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전상서
어머니! 우리가 한집에 함께 산지 어언 13년이란 세월이 흘러갑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십여년이 어머니와 저에게는 어찌나 이렇게 한결같은지요.
어머니! 제가 시집과 함께 사는 결혼을 택했을 때 주변에서 기름을 뒤집어쓰고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 부모님만 어른이 계시니 어른 보살핌을 받을 수 있고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 아이도 조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이라 하셨지요. 아~~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자라서 성인이 되어서도 제 판단력을 갖추지 못한 저를 탓해야 할까요?(우리 엄마도 입만 열면 시어머니 욕 하면서!!)
저와 아이들은 이효리처럼 채식주의자가 아닙니다. 건강을 위해 특별히 야채를 선택한 삶이 아닌데 어찌 가끔 가시는 시장에서 호박, 가지, 무, 콩나물만 사오실수 있는지요? 그리고 그 요리법이 어찌 매번 똑같을 수 있는지요? (무는 꼭 무채만 해서 먹어야 하나요?) "네년이 감히 시어머니에게 반찬 타박을 하느냐!' 노하실수 있으나 아침 8시에 나가서 밤 10시에 들어오는 며느리에게 시간은 금보다도 비싼 것인데, 쿠팡맨이 아무리 새벽 배송을 해다 주어도 냉장고에 식재료는 어머니 보시기에는 눈으로 구경하는 마트 진열장에 불과한 것이겠지요.
전 세계에 창궐 했던 코로나로 한참을 어수선하게 보내던 시기 우리 집 코로나 1호로 어머니부터 줄줄이 방에 격리되었습니다. 늘어나는 인원수대로 12첩 반상을 차려 사람이 어떻게든 먹어야 기운 차린다 음식바라지한 며느리. 그 며느리 어머니 딱 격리 끝나는 날 확진자 되어 방에 누워 사경 헤매고 있을 때 탄 누룽지 하나 떠놓고 정형외과 가신 어머니.
자궁 근종 수술하고 친정동생네서 겨우겨우 비틀거리며 걸어 내 새끼들 걱정되어 눕지도 못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너무너무 아파서 새벽에 깨서 엉엉 울던 그때에도 “지 발로 걸어 다니니 괜찮을 줄 알았다.”며 물 한잔 안 떠주신 차가운 도시여자 흉내 내던 어머니.
TV에 트롯가수 장윤정 고부가 나와 친정 엄마 딸처럼 지내는 모습을 보고 연년생으로 애 낳느라 인생 최초 뼈깡치가 되어있던 제게 “나도 애 가졌을 때 시어머니가 고기반찬 한 번도 안 해줘서 나도 안 해준다.”하신 어머니 (어머니 시어머니는 만나러 가는 데만도 5시간 이상 걸리는 지방에 사셨잖아요!)
자식 셋에 손주 6명 하나 뭐 사주기 시작하면 다 사줘야 한다며 같이 사는 어머니 손자, 손녀 양말 한 짝 챙겨주신 적 없는 어머니. 사랑한다 안아만 주는 공짜 인사치레로 다 얻으려 하는 어머니.
음식장사 한다고 어머니 아이들 학교 한번 찾아가신 적 없는 어머니. 공부는 학교에서 시켜주는 거라며 자식들 문제집 한번 사주신적 없는 어머니. 아들 공기업 합격자 발표날도 미역국을 떡하니 끓여 주셔 아버님께 타박 받으셨다던 어머니.
큰 그늘 되어 주셨던 아버님 2년여 암투병하고 세상 떠나실 적 막내아들에게 세상 혼자 못 사는 어머니 맡기고 가셔서, 효자라면 기네스북에 등재하고도 남을 아들과 그 아들 마누라로 사는 저는 오늘도 웁니다.
어머니! 다음 생애에는 꼭 꼭 제 며느리로 태어나 주세요. 서슬 퍼런 시어머니가 되어 하나하나 가르치겠습니다. 명절에는 어떤 음식을 해야 하는지, 가전제품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음식의 맛은 쇠고기 다시다만 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 냄비 태우지 않고 가스레인지 사용하는 법도.
어머니! 저도 예쁜 냄비가 사고 싶습니다. 북유럽풍의 주방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