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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 Mar 30. 2022

삶에 균형을 찾아줄
의미 있는 대상이 있습니까?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삶에 균형을 찾아줄 의미 있는 대상이 당신에겐 있습니까?”

최근 고민상담 프로그램에서 오은영박사님의 이 말이 오랫동안 머리에 맴돌았다.

영화 속 네자매는 ‘가족이란 울타리 속의 서로의 존재가 그녀들의 균형을 찾아주었겠구나.’란 생각에 

부러워졌다.


이 영화는 ‘그렇게 가족이 된다.’란 부제가 어울릴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처음 만나게 된 이복 여동생. 자극적일만한 소재를 참 담백하고 아리게 담았다.

‘가족’이란 단어로 묶기엔 이질감이 있는 관계들은 

밥 먹는 모습이 닮아가고, 자신의 기분 전환법을 공유하고, 표정으로 기분을 읽어가며 

그렇게 서로에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묘하게 잘 어우러져 갔다.

그 어울림에 물들어가면서도 스즈는 ‘존재만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삶’이란 생각에 

온전히 행복해지지 못한다.


존재만으로 상처를 주는 삶이란 말이 참 서글펐다.

아버지의 이기적인 선택은 네명의 ‘어린 아이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생채기 내는 법을 먼저 배우게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네 탓이 아니야.”

“아줌마는 너희 어머니 아버지가 부럽다. 너 같은 보물을 이세상에 남겼잖니.”


그녀들에겐 다행히 잔멸치 덮밥이, 매실주가, 전갱이 튀김이, 

그리고 그들의 집이 상처 난 마음들을 어루만져주었다.

‘타인’이란 단어에 감춰진 ‘진짜가족’들이 상처 난 마음으로 기울뻔한 그녀들의 삶이 

다시 한 번 균형을 잡게 된다.


영화를 보고 전 이 결핍된 아이들의 삶을 내가 나의 시선으로 잘 써내려갈 수 있을까란 걱정은

‘나의 마음에 균형을 맞춰줄 존재가 없는 나의 지금이 더 결핍된 건 아닐까?’란 씁쓸함으로 바뀌었다.


가끔 ‘사치’처럼 상처에 벗어나지 못해 그 곳에 머물고 있는 어린 날의 나를 마주 할때가 있을 것이다.

‘요시노’처럼 나를 희생시키는 무언가가 인생의 전부라 생각할 때도 있을 것이다.

‘치카’처럼 천진함 속에 공허함들로 가득차있는 날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스즈’처럼 나의 존재가 불행은 아닐까란 생각들이 날 갉아먹기도 할 것이다.


적어놓기만 했는데도 우울함 투성이다.

그 상처와 우울함으로 나의 삶이 잠식 되기 전에 

그 균형을 맞춰줄 의미 있는 대상이 나에게도 다가와주길 바란다.


부디 “네 탓이 아니야.”라 말해주는 ‘카마쿠라 마을’을 발견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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