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버리고 하루를 살아라.
“내가 우리 엄마가 해주던 두부지짐이 너무 먹고 싶어서 우리 엄마식대로 한번 해봤어.”
일하기 전 점심을 먹으려고 드른 단골 식당에 주인 할머니 사장님이 엄마 손맛이라며 두부지짐을 내어주셨다. 사장님 말씀을 빌리자면 들기름에 두부를 굽고 간장으로 간을 하고 고춧가루를 뿌리고....
늘 피곤한 월요일이었고 또 늘 받는 시어머니 스트레스로 안 그래도 약으로 다스리는 내 혈 앞은 오르고 또 오른 상태였다. 정말 눈도 못 뜨게 머리가 아프고 화가 난 건지 어디가 아픈 건지 판단도 할 수 없는 그런 날 대접받은 뜻밖의 음식이었다.
사실 이미 내가 주문한 음식을 거진 다 먹은 터라 배에 남은 자리는 없었는데... 또 70살 넘으신 사장님이 본인의 ‘엄마 손맛’이라 하시니 이것 또한 거절할 용기도 없었다. 자주 들르던 식당이라 사장님도 편하셨는지 본인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신다. 44살에 두 살 차이 나는 남편이 매정하게도 자신과 딸 하나 두고 바람난 이야기부터 애 데리고 먹고살려고 장사를 하다가 쫄딱 망해서 바다에 빠질 결심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던 이야기까지.
사장님의 인생사를 너무 세밀하게 들은 터라 난감하기도 하고 ‘나에게 이 이야길 왜 하실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나이가 드시면 담담하게 내뱉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는 또 아닌 것 같은데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다.
오며 가며 나에 대한 이야기도 나름 아시고 있기도 했지만 이렇게 깊은 이야기까지 나누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러면서 사장님의 이야기의 결론은 “내가 이 나이 먹어도 아직도 우울증이 있어. 그래서 내가 누워있으면 바닥으로 끝없이 떨어져 내리고 방바닥이 날 안 놔주는데 그럴 때는 발딱 일어나서 화장하고 일하러 나가. 명절이던 언제던 손님이 있던 없던 자꾸 손을 바삐 움직여야 잊어버리고 하루를 살아.
‘잊어버리고 하루를 살아라.’ 그 이야기에 머리를 헤집고 다니던 수많은 잡생각, 수없이 재생시키며 용광로에 연료 넣듯 키우던 미움과 원망. 오늘 딱 내게 필요했던 이야기였다. 인터넷 사회면에 누군가 세상을 등지면
'우울할 때는 어떤 기관을 찾으라. 혹은 주위에 이야기하라.'라는 안내 문구와 전화번호가 나온다. 그런 걸 볼 때마다 그런 상황이면 용기를 내서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 전화를 건다고 크게 달라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 내가 대접받은 두부지짐과 아무렇지 않게 툭 던져주신 그 말은 그날 하루 나를 살게 했다.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받고 또 사람에게 치유도 받는다는 흔한 이야기를 몸소 체험했던 따뜻한 하루.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따뜻했던 두부지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