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겠다는 확신은 없다
(번호에는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에도 확신은 없다. 문단의 순서에는 의미가 있기도 없기도 하다. 정보 없는 발리 여행기. 2월20일에 썼다.)
1. 내가 처음으로 한국을 떠나 여행한 곳은 미국이었다. 그 경험은 여행이라기보다 체류였는데, 엄밀히 말해 진짜 ‘체류’ 경험을 두고 이야기한다면 그 첫 번째는 일본이라 해야 옳다. 미국행 경유편을 타느라 꽤 긴 환승 대기 시간을 나리타 근처의 숙소에서 보냈었다. 내가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의 공간이되, 혼자 하룻밤을 보내기 너무 무섭지 않은 곳이면 괜찮았다. 일본의 비즈니스호텔이 대체로 작은 것을 그때는 모르고 아, 이 가격대의 방은 이렇구나, 생각했다. 침대와 책상, TV 말고는 딱히 언급할 구성물이 없었던 그 방에서의 기억은 이후 미국에서의 시간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남았다. 시골 주택가에 조금 뜬금없이 서 있던 호텔은 어둡고 심심했다. 완벽히 방임되어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호텔의 시끄러운 수동 시계를 맞춰두고도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아침잠이 많아 늦잠을 잘 까 봐, 는 핑계였다. 그냥 그 시간이 좋았다. 한국이 아닌 곳에서 보내는 첫날밤,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보내는 첫날밤,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혼자 보내는 첫날밤이었다.
2. 그 방에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라는 영화를 봤다. ‘떠난다’기에 마음이 끌렸다. 나는 다음 여정이 어떻게 되든, 알람을 듣든 못 듣든, 어찌 되든 상관없이 있던 곳에서 떠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상한 아드레날린을 느꼈던 것 같다. 해방감을 넘어서는, 아주 이상한, 일탈감이 동반해야만 느껴지는 안도감이었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안도감이나 해방감과는 영 거리가 먼 결말의 이야기지만, 그 영화를 생각하면 지금도 비좁은 호텔의 침대에 모로 누운 내 감정이 떠오른다. 어떤 영화는 줄거리가 아닌 시공간 안에 박제된다. 그건 서사를 넘어서는 인상이다. 나에게는 많은 영화가 그렇게 남는다. 그리고 이 기억의 과정엔 때로 어떤 논리나 인과가 전혀 개입되지 않는다. 영화를 취재할 때 나와 가장 끈질기게 싸운 내 안의 습관은 이런 것들이었다. 발리로 향하는 동안 (항공사 버전의)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과 (미리 다운받아둔) 넷플릭스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5화를 봤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 대한 감상처럼 내 멋대로 기억에 남을 두 콘텐츠에 대해 뭔가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3. 발리에 온 지 사흘째다. 첫날은 자정이 넘어 호텔에 도착했으니 걷고 먹으며 여행한 것은 이틀째가 맞다. 몇 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느끼지 못했다. 다만 혼자이니 발 가는 대로 걷고, 배가 고플 때 먹고, 고프지 않으면 굶고(아직 그런 적은 없다), 자고 싶을 때까지 잘 수 있다는 사실이 여행의 질을 다르게 만든다. 좋기도, 아니기도 하다.
4. 기자를 그만두기 전까지 오래 고민했다. 나는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하고, 사람을 관찰하는 일도, 영화를 보는 일도,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도 좋아한다. 동료들은 나를 실제의 나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으로 여겨주었다. 대부분 배울 점이 무수한 사람들이었다. 일에 대한 고민은 이직이나 전직 가능성 같은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만두고 나서인지, 여기까지 떠나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답이 조금씩 명확해지고 있다.
5. 내가 일을 그만둔 것은 나의 능력에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능력의 유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을 조금 덜 의심할 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너무나 확신을 얻고 싶었다. 확신을 얻는 일이 급해서, 그 근거를 밖에서 찾으려고 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도도 없이 풍경으로 알아채려 한 셈이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내가 정말로 원하던 말들을 해 줬다. 그럴 때 행복했다. 종일 그 말을 머릿속에서, 혓속에서 돌돌 굴렸다. 돌이켜보면 너의 글을 보았어, 네 글에 공감하기 어려워, 우리 영화를 소개해줘서 고마워, 너의 인터뷰가 재미있었어, 같은 말들이 내가 그 일을 계속하고 싶었던 유일한 이유였다.
6. 하지만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원망하거나 탓한다는 것이 전혀 아니다. 나 역시 많은 순간 누구의 글을 읽고 느낀 진동을 말로도 글로도 전하지 않고 침묵했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기가 더 어려운 일이다. 확신을 얻지 못한 것을 패배라고 한다면, 나의 패착은 확신의 근거를 엉뚱한 곳에서 찾아 헤맸다는 점이다. 누가 반응하든 그렇지 않든, 내 것을 특별히 여겨주든 그렇지 않든, 나의 것을 묵묵히 쌓아야 했다.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다독여야 했다. 지도가 없으면 약도라도 그렸어야 했다. ‘사람은 누구나 나약하니 믿어선 안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으라’던 K교수의 말을 더 자주 떠올려야 했다. 나는 그러지 못했고, 다시 돌아간대도 그럴 확신이 없다. 내가 일을 그만둔 것은 어쩌면 정당하고 또 자연스러운 결과다. 아쉬움이 있지만 그에 별 의미가 없음을 안다.
7. 그래서 나는 이제 나의 마음에 어떤 작은 자극을 주는 글이 있다면 그걸 입밖에 더 자주 꺼내기로 했다. 교류에 더 마음을 열기로 했다. 글 이상의, 영화 이상의 대화를 하기로 했다. 그것들을 씨앗 삼아 나와 상대를 더욱 풍요롭게 가꾸기로 했다. 내가 하게 될 일에 아주 조금이라도 그런 구석이 있다면, 이번엔 내 안에서 확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