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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연 Jun 15. 2024

2.일 시작 2주도 안되어 홀로된 나

김밥옆구리는 왜 그렇게 잘 터지는것인가! 그리고 우연히 마주친 승범씨

2019년 4월 1일, 내가 일을 시작한 오페라의 한인마트 내에는 '카페테리아'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푸드코드가 있었다. 사람들이 음식을 사서 바로 먹을 수 있는 공간은 없었지만 점심시간이면 대부분 프랑스 직장인들이 줄을 서서 당일 아침에 준비한 음식들을 사갔다. 평소에 장을 보는 한국 손님도 많은 매장이었지만 점심시간엔 대체로 주변 직장을 다니는 프랑스인들이 김밥을 사고 한식 도시락을 사가고 있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했다. 일을 시작한 이곳에는 5년, 4년 정도 이 매장에서 일을 해온 베테랑 언니가 두 명 있었다. 언니들의 가르침에 따라 나는 언니들이 하라는 대로 음식을 담고 도시락을 만들고 진열하고 김밥 싸는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언니들은 뭐 손을 몇번 스르륵 움직이기만 하면 김밥이 휘리릭 만들어지는 신기한 광경을 선보였다. 

어찌나 멋있던지!!! 


매일 아침 샹젤리제에 위치한 메인주방에서 닭튀김, 해물파전, 김치전, 잡채, 김치볶음밥등등 다양한 음식들이 당일 아침에 만들어져서 이곳으로 배송이 이뤄졌다. 따끈따끈한 재료들을 배송통에서 꺼내면 음식냄새에 배가 고파오기도했다. 가능한 예쁘고 정갈하게 도시락에 규칙대로 넣는 일이 퍼즐 맞추는거처럼 재밌었다. 비빔밥을 하고 나면 잡채를 하고, 잡채를 하고 나면 돈까스 도시락을, 그리곤 김치볶음밥을 이런식으로 언니들이 이미 일을 하고 있는 순서와 리듬이 있었다. 열심히 그 리듬을 익히기 위해 모든 나의 에너지를 사용했다. 각종 음식이  따뜻하게 보존되는 온장고와 차갑게 팔아야 하는 냉장고에 각각 다르게 진열하는 일도 처음에는 어찌나 헷갈리던지 실수 하지 않으려고 난 눈으로 외우고 또 외웠다. 점심시간 고객을 위해 김밥과 도시락 작업을 어느 정도 마치면 어느새 오후 1시반 2시였다. 30분의 휴식시간을 (이때에 먹는 밥은 정말 꿀맛이었다~) 갖은 후에는 다시 내일 사용할 재료들을 준비하거나 김치, 깍두기, 단무지 무침등의 반찬을 만들거나 해동한 반찬들을 소분하는 일들을 하였다. 그렇게 4시반이 되면 나의 일과가 끝나는 것이었다.  


대학다닐때 까페 알바를 해보긴 했지만 하루 7시간을 서있는 것이 이렇게 힘든일인지 정말 몰랐다. 나의 절친은 연예인 배우 모델들에게 헤어스탈일링을 해주는 일을 이미 25년째 해오고 있었던 터라 어떻게 그렇게 긴세월 서서 일했니 라는 말을 카톡으로 맨날 보냈었다. 평소 쓰지 않았던 근육과 노동강도에 나의 팔다리 어깨 허리가 상당히 놀랐었고 집에 도착하면 나도 모르게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거실 바닥에 대자로 누웠던 기억이 난다. 


초반 2주의 시간은 정말 " 난 누구 여긴 어디" 의 심정이었다. 그렇게 2주를 향해가는 수요일쯤이었을까? 갑자기 2명의 언니가 모두 아픈 바람에 둘다 출근을 하지 못했고 나혼자 덩그러니 150개의 김밥과 최소 100인분 이상의 도시락을 혼자 작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아... 소고기 김밥, 참치김밥, 김치김밥 등등... 김치 김밥에는 야채를 조금 다르게 넣었는데 ... 출근하자마자 바로 김밥을 싸고 도시락을 했지만 언니들이 메인으로 하면 그저 보조만 하던 나였기에 정말 멘붕이 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모든 기억력을 총 동원하여 혼자서 3일 내내 김밥을 싸고 도시락을 만들었다. 그리고 각종 재료가 있는 큰 냉장고 방을 가보니 언니들이 깍두기를 하려고 무를 잘라 절여 둔 것이 아닌가??? 그대로 두면 다 버릴거 같아서 그냥 나는 내가 평소하던 스타일대로 깍두기를 만들었고 마트의 매니져님에게 시식을 해보라고 하니 맛있다는 엄지척싸인을 보여주셨다.. 휴 ~ 그렇게 빡시게! 신고식을 제대로 치뤘다. 


얼마 후 언니들이 돌아왔고 엄청난 신고식을 치룬 이후에는 자꾸 터지던 김밥 옆구리도 더이상 터지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김밥 싸는 기술이 점점 향상되던 그해 여름 무렵 마트에서 손님이 " 잡채 하나만 주세요" 라고 해서 네! 하고 손님에게 건내려고 보니 영화배우 류승범이 아닌가!! 승범씨와 나는 <주먹이 운다>와 <야수와 미녀> 두 작품을 했던 인연이 있었다. 


" 에? 누나 여기서 뭐해요??" 승범씨가 나를 바로 알아보았다. 

" 나 알바해 하하"


그렇게 승범씨와 우리는 서로 달라진 근황 수다를 잠시 나눴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길에 ...여러 감정이 떠올랐다. 여기서 알바를 하고 있는 내가 부끄럽고 그런거는 전혀 아니었다.  그저 우리의 인생이 정말 한지 앞을 알 수가 없구나....내가 영화 하다가 어느날 이렇게 파리에 살며 김밥을 싸고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그리고 또 승범씨도 당시에 파리에 살고 있었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주먹이 운다>로 칸느 영화제도 같이 갔었으니까 나름 프랑스와 인연이 있다면 있었던거네~ 


인생은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냥 삶의 매순간,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만족하고 행복하게 지내자 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같이 일하는 서른살 정도된 남자 동료가 "이모는 꿈이 뭐에요?" 라고 나에게 물었다 (내가 당시 마흔 일곱살 정도 였는데 이모라 불리우는게 어색하다고 항변했더니 누나는 아니잖아요???라며 나에게 끝까지 이모라 불렀던 친구다. 누나 해도 되겠구만....)   


"나?? 나는 꿈을 다 이뤘는데" 라고 하니 깜짝 놀라는 눈이었다.

" 난 영화일을 하고 싶었고, 파리에 살고 싶었고, 딸을 낳고 싶었어~ 그러니까 난 다 이뤘어" 

라고 하자 그 직원은 자기가 이런 질문을 헀을 때 나처럼 꿈을 다 이뤘다는 사람이야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나의 하루는 꽤나 힘들었지만 행복했다. 

최저시급을 받았지만 일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했고 

여기저기 쑤셨지만 크게 아프지 않았고 

저녁이 있는 삶이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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