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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빗ORBIT May 15. 2020

무해한 천문학

경찰관이 찾아왔다. 나는 그저 달을 구경하느라 창 밖을 오랫동안 바라보았을 뿐이다. 여기 달의 뒤편을 본 자가 있어요. 내 방에서 실종된 게 얼마나 많은데 그는 고작 내가 달의 뒤편을 봤다는 이유로 체포영장을 내민다. 나는요. 하루하루를 채굴하면서 살아요. 있는 것이나 파먹을 줄 알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라시면 못해요. 안 해요. 고갈되었어요. 아니 애초에 재능이랄 게 없어요. 경찰관은 곤란한 얼굴이다. 나 대신 그를 연행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미란다의 원칙을 읊어주세요. 정말이지 경찰관은 아무것도 모른다. 신고자가 누구인지 신고의 내용이 무엇인지 나의 죄가 진짜로 무엇인지. 아아, 내 방에서 사라진 것들에 대해 알게 된다면 깜짝 놀랄 텐데. 오월이므로 창밖의 은행나무에는 연두가 슬었다. 음험한 벌레들이 몰래 알을 깔기어 놓듯이. 지구에서 보는 달은 항상 같은 눈코입이라 내가 뒤통수를 칠 줄은 정말로 몰랐을 것이다. 죄목은 사기와 음모, 내란죄. 황홀한 죄목을 구구절절 쪼고 싶다. 토사물을 쪼아대는 비루한 비둘기처럼. 구구절절하고 우는 비둘기가 어딘가에서 구구절절. 누가 나를 신고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개인 정보는 유출할 수 없습니다. 나는 달의 사생활을 알아요. 달의 뒷모습을 알아요. 루머는 루머답죠. 머리카락이 바닥까지 닿는다. 누군가 내 머리카락을 밧줄 삼아 방으로 침입하려 한다면 떨어져 죽기 딱 좋을 때 잘라버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만 했어요. 생각도 죄가 됩니까. 어떤 종류의 죄는 상상에서부터 비롯됩니다. 당신은 죄의 기원이군요. 정말이지 경찰관은 아무것도 모른다. 친애하는 경장님. 나는 정말 이해가 안 되거든요. 아무도 모르는 사실에 대해 조금 알려드리고 싶었을 뿐이에요. 달의 눈코입이 융기한 모양새가 절구 찧는 토끼라니 그런 빈약한 상상력으로 달의 뒷면은 절대 알 수 없는 거거든요. 그렇지만 나는 달라요. 뒷면을 안다니까. 직접 보았습니까? 본 적은 없죠. 물론. 그게 문제예요. 철컥. 수갑은 차갑다. 달의 표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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