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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엔 Nov 16. 2021

누군가의 神林, 나의 新林

글, 사진 / 에이치


[강원도의 감각 01 - 원주의 시각] 코너에 기고한 에이치 님의 글과 사진을 싣습니다. 

원주시 신림면에 사는 에이치 님의 시선을 주목해주세요.



 신림은 봄에 가장 바쁘다. 땅이 채 녹기도 전에 일이 생긴다. 때맞춰 논밭을 갈아 퇴비를 뿌리고 씨앗과 모종을 심어야만 한다. 아무리 고단해도 농부는 일한다. 계절이 주는 사명이다. 이맘 때 얼마나 부지런히 움직이느냐에 따라 가을에 돌아올 기쁨의 양이 결정된다. 논밭이 자아내는 초록이 아름다운 건, 누군가 고통으로 값을 미리 치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봄철,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초록은 마늘싹이다. 엄동설한을 이기고 꿋꿋하게 흙을 뚫고 자라나는 모습은 언제나 경이롭다. 떡잎 돋아나는 모양새가 마치 V자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절로 응원을 보내게 된다. 어찌나 위풍당당한지!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낮은 자세로 잎을 펼치며 자라나는 냉이와 민들레, 질경이 같은 식물들이 밭의 빈자리를 빠르게 채워나간다. 뽑으면 잡초요, 먹으면 약이다.          



 성황림을 빼놓고는 신림의 초록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다. 평소엔 출입문이 잠겨있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긴 하지만 울타리 바깥에서도 어느 정도 숲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다. 이곳을 에둘러 흐르는 개울이 졸졸졸 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쯤 신록은 모습을 드러낸다. 숲은 수채화 같다. 한 가지 색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천천히 물이 차오르기 시작할 무렵이면 나무는 검정색이었다가 갈색이었다가 또 문득 돌아보면 초록색이 된다. 봄의 성황림으로 오라. 시야의 백과사전에 더욱 더 많은 정보를 기록하고 싶다면 말이다. 그만큼 성황림은 다채롭다.     


 

 놀랍게도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수 관정이 신림면에 있다. 1965년, 당시 국가원수였던 박정희의 지시로 총 세 개가 개발됐으나, 첫 해에만 제 역할을 다했을 뿐 그 뒤로는 물이 솟지 않아 방치됐다고 한다.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두 개는 현재 소실된 상태다. 역사적 기록이 제대로 남겨져 있지 않은 탓에 널리 알려진 바는 없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성금을 모아 표지석과 공원을 조성했다. 이곳에도 초록이 있다. 기묘한 기하학 무늬를 만들어내는 초록색 보도블록을 가로질러 공원 꼭대기로 올라가면 초록색 평행봉과 플랜카드가 보인다. 최초로 개발됐으나 일 년 만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지하수 관정과 아무도 매달리지 않는 평행봉,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플랜카드의 조합이 꽤나 절묘하다.      



  신림으로 이사 왔을 때, 나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학업을 마치고 1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조금 더 괜찮은 미래를 꿈꾸던 시기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상경해 방송작가 공부를 했는데 마침 인근 신림역에서 청량리로 한 번에 가는 기차가 있었다.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 길이 되었지만 중앙선 신림-원주 구간은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가 꽤 근사했다. 산 중턱에 놓인 철로를 따라 달리는 기차의 덜컹거리는 소음을 듣다보면 없던 사연도 생기는 느낌이었다. 고도가 높기 때문에 지나는 동안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특히 잎사귀가 막 돋아나는 초봄에 기차를 타면 황홀할 지경이었다. 야들야들한 초록이 온 동네를 뒤덮을 때마다 희망이 솟아났다. 그리 구체적이지 않아도, 미지의 영역이기에 더욱 찬란한 희망이.   


 이 구간에는 또아리굴이라는 곳이 있다. 루프식 터널(loop tunnel)이라고도 하는데, 선로가 급경사를 이루는 걸 방지하기 위해 말 그대로 또아리를 틀듯 뚫려있다. 길이가 무려 2km에 달한다. 어둠 속에서 기차가 뱅글뱅글 굴속을 돌아 나오는 동안 희망은 구체적인 목표가 되어 나를 들뜨게 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 기차가 반곡역으로 향할 때면 매번 슬펐다. 반곡동은 신림으로 이사 오기 전 꽤 오래 살았던 동네다. 당시 혁신도시 개발이 한창이었고, 사람들이 살던 동네는 물론 산과 저수지, 논밭까지 모두 파헤쳐 있던 시기라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건 오로지 살풍경이었다. 벌겋게 드러난 산의 속살을 보면서 가끔씩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했다.      


 

 조금 더 의미부여를 해보자면, 당시의 나는 신록이었다. 막 돋아난 상태였고 더 자라날 기대가 있었다. 지금의 나는 어쩐지 신록보단 녹음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한창 푸르렀으나 머지않아 더욱 다채롭게 저물게 될 예정이다. 그러나 나무가 저문다고 해서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니다. 옛 마을을 파괴하고 새로 지은 도시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간다. 변화는 종말이 아니다. 단조로운 슬픔을 버무리기엔 변화라는 건 사실 아주 복잡하다. 골치가 아프니, 신림에는 神이 아니라 新이 산다는 말장난이나 지껄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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