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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연 Jun 06. 2017

57.본격적인 결혼이야기...

그 무지막지하게 화려한?????서막을 열다

4월말 쯤 결혼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구체적으로 밀어붙인 것은 5월 시험관 시술을 위해 병원을 다녀온 이후였다. 결혼을 해야 시험관 시술비용에서 유리하거나 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모로 결혼식이 더 하고 싶었던 것 같다. PACS로 살고 있었기에 프랑스에서 모든 의료혜택은 이미 결혼과 동일한 상태였다. 사실 5월 이후 우리가 한국에서 결혼 하는 것에는 합의 했으나 언제라는 것에 그는 서두르고 싶은 마음이 “”또“” 없었던 거 같다. 하지만 시험관 시술에 필요한 모든 검사를 마치고 6월 말에 병원을 갔을 때 다가올 8월에는 아무 일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는 결혼식을 8월에 한국에서 하고 돌아와 9월부터 다시 병원과 차후 일을 진행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나는 그에게 8월에는 아무 일이 없지 않느냐 완벽하다 우리 한국에 결혼식하러 가자라고 하니 그때부터 이게 또 무슨 재난인가 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성수기지 않느냐, 시험관 시술을 하고 나서 결혼식을 해도 되는 거 아니냐 등등등,,,,, 진짜 확 그냥 자고 있으면 모른 척 한 대 퍽 침대에서 밀고 싶었다. 나는 큰소리 내기 싫었다. 조용히 트렁크 가방 바닥에 내려놓고 며칠 보내고 또다시 협박해서^^;;; 우리는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드디어 구매했다.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 간다는 게 이런거 구나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우리의 결혼식 준비를 위해 2주 먼저 한국에 들어가고 올리비에는 2주 뒤 도착해 한 달간 한국에서 지내기로 한 것. 티켓팅 이후 날짜 장소 등등 결혼식에 대한 많은 것을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이미 7월 중순이라 모든 것이 다 늦은 건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하나씩 천천히 해나가자는 심정으로 준비를 했다. 한국 들어가기 일주일전, 올리비에에게 그의 아버지 성함을 정확히 물어봤고, 대답하는 올리비에는 왜 묻느냐고 인상을 쓰며 나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청첩장에 필요해서라고 하자. 너무나 단호하게 “소연 no! 쓰면 안돼!” 하는 것이다. 나는 이건 또 뭐??? 에? 라고 반응했고 그에게서 이 결혼은 자신의 부모와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한국에 가시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부모님 이름을 넣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 무슨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게다가 돌아가신 나의 시아버님 의견은 어찌 물을 건데????? 암튼 나는 한국 청접장의 기본 포맷을 설명하며 양가 부모님의 존함을 넣고 우리가 누구의 자식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설명해주는 것이고 부모님 존함 밑에 아들, 딸이라는 표기방식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1시간 넘게 설명하고 또 설명했지만 그로부터 돌아온 말은 “불가능”이라는 형용사의 반복뿐이었다. 머리가 하앴다. 뭔가 모르게 절대 안 된다고 계속 반복 하는 거도 얄미웠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너무 당황했고, 잘 조리있게 상황을 되집어 보고 설득해보고 설명해보고 하는 단계를 도저히 할 기력이 나는 전혀 없었다. 나는 너무 지치고 짜증나서 나로써도 부모님 이름 넣지 않고는 청첩장을 만들 수 없다고 고집을 피우며 나 또한 “불가능”하다라고 응수했다.     


‘불가능 vs ’’불가능’ 두 불가능이 탁구공 튀듯 주고 받아졌으니 분위기가 어떠했겠는가??? 진짜 뭐하나 결혼이야기를 꺼내서 나는 단 한 번도 기분 좋았거나 내 맘대로 되는 게 없었다. 정말 서럽고 어렵고 힘들고 괴롭고 서운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온몸에 기운이 다 빠져 나가 나는 다 때려치고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우리들의 청첩장에 그의 부모님 성함은 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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