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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Nov 18. 2020

엄마의 부재 그 두 해

엄마 안녕하시죠?

엄마 안녕하시죠?
엄마가 가신 지 벌써 두 해.
이번 엄마가 가신 날도 봄 날씨처럼 따스한 하루였어요.
거기다 마침 추수감사절 주일도 겹쳐서 정관의 주향 감리교회로 향했습니다.
엄마가 저의 십 대 시절 만들어 주셨던 무지개떡 생일 케이크가 떠올라 무지개떡을 가지고서요.

엄마의 마지막 임종까지 일곱 시간을 넘게 사투하시던 모습을 혼자 봐버린 저라서..
엄마가 가신 시간이 돌아올 즈음이면 가슴 한편이 한없이 시리곤 합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엄마와의 추억의 장소로 나서던 길 버스 속 방송의 한 연예인의 이야기가 제 가슴을 비수처럼 헤집어 버렸답니다.

아마도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 한 달의 병원 생활을 같이 한 모양이었어요. 그 한 달이 그에게 평생의 효도였다는 말이 어찌 그리 다가오던지요.

요양병원으로 모시기 전 15일간의 엄마의 병상 지키기가 제게 그러했듯이 말이지요.

엄마가 가신 뒤 후회한 일 중 한 가지가 제가 센다이 시절 , 엄마가 보내주셨던 손편지들을 미국 이사 전에 정리한 일이었습니다. 엄마의 손끝의 향기를 왜 단 한 장도 남기지 않았었는지요...
돌이켜보니 그 시절 , 엄마는 육십을 넘기신 나이 셨고  전 삼십을 넘긴 나이였으니 지금의 저와 막내 아이의 나이가 삼 년 후면  곧 그리 60과 30을 넘어서게 되더라고요.

엄마가 챙겨주셨던 아이들의 한국 교과서와 그리움이 가득했던 그 손편지들이  멋진 추억이 되어버렸답니다.

그 시절 엄마와 주고받던 편지들이 , 앞으로 저의 삶에도 얼마나 큰 영향력을 펼쳐줄지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시나요?
2001년 귀국 뒤 해운대의 구 파라다이스 호텔의 이층 여성 온천장요..
한 여름의 해운대 바다가 보이던 작았던 노천 온천에서 폭죽이 터지는 걸 보던 엄마와 나.
그 해변가엘 잠시 다녀왔습니다.
지금은 그 정겹던 해운대는 아니지만 , 파도와 하늘과 바다는 그날의 소중한 시간을 기억해주겠지요?

한없이 헌신적이셨던 나의 엄마.
내가 삼십 년이란 결혼 생활과 엄마의 첫 손주가 만 서른이 된 지금에야  알았습니다.
바다같이 품어주셨던 엄마의 마음을 전 결코 쫓아갈 수 없자는 사실을요.

다행인 건 두 외손주에게 남겨주신 성경 필사 노트는 아이들의 앨범 박스에 잘 넣어주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볼 때 즈음엔 외할머니의 마음도 더 많이 헤어릴 수 있겠죠..

아빠의 빈자리를 삼십 년을 지켜내신 나의 엄마.

오늘은 그 바다에서 한없이 엄마를 외치고 만나고 왔습니다.


참 , 마지막까지 부탁하셨던 엄마의 막내,

잘 챙기겠다는 저의 약속 ,

걱정 마셔요 , 있는 힘 껏 기도하며 챙겨볼게요.

지난주에 승환이와 같이 만나고 왔어요.

깍두기와 밑반찬 챙겨 들고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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