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공원 Jul 03. 2022

무포지션


무 포지션은 매력적이다. 사랑하기 직전, 헤어지기 직전, 이혼하기 직전, 손잡기 직전, 매수하기 직전, 매도하기 직전. 포지션을 정하지 않으면 중간은 가곤 하니까… 어떤 사랑은 직전에만 머물다 끝나기도 하고 어떤 주식도 관심종목에만 머물다 매수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 포지션은 직전으로만 이뤄져 그만의 달콤함과 빈둥대는 맛이 있다.


직전을 사랑하는 이와 맞닿아 있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일을 저질러야만 살 수 있다. 세상은 일을 벌이고 결정하고 해결하는 식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직전의 안락함도 누군가의 선택권 이하의 굴레로 유지된다.해서 직전만 고수하는 사람과 오래 놓여있던 나는 자꾸만 굴러 다녔다. 어딘지 모르겠는데 굴러야 결과가 나오니까 그냥 계속 굴렀다. 그렇게 굴러다니다 직전이 몫까지 구르다 내가 실신할 지경. 직전이는 직전에서만 살고싶어 미칠지경에서 관계는 자연사했다.


그와 나는 종로부터 광화문까지 발이닮도록 시종일관 종알종알 지저귀며 걸어다녔다. 나는 임장을 가장한, 그는 신도시탐험하듯 경기도 아파트 단지도 돌아다녔다. 그러다 내 샌들이 망가졌다. 샌들 끈을 가지런히 고쳐주며 그가 물었다.

“ 남자 몇 명 사귀어 봤어요?”

"서너 명이요? “

직전의 사람까지 합하면 열명이 훌쩍 넘어 버리는데 그냥 서너 명이라 했다.

투자 이야기도 했다.

“ 무슨 종목 투자하셨어요? 인생 종목은 뭐 얘요?”

“ 서너 종목이 기억나요. ㅇㅇ사료, ㅇㅇ바이오, ㅇㅇ반도체?

8년간 손을 스친 종목이 몇백 종목은 될 텐데  큼직하게 끊는다.


우리의 대화는 직전을 벗어난 경험 중 괄목할 만한 것들로 이뤄져 있었다.한바탕 소란한 때를 거친 과거들이 현재의 대화에 녹아들었다.


문득 직전이 덕분에 할 수 있었던 모든 행동들로 인생의 지평이 넓어졌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 마냥 직전이를 미워하기보단 직전이 덕분에 굴러다녀서 조금 구르기가 수월해 졌다고 고마워 하는편도 정신건강에 좋겠다.


 내가 애인과 싸우면 과거의 직전이 들도 함께 싸우고 있다. 왜 싸웠을까?의 답은 보통 애인의 직전이가 남긴 상흔, 혹은 가족사의 데이터에 답이 있었다. 내가 주식매도에 실패하면 그전의 경험에서 배움이 부족한 탓이다. 시장이 바뀌면 더 많은 과거를 끌어다 최대한 응용해야 하니까 어떨땐 투자가 종합행위예술 어디쯤에 놓여있는 학문이 아닌가싶다.


내가 애인과 헤어지면 그 앞의 애인들 모두와 헤어진다. 내가 사랑하면 그전의 사람들과 함께 사랑한다. 364층의 엄마손 파이처럼 그의 인생을 통과하며 스며든 모든 사랑, 일, 생활을 만나는일. 한사람을 사랑하기란 이렇게나 복잡하다.  어쩌면 그가 닿지못한 364겹의 결핍을 끌어 안고 나의 364겹을 보여주리라는 거대한 결정.


어쩐지 나이들수록 비겁해 진다. 직전에 남겨두고 아무 소란없이 빈둥거리고만 싶다. 적당한 때랄것없이 일단 구르고 보던 과거의 쨍한 시간과 사랑이 그립다.


나이들수록 안정적이 되는 까닭은 어느정도 구른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이 정해져 있다는 믿음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예정된 미래가 미흡할수록 우리가 할일은 주도면밀히 직전을 벗어나 소란할 일 아닌가.

안락과 고요는 소란함 이후에 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