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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선규 May 04. 2016

체코 쿠트나 호라, 눈부신 은의 도시 #2.1

성 바르바라 대성당 안내 책자

 다음은 성 바르바라 대성당 안내 책자의 전문이다.     


A 

이 성당의 건축은 1388년에 시작되었다. 공사감독은 유명한 뻬뜨르 빨레즈의 아들 얀 빨레즈가 맡았다. 교회는 측면회랑 채플이 있는 카테드랄 (프랑스 성당) 방식으로 계획되었다. 원래 카테드랄은 둥앙본당과 2개의 소성당까지 세 개의 본당이 있어야 하지만 곧 2개가 더 추가되어 5개로 계획이 바뀌었다. 1420년 후스전쟁 때문에 공사가 일시 중지되었다. 60년이 지난 후에 유명한 마띠야쉬 레이섹 (프라하 화약탑 건축가)이 교회의 건축을 맡았고 1499년에 그는 본당의 둥근 천장을 완성하였다. 이것의 높이는  33m이다. 1521년부터 1532년 까지 삐스또브출신 베네딕트 레이트가 (프라하성 블라디슬라브 홀 건축가) 교회하층 측면 회랑 위에 완전히 독립된 3개의 소성당을 세웠다. 성당의 높이가 30m, 길이가 70m, 폭이 40m이다. 1558년 서쪽(파이프 오르간 쪽)이 세워지고 건축은 미완성인 채로 중단되었다. (이 지역의 가장 큰 오 셀광산에 홍수가 나고 은 생상량이 줄어들면서 경제 원조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17,18세기 고딕의 쿧트나 호라가 바로크 도시로 바뀌어질 무렵, 바르보라 성당도 그 영향을 받게 되었다. 건축양식의 변화는 18세기 아름다운 파이프 오르간 케이스에서 엿볼 수 있다. 오르간 자체는 새것이고 700개의 파이프, 세 개의 건번과 52개의 조절기가 달려있다. 오늘날 교회의 정면은 1884년에서 1905년 재건축기간 중에 완성되었다. 이 시기에 중앙제단이 신고딕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성녀 바르보라 (광산의 수호성녀)를 제단 오른쪽에서 볼 수 있다. 책과 탑을 들고 있는 여자이다.      

B 

이어져있는 세 개의 채플에서 1680년부터 1710년 사이에 만들어진 바로크형 제단을 볼 수 있다. 첫 번째 채플에서 1380년에 만들어진 고딕형 마리아상을 볼 수 있는데 마리아상은 오리지널이다. 1700년경 바로크 후기 다색장식화법 (polychrony)로 채색되었다. 창문은 모자이크가 아니라 유리에 그림을 그린 것이다. 1898년에 그린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고, 가장 최근 것은 1925년에 그린 것이다. 이것은 역사화가였던 프란티섹 우르반의 제안에 의한 것이었다.     

 

C 

이어져있는 세 개의 체플에서 우리는 15세기 말 후기 고딕 프레스크를 볼 수 있다. 가장 뛰어난 작품은 1490년 경에 만들어진 스미쉑 채플의 벽화들이다. 창 밑에서 스미쉑의 가족을 볼 수 있다. (스미쉑은 쿧트나 호라 지역의 귀족이었으며 성전건축의 총 감독이었다. 모든 체플의 건축비용을 기부하였다) 왼쪽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볼 수 있고 오른편에 시바의 여왕이 있다. 이 채플에 있는 작은 성모 마리아 제단은 15세기 말에 만들어졌다. 앞의 채플에서 가장 감동적인 그림은 예수를 어깨에 얹고 물을 건너가는 성 크리스토퍼의 거대한 그림이다. 마지막 채플은 광부의 채플이라고 불리운다. 창문 밑에 광부들의 생활을 그린 프레스크를 볼 수 있다.    

  


D 

이 곳의 남쪽 부분을 동전주조자들의 채플이라 부른다. 이 채플의 가장 중요한 유물은 반대편 서쪽 울타리 쳐진 벽에 있다.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 (제수이트파의 스페인 선교사 1506~52)는 서쪽 벽 그림들 끝에 적어도 2개의 제단을 합하여 변경을 시도하였다. 아래 세 개의 흥미 있는 장면들은 15세기 초기 작품이다. 위에는 광부들과 동전주조자들이 작업대에 앉아 일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천사와 함께 있는 이 그림은 약 1463년경 그려졌다.      


E 

광부의 조각상은 1700년경 작품이다. 광부는 흰색의 광부복을 입고 한 손에 등불을 다른 손에는 연장을 들고 있다. 허리에 두른 가죽 애이프런은 일하는 동안 는 보호대로, 또 광산 밑으로 미 끌어내려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 광부들은 일주일에 6일, 하루 10~14시간 동안 일했다. 16세기 쿧트나호라의 은광들은 약 500m 지하에 있었다.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깊은 광산이었다.)      


F 

본 당의 둥근 천장에는 길드(조합)와 시민들의 문장들이 그려져 있다. 교회 위 층의 벽 코너에는 정의, 용감, 조심성, 친절과 같은 17세기 전기 기독교의 덕목을 조각한 커다란 나무조각상이 있다. 높이는 각각 3.5m이다. 돌로 만들어진 설교단은 석조물제작자 레오폴드가 1560년에 만들었는데 나무판벽과 지붕이 부착되어있다. 훌륭하게 조각된 의자들은 17세기 말에 만들어졌다.  

G 

북쪽 채플은 제수이트 교단의 창시자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에게 봉헌된 것이다. 고해실은 1679년에 만들어졌고, 정 엄한 반대편 벽의 바로크 프레스코는 1746년에 그려졌다. 이것은 체코제수이트였던 얀 까렐 꼬바즈의 작품이다. 팜펠루나 전투에서 부상당한 성 이그나티우스의 환상을 표현하였다.      


H 

성물보관실의 문은 17세기 것이나 그 입구는 1400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비문의 나무틀은 1615년에, 내부(안의 것)는 16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 성가대석은 1490년에 만들어진 오리지널이다. 의자들의 장식은 성당 외부의 돌 장식과 매우 흡사하다. 재미있는 것은 모든 의자들의 장식이 다 다르다는 점이다.      

성당 내부는 외부에서 봤을 때 보다 더 웅장한 규모를 자랑했다. 대부분의 성당처럼 스테인드 글라스와 파이프 오르간이 있었는데, 다른 성당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벽면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와 천장에 새겨진 보헤미아 왕가와 건축 비용을 부담한 길드의 문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화려한 조형물 까지, 성 마리아 대성당이 듣는 성당이었다면, 성 바르바라 대성당은 눈으로 보는 성당이라고 생각된다.

이곳이 좀 더 특별한 이유는 가톨릭에서 종교적 목적을 갖고 지어진 게 아닌, 광부들이 그들의 돈으로 그들의 수호성인을  위해지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지 성당 내부에는 수호성인, 예수님뿐만 아니라 그들 모습을 조각화한 상도 있다. 이를 통해 지하 600m의 캄캄한 은광에서 목숨을 걸고 하루 종일 일했던 광부들의 안녕을 기원하던 성당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또한 프레스코화를 통해 그 당시 광부들의 삶과 체코인들의 일상을 추측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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