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02화 _ 쎈 여자의 미친 팩트폭행 ]
“다...당신은...!?”
기태의 눈 앞에는 조금 전 메모를 전달하고 어딘가로 홀연히 사라진 줄만 알았던 그 여성이 서 있었다.
기태는 그녀를 확인한 뒤 뭔가 수상한 기운을 감지해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자세하게 관찰했다.
“아아...!! 당신은...?!!"
그녀는 바로,
얼마 전 카페에서 만나 자신의 작품을 보고 같이 일을 해보자 했던...
“당신은... 노을...출판사에서 저번에 봤던...그 사람...”
“그래, 이제 알아보겠냐?”
모자를 살짝 더 올리고, 작은 얼굴을 가리고 있던 검정 마스크를 턱밑으로 완전히 내려 자신의 얼굴을 확인 시켜 주는 여성, 바로 아영이었다.
아영은 도도한 표정으로 기태를 내리깔아 보았다.
“뭐, 뭐야...!? 그럼... 당신이 세현이 안다는 사람... 그럼... 노..노을 출판사 그것도 완전히 사기 였던 거야? 그 일본 사람까지...!!”
“그래, 다 사기다. 네가 세현이 뒷통수 친 범인이란 거 알아볼려고 콩트 한번 짜 봤다. 반대로 당해보니 기분이 어떠냐?”
“이런 개....”
조금 전까진 서럽게 울다가 갑작스레 찾아온 날벼락에 기태는 쌍욕을 입에 물고는 아영을 해하려 서서히 다가왔다.
“왜? 이젠, 아주 폭행죄까지 추가하시게? 어이없이도 누명 쓴 세현이 기분, 십분의 일이라도 이해는 하겠냐? 이 추잡스런 놈아!”
“뭐...? 추...추잡스...”
“세현이가 하도 젠틀맨이 되어나서 이건 완전 죽여놔도 시원찮을 놈을 너무 신사적으로 대한 것 같아 나라도 험한 말 좀 해줘야 할 것 같아 발길 돌려 돌아왔다. 이 병신같은 놈아...!”
기태는 뜨끔하며 아영에게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네...네가 뭘 안다고 그래?! 너 뭐야? 세현이 여자친구냐?! 네가 뭔데 중간에서 끼어들고 있어?!”
“뭐... 아쉽게도 여자친구는 아니고, 그냥 몇 년 같이 일했던 동료인데, 하도 갑갑해서 본인이 시키지도 않은 짓 좀 도맡아 해봤다!! 작가들도 별거 없네...!"
“도...동료? 글 쓴다고 나간 놈한테 무슨 동료가 있어? 어디까지 날 속일 셈이냐!”
“이거 봐, 자기가 알고 있는 요만한 지식을 마치 그 사람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판단하는 거...!! 그러니까 네놈이 겁도 없이 이런 일 벌렸지, 뒷감당도 못할 거...!!”
“내가 모르긴 뭘 몰라...! 내가 세현이랑 몇 년을 알고 지낸 사이인줄 알고나 하는 소리야?! 내가 무려...”
“중학교 때 부터? 그렇지, 한 15년은 넘었겠네... 임형우씨 아드님 쫓아 졸졸 따라다닌 지...”
“뭐? 졸졸 따라다녀? 말 함부로 할래 이런 쌰...!!”
아영은 무서운 눈을 뜨고 달려드는 기태에게 한마디도 지지않고 더 날카로운 눈빛으로 응수했다.
“그래서... 네놈이 벌인 이 짓거리가 지금 세계적으로 얼마만큼의 망신을 줬는 지 생각이나 해봤냐? 한국에만 있으니까 바다건너 어떤 영향까지 끼쳤는 지는 상상도 못해봤지?”
“세...세계적...”
“그래, 네놈은 그저 얕은 생각으로 세현이를 건드린다고 건드린 모양이지만, 결국 제일 크게 타격을 입은 건 출판사야! 대충 감이 안오냐?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출판사를 비리의 온상으로 만들어 버리고는...!”
기태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초조한 표정으로 아영의 이야기를 계속 들을 수밖에 없었다.
“출판사에 가서 알려봐라...! 거지 같지만 그래도 세현이는 네놈하고 과거 친구였던 인연으로 작가인생까지만 거론한 모양이지만, 네놈 단방에 깜빵행이야!!”
“무...무슨...!”
“아닐 것 같냐? 앞으로 그 출판사가 사람들한테 어떻게 인식될 지 떠올려봐라. 그러면 당연히 도서 매출은 떨어질 테고...금전적인 피해까지 다 너한테 책임 물으면 어떻게 할래? 아주 엄청 잘사나 봐?”
