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에서부터 방치된 지하의 낙서에 이르기까지 긴급한 전언들이 어둠 속에 새겨졌다. 그리하여 밤은 불가사의하게도 말의 장소가 되었다.
정원의 구성요소를 언급할 때 꽃, 물, 풀은 항상 포함되지만 동굴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클레망은 지적한다. 동굴은 궁궐의 장식품이나 단순한 공공 산책로가 아니라 놀이와 새로운 기술, 연극과 정치를 받아들이는 장소가 된다. 16세기 팔리시는 동굴의 반원형 벽에 소리를 부딪쳐 메아리치도록 해 '아주 재미있는 정원'을 만들었다.
뤽상부르 공원의 메디치 동굴. 공원 내 다른 부분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내는 이 공간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정신적 동굴로 변화될 수 있음을 그는 언급한다.
뤽상부르 공원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 정신적 동굴이라는 표현에 적극적으로 공감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이탈리아의 보마르조 정원은 괴물들의 정원으로 일컬어지는데, 기괴한 조각상들의 집합소로 16세기에 조성되었다. 정원은 대개 천국의 개념을 표현하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
보마르조 정원의 동굴 (출처: 위키피디아)
우리는 '동굴'의 역사적 자취를 매우 주의 깊게 고찰해야 한다. 동굴은 자유의 공간이다.
바이에른의 왕 루트비히 2세의 동굴, 프랑스 뷔트 쇼몽의 동굴을 잠시 언급한 후 클레망은 인류 최초의 동굴로 우리를 안내한다.
쇼베 Chauvet 동굴 안의 하이에나 그림 (출처: 위키피디아)
원시시대의 짐승뿐만이 아니라 생명력을 부여받은 하나의 세계. 이후 방해석, 응괴, 수정, 어둠, 물방울 등으로 만들어진 경이로운 정원을 만난다고 그는 설명한다.
현대의 정원들은 시선의 피난처라는 동굴의 원칙을 버린 듯하다.
라데팡스 아치문과 센 강 서부 사이에 계획된 개발계획. 그는 그 계획이 참나무 숲처럼 원시적이고 대대적인 형태에서 동굴 같은 가장 까다로운 형태까지 두루 갖추고 있는 자연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게 되어 있었는데 실현되지 못했다며 아쉬워한다.
신개선문 서측에는 무한히 연장된 것만 같은 전망대가 놓여있다. 이 주변으로 동굴이 계획되었다고 한다. (출처: https://www.paulchemetov.com)
동굴에 대해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동굴이 투사된 세계이며, 언제 어느 때 태양이 그것을 불태워버릴지 모른다는 말은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