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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Mar 02. 2018

우연히, 그곳에서...<101화>

[ 제101화 _ 잘난 듯 지껄이지 마!! 네가 뭘 알아?! ]


“저, 저요?”

밀려드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이실직고를 위해 이곳에 도착해 있었지만, 마지막 결정을 내리기엔 결의가 부족했던 탓인지 몇 시간을 출판사 앞에서 서성이던 기태. 

뒤에서 누군가 불러대는 소리에 그만 깜짝 놀라 당황함에 말을 더듬어 댔다.

“그래, 당신 말야!!”

아마도 출판사의 관계자일 것이라 생각한 기태는 뒤에서 말을 걸어오는 이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했다.

“왜... 그러십니까...?”

“당신 말야, 아까부터 계속 그 앞에서 서성이던데, 누구야? 이 출판사 직원 아니지?”

“아...? 아, 네...여기 직원은... 아닙니다만... 좀 볼일이...”

말을 걸어 온 사람은 대뜸 기태의 수상한 행동거지부터 지적해 들어왔다.

그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잘못한 것도 아니거늘, 마치 큰 잘못을 하다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기태는 줄곧 그의 눈치를 보며 시선을 회피했다.

“볼일이 있으면 빨리 들어가고, 일 없으면 빨리 돌아갈 것이지, 왜 그러고 얼쩡대고 있어? 수상한데...확 경찰을 불러버릴까...”

“아, 아닙니다!! 정말 보... 볼일이 있어서 온 거예요... 이제 들어 갈...”

이곳에 찾아 온 원래의 목적 때문에 찔리는 부분 때문이었는지, 엉겁결에 변명조로 대답 하다가, 조금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기태.

자신이 수상한 건 그렇다 쳐도,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왜 다짜고짜 반말을...

“아니, 근데 잠깐... 이것 봐요...! 듣자하니 좀 그러네요, 저 아십니까? 왜 말을...”

기태는 그제야 얼굴을 확인하려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쳐다보려 했다.

말을 걸었던 이는 기태와 눈을 마주할 틈도 없이 빠르게 가까이 다가와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엇, 뭐...뭐야 이게...?”

“시끄럽고...! 이 출판사 들어갈 거면 들어가기 전에 이거나 읽어 봐!”

누구지? 
분명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기태가 정신없이 손에 쥐어진 물건 때문에 당황하며, 정체를 확인하려 했을 때 그 여성은 이미 어딘가로 빠르게 이동하는 중이었다.

검은색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누구인 지 알아볼 수 없었던 이 여성. 

키도 크고 늘씬한 뒷모습은 어찌 보면 연예인 같기도 한데...

“뭐야? 저 여자...?!”

여성은 출판사 반대편 방향으로 도망치듯 빠르게 걸어 가 이내 시선에서 사라졌다.

"전여친...? 아냐... 그럴 리는 없고..."

기태는 뒤늦게나마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의 지인들을 떠올려보며, 멀어지는 그 여성이 누구인지를 파악해내려 했지만, 뒷모습 만으로는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툭툭 반말을 내뱉던 버릇없는 여자가 주고 간 무언 가...기태는 아무 맥락도 없이 전달 받은 물건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뭐야...? 출판사에 들어갈 거면 보고 들어가라니? 광고 찌라시 같은 건 아닐 테고... 무슨 이상한 종교 홍보문인가...”

그것은 ‘문서'라 하기에도 애매한, 그냥 뭔가가 프린트 되어진 두 장의 접힌 종이 쪼가리였다.

얼핏 누군가가 주고 받은 메일 내역을 통채로 인쇄해 놓은 듯한 모습.

송수신자가 누구인 지 알아 볼 수는 없었지만, 메일의 본문 내용으로 들어가자마자 익숙한 이름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응!?"

순간 기태는 글 읽기를 멈추고 뒤늦게 사라진 여성을 급하게 찾아 헤매이기 시작했다.

미리 더 서두를 걸 그랬는지, 재빠르게 어딘가로 향하던 여성은 이미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지만...

'뭐야...! 대체 정체가 뭐야...!! 이 여잔... 어떻게 이런 걸...나한테...'

기태는 한숨을 크게 들이 쉬고는 다시 읽던 글의 본문 쪽으로 눈을 돌렸다.

[ 친구 기태에게... ]

처음보는 여성에게 전달받은 종이에 쓰인, 덩그러니 불리워진 자신의 이름.

"친구..."

기태는 글의 첫 문장만으로 글의 출처를 바로 알아낼 수 있었다.

“임세현인거냐... 그럼 저 여잔... 그냥 심부름꾼? 나 여기 있는 줄은 또 어떻게 알고..."

하필이면, 어려운 결정으로 거사를 치르기 바로 전에 이런 메세지를 받게 될 줄이야...

그렇다면 종이를 주고 사라진 여성은 아마도, 이제까지 전화를 걸어 기태를 협박했던 장본인.