요목조목 현실적인 문제를 찝어주는 아영의 날카로운 지적에 기태는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상황 역시도, 정체 모를 한 여성의 협박 때문에 그나마 자신에게 피해 적을 만한 선택을 위해 택한 것일 뿐...
“세현이가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네놈을 용서했어도, 나는 아닐 수 있어...! 누가 됐건 이야기만 전달되면 그 뿐인 거 아냐? 네가 했던 행동처럼...!”
“너...넌...!! 대체 뭐야!! 고작 동료였다던 인연으로 이렇게 총대까지 메려고 하는 이유가 뭐냐고!!”
아무런 논리가 통하지 않을 것을 인지했음일까, 이제는 생떼를 쓰기 시작한 기태.
갑작스레 찾아온 유혹에 빠져버린 것이 화근이었는지,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얘기해 대는 상대를 만나게 될 줄이야...
자신이 벌여 놓고도 찜찜함은 늘 자신을 괴롭혀 왔었지만, 이제 혼자만의 감정만으로 끝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너한테는 아주 재수 똥인 여자겠지. 난 너도 너지만, 세현이가 더 납득이 안돼. 납득이... 아무리 친구였데도 자기가 그렇게 몇날 며칠을 끙끙 앓아놓고선 왜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을 하지... 알아봐 준 사람 보람 없게...”
“그... 그래서 뭐...어쩔 셈인데...”
아영은 처음과 같은 도도한 표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기태를 빤히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그건 내가 물어볼 말 같은데...? 당사자는 용서를 한다는 투로 불만 전달했어. 근데 네놈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무섭도록 직설적인 아영의 화법에 기태는 순간순간 넋이 빠질 정도로 온 몸이 풀리기 시작했다.
“……”
기태는 입을 꼭 다문채, 다 체념해 버린 듯 시선을 마주하지 못했다.
기세등등하게 말대답을 해대던 조금 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약해빠진 모습.
동정심이 생길 정도로 불쌍해 보이는 기태의 모습에 아영은 이제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모자를 내려쓰고 턱에 걸친 마스크를 얼굴에 올려쓰고는 돌아섰다.
“이...이것 봐...!! 난...그럼 어떻게...”
기태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서려는 아영을 불러 응석을 부리는 투로 대답을 보챘다.
모자 그림자에 가려져 희미하게 눈동자만이 보이는 아영이 고개만을 뒤로 돌려 나지막하게 얘기했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네 친구 얘기대로 해야지... 네가 병신을 만들려던 친구가 이런 상황에도 널 감싸주려는 친구였다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기태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툭 한마디를 던지고는 돌아서는 아영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 그리고...!”
아영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다가 다시 뒤로 돌아 기태와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 했다.
“네 소설...! 나름 몰입도 있고 재미있었어! 나이도 이제 30대 초반 밖에 안된 주제에 뭘 그리 안달이야? 네놈 좋아한다늬 임형우씨도 40대 나 되어 겨우 인정받았어, 알기나 알아?”
뒤에 말은 들릴 듯 말듯, 고개를 돌려 걸어가며 중얼대는 아영.
시선에서 아영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우두커니 서서 아영을 바라보던 기태.
아영은 멀찌감치, 점으로 보일 정도로 멀리 떨어지고 나서야 고개를 푹 숙이며 출판사의 반대편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기태를 확인했다.
“쳇, 저 정도 밖에 안되는 찌질이한테...”
“아영씨!! 괜찮아!!??”
아영이 기태와 헤어져 한참을 걸어온 장소에서 애타게 아영을 기다리고 있던 야마다.
마치 전쟁에서 돌아온 가족을 맞이하는 듯한 표정으로 아영에게 사정을 물어대기 시작했다.
“뭐, 괜찮고 말고 할게 어디있어? 내가 어디 뭐 위험한 데 갔다왔냐?"
“아이씨...! 아영씨도 참, 그냥 세현씨 메일 전달해 주는 걸로 우리 의무 끝난 거 였잖아!! 왜 위험하게 가서 직접 정체는 밝히고 그래...!! 자꾸 애드립 칠거야?! 걱정되게...?!”
아영은 정말로 걱정이 가득 담긴 얼굴로 매달리는 야마다를 보고 피식 웃음을 지어보였다.
“흥, 넌 참 걱정 할 것도 많이 좋겠다...! 세현이가 제대로 막 강하게 나오고 그랬으면 내가 그냥 거기까지 하고 말았을 텐데...! 열 받잖아!! 세현이 놈도 참 머저리 같이 자기만 당하고 아무것도 안할려고 하고...!”
“뭐 중간에서 알아보느라 고생했던 거 생각하면 아영씨도 뭐 좀 허무한 감정 들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 너무 위험했어...!! 우리 사업도 그렇게 하면 안돼!!”
