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란 무엇인가

마키아벨리 끼안티 클라시꼬 '솔라티오 델 타니'

by aboutjina


나의 철학은 인간에 대한 탐구로부터 시작된다. 한 인간을 알게 되고, 그 인간을 탐구하고, 그가 하고자 했던 것을 나 또한 하고자 함으로 인해, 지금 나의 철학이 탄생했다. 이런 만남은 늘 우연으로부터 시작됐다. 아니. 어쩌면 운명을 만들고 싶어 했던 나의 필연적인 선택이 우연을 가장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선택들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인간을 알아간다는 것은 참 매혹적인 일이다. 때로는 그들이 남겼던 어떤 것이 나에게 새로운 영감이 되기도 하고 그들이 하고자 했던 것이 나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순간, 우리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같은 생각을 나누고 같은 철학을 공유하게 된다. 그렇게 만났던 몇몇의 사람들이 나에게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었다.


사실 내 철학의 8할은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를 쫓기 시작했던 것이 날 네덜란드까지 이끌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의 흔적을 찾아 이곳저곳을 뛰어다닌다.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곳의 첫 이야기는 당연히 반 고흐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아쉽게도 오늘 나의 철학은 그가 아니다.(곧 이곳에 반 고흐의 이야기도 남겨지길...) 그렇다면 '철학'이라는 쉽지 않은 단어를 언급하면서까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주인공은 누구일까?



니콜로 마키아벨리 Niccolò Machiavelli (1469.5.3~1527.6.21)


이탈리아를 사랑했던 사상가. 피렌체 최고의 공무원.
그리고 신이 아닌 인간을 위해서 일 했던 남자.
바로 마키아벨리다.


<군주론>을 집필한 마키아벨리는 1469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변호사이던 아버지와 피렌체에서도 나름 명망 있는 집안 출신으로 태어난 그는 피렌체 대학에 진학해 인문학을 전공하며 학문을 갈고닦는다. 그리고 서른 살도 안된 나이에 피렌체 제2장관직까지 맡으며 이후 14년 동안 피렌체의 고위공직자로 활동하지만 그 영광은 오래가지 못한다.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로 복귀하면서 기존의 공화정부 참여자를 모두 숙청했고 이 와중에 마키아벨리 역시 해임되었다. 또한 메디치가를 노린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재산의 대부분을 몰수당한 채 산트 안드레아(Sant’Andrea)의 작은 농장으로 유배당한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책, 정치철학의 베스트셀러 <군주론>을 집필한다. 그리고 나는 그가 이곳에서 집필했던 <로마사 논고>, <피렌체사>, <군주론>도 아닌 다른 곳에서 철학을 찾게 된다.



Machiavelli Chianti Classico Solatio 'Soatio del Tani'

바로 이 루비색을 갖고 있는 와인이다.


마키아벨리를 알고, 그가 칩거했던 이곳에서 와인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빠지게 됐던 토스카나 대표의 끼안티 와인. 그리고 그중에서도 끼안띠 클라시코이다. 특별한 생계수단이 없이 집필에만 몰두하던 마키아벨리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판매하게 된 와인이다. 5세기라는 오랜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전통 있는 와인. 나의 첫 끼안티였다. 첫인상은 '피노누아와 비슷하다.' 그리고 '색이 아름답다'였다. 눈으로 먼저 즐겨야 그 즐거움을 알 수 있는 와인이다. 옅은 색에서 알 수 있듯이 맛 또한 약간은 흐릿한 느낌이지만 절대 가볍지는 않다. 그 맛에서 깊이를 찾아내야 진정 이 와인의 매력을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분명 아쉬움은 있다. 베리향에 약한 나에게 너무 진한 향이었고, 또한 그 향이 머리를 아프게 했다. 그 향이 조금만 절제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이게 끼안티의 매력이라면 이 또한 받아들여야지.


첫 끼안티가 너라서 참 다행이다.




마키아벨리 와이너리의 모습들 (출처) 와이너리 홈페이지.




생계로 시작된 와인이다. 그리고 그의 간절함이 500년이 지난 지금은 '전통의 상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난 이 와인을 마시면서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500년이라는 시간 동한 변한 의미와 변하지 않은 와인. 한 인물을 동시대인으로 맞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는 나에게 이 와인은 의미가 있다. 시간을 간직한 채 나에게 마키아벨리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이 와인은 그가 쓴 글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물론 많은 것이 변했을 것이다. 기후가 변하면서 포도의 맛도 달라졌을 것이고, 와이너리를 가꾸는 사람들도 500년이라는 시간을 이기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시간도 마키아벨리가 머물렀던 이 공간의 의미를 바꾸진 못할 것이다. 피렌체가 한눈에 보이는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던 마키아벨리. 그 공간을 여전히 간직하며 그곳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서 탄생한 와인을 500년이 지난 지금 내가 마시고 있을 때, 또다시 시간은 무의미해진다. 신이 아닌 사람을 위해서 일했던 마키아벨리. 그리고 그의 손을 통해 탄생한 신의 음료, 와인. 오늘도 난 이 한 인물을 통해서 철학을 배운다.


의미는 변했지만 이 와인의 맛이 변하지 않았다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