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을 처음 꼽았을 때
인생은 절대 예측대로 되는 법이 없다.
내가 초등학교 때 카세트라는 것이 있었다. 카세트 플레이어도 꽤 잘 사는 집 애들이 갖고 있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보통 집엔 라디오가 한 대씩 있어서 보통 라디오로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어폰을 꽂고 있는 어른들을 보면 그 느낌이 항상 궁금했었다. 우리 집은 부모들도 음악에 관심이 없어서 난 귀에 그걸 꼽을 기회가 아예 없었다.
나는 내가 크면 카세트플레이어와 이어폰을 사서 꼭 음악을 들어야지. 하고 상상했었다.
우리 옆집엔 한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그 집엔 중고등학생쯤 된 언니가 살고 있었다. 그 집은 우리 집과는 달리 모든 게 풍족해 보였는데 그래서 그 언니는 카세트플레이어는 물론 신기한 여러 가지를 갖고 있었다.
어느 날 내가 아파트 복도에 서 있었는데 현관문을 빼꼼히 열고 "꼬마야 우리 집에 올래?"하고 나를 초대했다.
그래서 그 집에 들어가 그 언니 방에서 같이 놀았는데 내가 이어폰에 관심을 보이자 음악을 틀고 내 귀에 이어폰을 꽂아주었다. 그게 내가 이어폰을 처음 귀에 꽂았을 때의 기억이다. 음악이 내 세계에 가득 찬 느낌이어서 정말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 언니는 신기한 사인펜 색연필등을 꺼내주면서 그림도 그리라고 하고 친구들이 와서 나에 대해 물으면 우리 옆집애라며 소개도 했었었다.
사실 그 언니는 비행청소년이 할 만한 일들을 친구들과 했었는데 그 후로는 나도 조금 무서워져 그 언니를 피했던 것 같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나도 중학생이 되고 언니와의 교류는 인사정도였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언니가 언니집 앞에 서서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있었던 날이 있었다. 내가 쳐다보니 키가 없어서 그러니 잠시 우리 집에 있어도 되겠냐고 했고 나는 내방 책상과 의자를 내어주었다.
언니는 매우 지쳐 보였는데 책상에 앉아서 우는 것 같기도 했다. 그날 이후 또 인사정도만 하다가 어느 날 학교 끝나고 집에 갔는데 경찰들이 그 언니집에 있었고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었다.
우리 집으로 가려면 하는 수없이 폴리스라인을 지나칠 수밖에 없었는데 지나가며 그 집을 보니 그 언니의 아버님이 주저앉아 계셨다.
그때도 그냥 영문을 모른 채 지나가고 며칠 후에 그 언니가 자살했다는 얘기가 전해졌다.
그리고 그 집안의 비밀들도 우리 집 부모님의 입에도 오르내렸다. 그때는 그 일이 그렇게 안타깝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나도 초등학교 때 집에서 뛰어내려 죽으려 했던 때가 있어서 그게 우리의 일상일까란 생각도 있었나 싶다. 물론 우리 부모님들은 몰랐을 것이다. 난 결국 뛰어내리지 못했으니 그 시도가 실행되었다면 우리 집의 비밀들도 남의 입에 오르내렸겠지.
요즘에서야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어릴 때 사랑이 있는 아이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야 뭔가 어떤 날은 눈물이 나고 어떤 날은 무엇인가 그립고 그렇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산책하려는 어떤 날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