“사업이랑 이거랑 같냐, 임마! 비교할 걸 비교해라... 아무튼 너도 수고 많았다...”
걱정어린 얼굴을 하다 예상치도 못한 칭찬을 듣고 뭔가 기분이 좋아진 듯한 야마다. 조심스럽게 아영에게 되물었다.
“아, 아영씨, 지금 나 칭찬해 준 거야?”
“그래! 이것 저것 정보 알아보느라 고생 했잖아!! 고생 안했어?! 그럼 칭찬 안들은 거로 해라...!!”
“아냐! 아냐!! 나 엄청 고생했어!!”
“쳇, 꼭 안해도 될 말 해가지고 저러고 멍청해져요... 너 살면서 칭찬 처음 들어보지? 아주 감격에 젖어 들었구만...!!”
“아... 아냐!! 아영씨가 워낙 평소에 좀 거칠게 행동하니까, 그냥 좀 달라서 신기한 거지...”
툴툴대며 대화하는 아영과 야마다. 이제는 정말로 일단락을 지은 듯 홀가분하게 같이 이동했다.
“야마다. 뭐 얘기했다시피, 일 마쳤으니까 우린 이제 내일 일본 돌아가는 거야. 뭐 성과가 있어서 좋긴 한데 좀 정신이 없었네, 그동안...”
“다행이다... 아영씨. 좀 막무가내 였는데 별 일 없이 잘 마무리 되어서...”
“막무가내는 무슨...! 철저하게 계획 세워서 한 거 였는데...! 아무튼...! 이제부턴 우리 사업에 집중하자.”
전날,
해인과의 전화에서 세현의 편지 전달 부탁을 받았던 아영.
오랜 고민 끝에 세현이 내린 결정인데, 직접 부탁하기에는 미안해 해인을 통해 아영에게 전달되어진 세현의 편지글 이메일이었다.
“뭐? 그런 놈한테 그냥 편지만 전해주고 끝내라고? 임세현이 제정신이야?!”
“좀 힘들긴 했어도 이제 시간도 좀 지났고... 다시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지 않다나 봐.”
“아니, 긁어 부스럼이 아니지...! 명백한 범인이 눈앞에 있는데...!!"
전화 중에도 아영은 답답한 세현의 처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큰소리를 쳤지만, 세현의 부탁대로 따라주었던 것.
아영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야마다의 못다한 한국여행 마지막 날의 가이드가 되어주며 해인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 메일 전달 완료...! 이제 걱정말고 할 것들 진행하도록...!! ]
***
아를.
깊은 밤. 가게 사장님, 아니, 이제는 어엿한 해인의 선생님이 되어 있는 아저씨의 말대로 세현의 소설을 정독하고 있던 해인.
‘처음 읽을 때에는 그림 생각하지 말고, 그냥 이야기 흐르는 대로...’
아저씨의 가르침대로 처음 세현이 썼던 단편 작업했던 삽화와는 또 달리,
길고도 길게 이어지는 장편에의 계획을 세워가는 중이었다.
이곳에 와서 처음 보았던 이 전 세현의 작품에 비해 훨씬 깊이 있고 몰입도가 생기는 장편소설.
아저씨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야기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문장, 한문장의 표현에서 정성이 느껴지되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구조였다.
“후후... 임씨...연구 많이 했나보다... 3년이나 걸렸 댔나...?”
[ 부르르르...! ]
“응?”
늦은 밤에 어디선가 도착한 메세지. 해인은 바로 핸드폰을 확인해 보았다.
[ 메일 전달 완료...! 이제 걱정말고 할 것들 진행하도록...!! ]
아영의 메세지...!
시차를 생각해도 현재 한국의 시간은 점심 전 일텐데, 부탁 전화를 한지 불과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일을 마무리 했을 줄이야...
“역시, 아영이는 ...!!”
요즈음, 아를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세 사람의 한국인들은 세현의 소설 읽기에 푹 빠져있다.
세현은 혹시나 하는 오탈자를 위한 퇴고로서, 해인과 아저씨는 삽화작업 진행을 위한 독서로서...
특히 처음 공개를 하고 난 후라, 평가에 초조한 마음으로 남은 퇴고를 하느라 신경이 곤두 서 있을 세현.
[ 끼이이이익... ]
[ 똑똑...! ]
오래간만에 해인은 창문을 열어 맞은 편 집 세현을 불러보았다.
“응?”
항상 같이 붙어있고, 만나려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환경 덕에 한동안 창문 접견이 필요치 않았기에 오래간만에 들리는 소리였다.
[ 끼이이익...! ]
의아함을 가졌지만, 틀림없다는 생각에 세현도 창문을 열어제쳤다.
역시나 창문에서 자신을 호출한 건 해인.
해인과 세현은 창문을 열고 새삼스럽게 나타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환하게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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