기태는가만히 자신을 협박해대던 여성의 목소리와 조금 전까지 퉁명스럽게 틱틱태던 목소리를 대조해 보았다.

"맞는 것도 같네...후우..."

기태는 더 분한 마음이 들었지만 눈을 감아 잠시 감정을 가다듬은 후, 옆에 보이는 구조물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마저 글을 읽어갔다.


            ***

알다시피 내가 지금 외국이라...
장소도 장소지만, 직접 널 대면하면서 얘기하게 되면 감정 컨트롤 할 자신이 없어 질 것 같아 이렇게 글로 남긴다.

친구라는 표현... 이제 쓸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긴 시간동안 친구로 살아왔으니 아직까진 친구라고 하자.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내가 작가하겠다고 한 데에는 네 영향도 크니까... 나름 배운 것도 많다고 생각하고...

글 쓰면서 살고 싶다고, 처음 너한테 얘기했던 때, 넌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이 세계에 들어오지 말라고 나한테 당부했었어. 

'얼마나 어려운 지 알고는 있느냐', 
'재미있고, 뭔가 있어 보이는 만큼 그렇게 호락호락한 직업 아니다', 
'다니고 있는 좋은 직장, 그거나 계속 하는 게 속 편할거다',
'괜한 고생 자처하지 마라'
하면서...

그래, 그 때는 가까운 사이라고, 친구 미래를 걱정해 준다고만 생각했었고, 실제로 네가 해줬던 그 말들이 결심에 영향을 줬을 뻔한 것도 사실이야.

오랫동한 고심 끝에 나름 어렵게 정하기도 했고, 힘들다 힘들다 하지만 버텨낼 수 있다고, 

결국, 절반은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결국 나는 내 뜻을 밀어 붙였었지만.

네가 그 때 무슨 의도로, 무슨 심정으로 나한테 그렇게 얘기를 했던 건지,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는 친구 통해 이번 사건 얘기 들었을 때는 물론 반신반의 했었고...

실제로 너하고 전화하고 난 후에, 내가 이 상황을 얼마만큼 부정 했었을 지 상상이나 해봤어?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사실은 가장 큰 적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공모전 수상... 
그래, 물론 날 너무 잘 알고 있는 네 입장에선 시기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가지 않을 수는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네가 만들어 낸 얘기... 앞뒤를 맞추어 가보면 얼핏 그럴 듯한 이야기라 세상 사람들이 믿기 시작했었던 것도 그렇고, 실제로 그런 비슷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으니 사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거 알아.

근데, 그런 제일 앞장 서서 의혹을 만들었다는 사람이 제일 가깝다고 여기던 너였다니...


누가 뭐래도 이 길을 선택하고 난 뒤로부터 난, 정말 정말 열심히 살았어. 네 말처럼 그저 아버지 덕을 보려고 했던 적 단 한번도 없고... 

알아주길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오히려 그 그늘에서 벗어나는 게 몇 배는 더 힘들었어.
 
넌 이미 내게 어마어마하게 잔인한 짓을 했으니 나도 잔인하게 몇마디 해야겠다.


넌 그저 부정하고 싶었던 거잖아. 
자신이 먼저 가고있던 길에, 갑자기 무임승차 한 친구 녀석이 끼어들어와, 밥그릇 빼앗아 가는 것 같으니까.

나를 속이고, 세상을 속이고, 심지어 넌, 너 자신을 속인거야. 아직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원망 때문에.

창조적인 일 하는 거에 늘 자부심 가지면서 그렇게 좋아하는 일 하고 있었다면서, 언제부터 그렇게 유명세에 집착한거야?

이제 첫 발 내딛으려는 친구 발목을 이렇게 까지 끌어내려야 할 만큼 그렇게 유명해 지고 싶었어!?

어떤 걸 바라고 이런 일을 벌였는지는 모르지만, 바램대로 되었다면, 어떤 게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물론 그 얘기를 기자들한테 꺼낼 때 네가 내 친구였다는 말은 안했겠지. 

그러면서, 오히려 가까웠던 사이라 알 수 있었던 정보들을 이렇게 무기처럼 휘둘러 댔겠고.


나는 너, 끝까지 친구로 생각했고, 작가가 되기로 한 순간부터 같이 선의의 경쟁을 했으면 했어. 

같은 분야의 친구는 너밖에 없었으니까, 서로 좋은 경쟁이 될 수 있으리라고.

근데, 사람 관계라는 게, 참 일방적일 수가 없네.

언제부터였는 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이렇게까지 날 의심하고 미워하고 있었다면...

그리고 난 병신같이 그걸 또 이렇게 늦게 알아버렸네.

너 역시도 이제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한 행동이겠지만, 이제 우리, 친구라는 표현을 쓰기엔 너무 과분하지 않겠어?

설마 일본으로 출발하기 전에 봤던 모습이 마지막이 될거라곤 생각도 못했지만, 
이제 너를 만나는 건 좀 어려울 것 같다. 

