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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Yeon Cha Oct 21. 2015

귀를 기울여 섬에 다다르다

신랑이랑 유럽여행 일곱째 날.-이탈리아 베네치아 무라노, 부라노 섬









오래간만에 평안한 잠을 이뤘다.

아침에 일어나 룸의 큰 창을 열어보니

기분 좋은 풍경이 펼쳐진다.



이 날은 오전에 서둘러서 유리공예로 유명한 무라노 섬과

알록달록 색색이 옷을 입은 집들로 이뤄진 부라노 섬을 둘러보고

로마로 가야 하는 바쁜 날이었다.

간단히 호텔에서 유럽식 아침으로 허기를 채우고 종종걸음으로 나섰다.


재밌는 사실 하나는

무라노 섬과 부라노 섬은 현지인들의 발음을 얼핏 들으면 같은 말처럼 들린다.

섬에 도착하면 승무원? 이 "무라노! 부라노!  "라고 소리치며 알려주는데

그들의 억양을 주의 깊게 들어야 구분할 수 있다.

무라노는 끝으로 가면서 억양을 올리고 부라노는 '부'를 높이 찍고 '라노'를 낮게 발음한다.


이렇게 귀를 쫑긋 세우고 도착지 알림을 듣고

처음 내리게 된 곳은 무라노 섬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유리공예로 유명한 무라노 섬은

액세서리부터 커다란 장식용 조형물까지 볼거리가 많아서 한참을 넋 놓고 다녔다.

문제는 팔찌 하나를 살까 말까 고민하느라 같은 가게를 몇 번을  들락날락했던지

지친 신랑이  뾰로통하여졌었다.

그런데 결국은 팔찌를 샀을까요? 안 샀을까요?

안 샀답니다!!! ㅋㅋㅋ

이렇게 사지도 않을 물건으로 고민하며 뱅뱅 도는 나를 신랑은 언제나 이해하지 못한다.















무라노 섬은 골목마다 유리공예품을

전시해 놓았는데 정말 아기자기 예쁘다.



로마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타이트하게 섬들을 둘러봐야 했는데

무라노 섬에서 유리공예품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원래 더 비중을 두었던 부라노 섬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단 30분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팔찌를 살까 말까 고민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서는 촉박한 시간에 대한 원망은 신랑에게 고스란히 보냈다.

"대체 나한테 왜 시간이 없다고 알려주지 않았어!!!"


부랴부랴 바포레토를 타고 부라노 섬에 도착해서 다리에 모터를 단 듯 바삐 움직였다.

그러나 너무나도 나의 취향이었던 알록달록한 집들에 또 정신이 나가서 시간을 잊고 미친 듯이 포즈를 취했고

열차시간 체크하랴 사진찍어주랴 마음이 급했던 신랑은 결국 폭발했다...













저 뒤에 노란 집 앞을 지나는 외국인 커플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나의 뒤통수를 향해

미소 짓고 있다.

저 미소는 무슨 의미일까?





잠시 동안이었지만 부라노 섬의 자유분방한 느낌은 강렬하게 남았다.

집집마다 널어놓은 빨래, 옆집과 조화를 이룬 벽면의 색깔들,

창틀에 얹어 놓은 화분들이 자유로움을 노래하고 있었다.

이렇게 내가 부라노를 즐기는 내내 코에서 바람을 뿜던 신랑은

지금도 부라노는 그냥 노랗고 빨갛고 했던 어디쯤으로 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모든 스케줄을 담당하던 신랑은 혹시라도 기차를 놓칠까 봐 매우 초조했고

정신 나간 각시를 보면서 짜증이 났을 것이다.

그때 당시에는 좋은 곳에 와서까지 짜증내는 신랑이 미웠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정신을 살짝 놓았었음을 인정한다.

'신랑~ 미안!'


다행히 계획했던 시간대의 바포레토를 타고 다시 베네치아 본 섬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신랑의 조바심 난 마음이 풀어졌고 그 틈을 타서 신랑 기분을 달래야 하는

나는 재빨리 점심 먹을 곳을 정해야 했다.

(신랑은 배꼽시계가 정확한 사람이고 이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변한다. 지킬에서 하이드로...)


우리가 묵었던 호텔 바로 밑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로마행 기차를 타기로 했다.





사실 하루 전 '산 마르코 광장'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비싼 돈 주고 사 먹은 파스타와 피자보다

훠~~~~얼씬 맛있었다.


서둘러 끼니를 때우고 호텔에 맡겨둔 짐을 찾아서 산타루치아 역으로 향했다.

'베네치아~ 넌 정말 잊지 못할 것 같아!'


아쉬운 마음에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기차에 올랐다.







                    






                                                                 기차 안에서 서비스로 주는 주스를 마시며

                         그제야 한시름 놓는 신랑.



베네치아에서 로마까지는 3시간 40분이 소요되었다.

가는 내내 우리는 서로 말이 없었다.

"드르렁~드르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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