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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기 May 21. 2023

용암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승부처였다. 

경기를 포기할 상황은 더더욱 아니었다. 


유소년 야구 대회의 봉황대기라고 불리는 전통 있는 전국 유소년 야구 대회 경기였다. 상대팀 용암초는 작년 이 대회 준우승팀으로, 월드컵으로 치면 브라질까지는 아니어도 벨기에, 네덜란드 정도는 되는 강팀이었다. 


2 대 4. 두 점 뒤진 6회말(유소년 야구는 6회까지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마지막 공격 기회였다. 선두 타자는 6학년이었다. 볼카운트는 1볼 2스트라이크. 불리한 볼카운트였지만 공을 맞혀내고 빠지는 공을 참아내기도 하며 나름 승부가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응?


감독님이 갑자기 뛰어나왔고, 심판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하니, 타석에 있던 타자가 어리둥절 엉거주춤하는데...... 우강이가 헬멧을 쓴 채 걸어 나왔다. 걸어 나오다 뛰기 시작했다. 나도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눈밑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우강이는 4학년 치고도 작은 편(130cm 남짓)인 데다 동안이기도 하다(식당에서 미취학이냐는 소리를 자주 듣는데 미취학 아동 할인 때문에 잠시 대답을 망설이기도). 감독님을 제외한 경기장의 모든 이(양팀 선수들, 코치진, 응원단, 심판들까지)가 당황한 듯했다. 


우강이는 특유의 헤헤 하는 표정으로 배트를 6학년 형아에게 받아 들고는, 타석에 서서 가볍게 스윙을 한두 번 하고는 자세를 잡고 엉덩이를 사뿐사뿐 흔들며 리듬을 타는, 특유의 루틴을 이미 마친 상태였다. 나는 이미 평정심을 잃은 상태였고, 


아니, 왜?


를 연발하며 눈을 가렸다가 타석을 보았다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가 타석을 보았다가 일어났다 앉았다...... 하며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루틴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 같)다.    


1볼 2스트라이크. 공 하나로 끝나지만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우강이가 맞이한 초구는... 볼! 우강이 머리 높이로 들어왔다. 이봐 투수 친구, 적잖이 당황했을 거야? 훨씬 더 낮게 던져야 한다고. 그리고 2구.


어머, 쟤 너무 귀엽다.


상대팀 응원단에서 누군가 말했고, 그것이 용암초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한가운데 직구, 작지만 단단한 몸이 휘청할 정도의 스윙, 꽤 경쾌한 타격음, 1루수와 2루수가 동시에 공을 쫓았지만, 공은 그 사이를 빠져나가며, 천둥 같은 함성이 터졌고, 나는 왈칵 눈물이 터졌다. 


1루를 밟고 선 아이는 크고 빛났다. 

용암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후 연속 안타가 터지면서 우강이는 홈을 밟았고, 우리 팀은 영화처럼 역전 끝내기 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영화처럼 다음 경기에서 패하며 대회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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