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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현 Jun 23. 2018

금요일 밤의 홍대입구

금요일 밤의 홍대입구는 나의 존재를 보여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외출 전 몸 구석구석을 씻는다. 샴푸를 하고 나서는 머릿결을 위해 린스까지 한다. 린스를 하면 이게 헹궈진 건지 아직 린스가 남아있는 건지 애매모호한 상태가 된다. 머리를 감고 나면 세수를 한다. 세수는 무조건 머리를 감고 나서 한다. 샴푸가 얼굴에 흘러내릴까 봐서. 아무것도 아닌 습관이 이제는 철칙이 돼버렸다. 세수가 끝나면 비로소 몸통을 씻는다. 겨드랑이부터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거품을 칠하고 헹구기도 하고 아무튼 손이 닿는 모든 곳이 깨끗해졌다는 느낌을 받으면 샤워가 끝난다. 샤워가 끝나면 드라이를 한다. 고수하는 머리 스타일이 있다. 머리의 오른쪽 2/10 부분을 쓸어내린다. 나머지 8/10 부분을 반대쪽으로 쓸어넘긴다. 대충 머리 스타일이 나온다. 멋지다. 머리 스타일이 나오면 오늘 날씨에 어울리는 옷을 고른다. 오늘은 스트라이프가 어울린다. 사실 그냥 스트라이프를 좋아한다. 비가 오는 날에도 맑은 날에도 그냥 스트라이프를 입는다, 좋아서 깔끔해서. 



 옷을 입으면 대충 스타일이 된 머리를 고정시킨다. 왼쪽 가운데손가락을 이용해서 둥근 왁스통의 가장자리 부분을 푸욱 찍어 누른다. 난 퍼먹는 아이스크림도 그렇고 둥그런 것들을 가운데부터 시작하는 걸 싫어한다. 퍼먹는 아이스크림의 경우엔 살짝 녹았을 때 가장자리 부분이 제일 맛있어서 그럴지도. 아무튼 왜 그런진 나도 모르겠다. 가운데 손가락에 적당히 발린 왁스를 두 손으로 곱게 펴준다. 곱게 펴준 왁스는 정확하게 나뉘어진 가르마를 조금 더 선명하게 만든다. 왼쪽으로 쓸어넘겨 진 머리에 볼륨감을 준다. 오른쪽으로 쓸어내려진 머리의 볼륨감을 살짝 죽인다. 그리고 스프레이로 고정을 시킨다. 아 진짜 멋지다. 오늘 옷에 어울리는 시계를 고른다. 신발을 고른다. 가방에 7만 원짜리 비싼 가죽 수첩 하나와 지하철에서 오고가며 읽을 책을 한 권을 넣는다. 가벼울수록 좋으니 이왕이면 시집으로. 펜도 넣고 핸드폰 배터리가 부족할 수도 있으니 보조배터리도 챙긴다. 가방이 금세 무거워진다. 집을 나선다. 아 참 향수 뿌려야 되는데. 다시 집에 들어와 가장 가까이 있는 향수를 뿌린다. 습관적으로 두 번을 뿌린다. 홍대까지는 조금 거리가 있다. 버스를 한 번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야 하니까.  



 금요일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들떠있다. 다들 어디론가 들뜬 마음 들고 지하철에 오르락내리락한다. 나는 홍대를 가는데 다들 어디를 가는 거지. 저 커플은 어떻게 만나게 됐을까. 나보다 가르마를 잘 타는 사람이 있네 등등. 분명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려고 가방에 넣었는데 사람을 관찰하다 보니 벌써 홍대에 와버렸다.  

 


 오늘 나는 무려 스트라이프 옷도 입었고 머리도 잘됐다. 여러 시선을 받으면 어쩌지 누가 말을 걸면 어쩌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지만, 거리를 걷는 순간 그 생각은 바로 깨져버린다. 사람 진짜 많다. 진짜 진짜 많다. 여섯 글자로 표현이 안 된다. 저 많은 사람들 중에 내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생각해본다. 아마 사람이라는 두 단어의 글자를 이루는 획 하나 정도는 되려나 아니 그 정도의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니 점 하나 정도가 내 위치쯤 되려나. 갑자기 작아진다. 난 혼자 왔는데 다들 둘 이상이다. 외로워진다. 거의 한 시간을 준비를 하고 나온 홍대인데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사람들에 치이고 또 치인다. 시선은커녕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과 눈빛만 마주치고 서로 스쳐 지나간다. 1시간을 준비했는데 1초의 시선만 받고 끝이 나버린다.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는 지나가는 행인1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한때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그런 때가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고 내 행동에 관심 갖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때가 있다. 어리석은 생각,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다. 1시간을 준비하고 외출을 해도 사람들은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다. 내가 무얼 시작한다고 하면 의심과 욕을 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내 인생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런 행동을 하면 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혹여나 싫어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은 완벽하게 접어둔다.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정말로, 철저하게, 내 기준에서, 멋지게, 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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