다. 내가 우리 집에서 제일 좋아하고 자주 찾는 공간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가장 나와 조화로운 공간

나는 미니멀리스트도 아니고, 그렇다고 맥시멀리스트라고도 할 수 없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집에 채워 넣는 사람이다. 그래도 대부분의 지인들이 집에 놀러 오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이 공간은 딱 너 같아서 되게 뭐가 많은데도 조화스럽다"


인테리어가 막막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일단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그럼 의외로 답이 쉽게 나올 수도 있다. 집은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총체'다. 그런 곳을 꾸밀 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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