그렇게 까지는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어쩌면 우리, 만났을 때부터 어떤 목적에 의해 가까워 진 거 였다면, 결국 결과가 이렇게 밖에 될 수 없는 건가 씁쓸하기도 하고...

***




얼핏 첫장을 다 읽어내려간 기태.
종이를 쥐고 있던 손은 자신도 모르게 부들부들 떨려왔다.

분함, 원통함... 
그리고 죄책감이 동시에 온몸 전체에 퍼지며 발끝까지 반응을 해오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있는 힘껏 부정했다.

"우...웃기고 있네...!! 뭐...뭐...절교 편지라도 되는 거야?! 이런 식으로 또 날 가르치려 드는 거야?!

나도 네놈 계속 볼 생각이었으면 처음부터 그런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어...! 비겁하게 이게 글로 뭐 하자는 거야...!! 뭐? 유명세에 집착을 해?! 그래!! 결국 글쟁이래도 누가 알아주고 봐줘야 계속하는 거지!! 그것만으로 먹고 살아야 되는 생계수단이 되어봐라!! 

잘먹고 잘 살던 놈이 뭘 안다고 다 아는 듯 얘기하는거야!? 건방진 자식...! 

그런 놈이 썼다는 글이 한번에 이렇게 세상에 알려져버린 걸 내가 인정할 수 있겠느냐 말이야!?"


분통함에 도로 한복판에서 혼잣말로 크게 소리를 질러 댄 기태.

글의 형태이기에 당연한 것이지만, 일방적으로 감정을 쏟아내는 듯한 세현의 이 방식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장에 종이를 찢어버리려던 기태.
있는 힘껏 종이를 구겨 길 바닥에 던져 버리려던 찰나.

소심하기 짝이 없게도 두장으로 되어 있는 이 글의, 아직 읽지 않은 뒷장에 뭐라고 써 있는 지 궁금해 졌다.

모양 빠지게 꼬깃 꼬깃 구겨놓은 종이를 살며시 펴 뒷장을 넘겨보는 기태.

“그래, 어디까지 씹어대나 어디 구경이나 해보자...!"

앞장의 뉘앙스로 계속해서 자신을 향한 독설이 난무할 것이라 마음의 각오를 끝 마치고 내용을 확인했다.


***


네가 날 아는 만큼 나도 널 잘 알아.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너라면, 분명히 통화 후에 이래저래 고민하다가 결국엔 네 성질에 못이겨 모든 걸 밝힌다고 어딘 가 찾아갔겠지.

내가 알아버리고 이렇게 호통을 쳐댔으니...

솔직히 억울하고 분해...!
출판사도, 나도 이미 그것 때문에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은 것도 사실이고.

근데, 네가 네 입으로 그걸 공개하는 순간 네 작가인생은 어떻게 될 것 같냐?

'한기태라는 기성 작가가 공모전 낙방에 앙심을 품고 수상자 명단에 딴지를 걸어 출판사에 수치를 안겨 주었다'라...

최대 피해자의 한 사람으로서, 진실을 알아버린 이상 먼저 내가 나서고 싶은 마음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만은 참아라.
그렇게 관심 받고 싶으냐? 매스컴으로부터 관심? 네 덕분에 내가 좀 겪어 봤는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더라.

넌 못해...! 
그러니까 아무 생각말고 글이나 써! 

친구하나 버린 셈 치되, 너를 버리지는 마라.

네가 떨어뜨린 출판사의 명예, 내가 다시 되살린다. 두고보자.


***



절교편지의 딱딱한 문체의 막바지에 이르러 살짝 드러난 평소 세현의 말투.

"잘난척 하지마!!! 이 새끼야!!!"

큰소리로 부정하려던 기태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 새낀...뭔데 멋있는 척을 하고 있어...!? 그래...! 차라리 눈 앞에... 와서 개새끼하면서 면상을 갈겨라!! 내가 고마워나 할 줄..."

여전히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허공에 대고 오열을 하는 기태.

아무도 들을 이는 없는 혼잣말이었기에 발음이야 아무래도 좋았지만, 이제는 무슨 말인 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의 울먹임 섞인 울부짖음이었다.

혼자 소리 지르고 혼자 펑펑 울고 앉아있는 이 정신 나간 청년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신기하게 쳐다보았지만,

이미 눈앞을 가린 눈물 때문에 그런 것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얼마나 그렇게 처량하게 울었을까.
구겨진 종이를 들고 서서히 몸을 일으켜 터덕터덕 휘청대며 걸어가던 기태.

“다 울었냐? 처량 맞게도 우네... 그래도 양심이 남아있기는 한 모양이네...!”

이 목소리는...
조금 전 종이를 전달했던, 그리고... 이제까지 자신에게 협박을 해오던 여성이었다.

정신이 살짝 풀려있는 기태였지만, 바로 목소리를 알아듣고는 거칠게 고개를 돌려 여성을 바라보았다.

“어... 어, 다... 당신...!!??”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http://m.me.co.kr/?mode=cdetail&itemNo=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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