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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랑제 Aug 06. 2022

질 클레망,『정원으로 가는 길』08

달팽이의 꿈

달팽이는 자기가 사는 환경 속에 존재하는 독성물질을 자신의 껍질 속에 축적한다. 하나의 건물을, 즉 자기 집을 위해 독성물질을 저장하면서 동시에 내버리는 것이다.


가시가 많은 아프리카 아카시아는 잎을 쓰디쓴 탄닌으로 채우는데, 이 탄닌은 잎을 너무 오래 뜯어먹는 임팔라와 쿠두를 물리친다. 이 아카시아 나무는 동시에 에틸렌 가스를 방출하여 주변의 아카시아 나무들에게 경고를 보낸다.


아프리카 자넷에서 찍은 사진. 여러 동물들이 나무에 들러붙어 잎을 뜯어먹고 있었다.


이 챕터에서는 달팽이와 나무의 사례를 통해 자연의 공동 발전과 다양한 적응의 메커니즘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이 시작된다. 이어 인간의 경우가 소개된다.


인습적인 정원사는 자연의 메커니즘을 무시하여 그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상업적 질서에 복종하며, 가장 간단한 방법을 사용하고, 포장상자의 뒷부분에 쓰여 있는 지시사항을 그대로 따른다. 그는 군인처럼 차려입고 창과 분사기로 무장한 다음 전면 공격을 개시하여 닥치는 대로 죽인다.

미디어는 점점 더 앞당겨지는 인류의 종말을 노래하는 이 시대. 정원의 그림은 어떻게 그려져야 하고 생태학적 시대의 정원에는 어떤 형태가 부여되어야 하는지 그는 묻는다.


생태학적, 경제적 급변에 의해 제기되는 새로운 문제들은 조경가들을 새로운 탐험 지역(그들의 노하우를 적용해 볼 수 있는)으로 데려간다. 더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그 같은 문제들은 조경가의 마음속에서 건축가가 아닌 정원사를 자극한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비록 대수롭지 않고 국지적인 것이라 할지라도)는 지구의 전반적인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


조경계에서 매일 부딪히는 의문과 고민들이 그의 입에서 통해 내게 전해진다. 그렇다면 정원사는 정원의 구성과 미학, 재료들의 분배, 형태, 조직, 재료들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으로 그 역할이 한정되어야 할까.


그는 20세기 말부터 제3의 임무가 정원가에게 덧붙여졌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사명감으로, 종들을 보호하고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목원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종의 보전이다. 사진은 국립세종수목원 온실 내부.


우리 미래의 '보관소', 생명과 표현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우리의 공간이 마련되느냐 마련되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이 예술가의 손에 달려 있다.


미래에 대한 기대는 진술되기도 전에 무산되어 버리고, 중요한 것은 결과뿐인 이 사회에서 정원은 조립식 무대처럼 순식간에 만들어지지 않고 서서히 완성되는 존재로서 의미를 지닌다. 생태학의 영역에 필요한 시간이 예술가의 계획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생물체는 고정된 형태로는 견뎌내지 못한다. 그것은 형태를 차용하여 즉시 버리고, 스스로 변모하며, 공간을 변화시킨다. 생태학적 정원은 형태 변화의 정원이 될 수밖에 없다.


인제 '비밀의 정원'의 겨울사진 (출처: 이미옥)
인제 '비밀의 정원'의 가을사진 (출처: https://blog.naver.com/mrkwak)


정원이란 공간 속에서 정원사는 극도로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왜냐하면 그 공간을 공유할 수 있는 모든 생물체들이 거기서 생활조건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 그는 계속해서 귀를 기울이며, 정원에서의 그의 존재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길게 이어진다. 그러나 오늘날 그런 여유 있는 시간을 들일 사람은 잘 없다.


가족들이 참여하여 경쟁 없이 자전거 경주(프랑스는 투르 드 프랑스라는 자전거 경주로 유명하다)를 벌이는 알테르투르 Altertour에서 그는 힌트를 얻는다. 매년 농업과 사회, 에너지, 경제, 연대의 분야에서 대안을 맞이하려고 하는 이 위의 참가자들은 생물학적 다양성과 느림, 환경에 대한 민간성의 상징인 달팽이의 꿈을 공유하려고 노력한다. 여기서 우리는 '정원'에서 함께 살기 위해 취해야 하는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알테르투르 포스터 (출처: https://www.altercampagne.net)


생태학적 시대에서는 역사가 지금까지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해 온 울타리 쳐진 땅에서만 활동할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바람, 동물, 개미나 아프리카 영향, 이동하는 인간들, 이 모든 것이 지구적 규모에서 혼합되어야 한다고.


그리하여 오늘날의 조경가-화가-정원사(함축된 의미의 환경론자)는 두 가지 수단을 갖추어야 하는데, 둘러싸이지 않은 땅과 긴 시간이 바로 그것이다.


둘러싸인 부지와 짧은 시간이라는 한정적인 조건에서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현실. 그의 철학이 언제 우리의 현실에 깊숙 다가올지 가늠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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