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raya Apr 20. 2020

[#하루한줄] 돈과 삶, 돈과 인문학

호모코뮤니타스/고미숙/북드라망/2013




한마디로, 자신의 욕망에 대해서는 어떤 통찰도 하지 않는 것이다. 비판적 지성과 사적 욕망 사이의 극심한 소외 현상이라고나 할까. 요컨대, 공적 담론의 장에선 적대감과 한탄이, 사적 차원에선 무관심과 냉소가 공존하는 기이한 동거가 일상화되고 있다. (17)


부모와 자식 간에 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수단이 오직 돈 밖에 없다 보니 자연스레 10대들에게 돈이 흘러들어 간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어른처럼 소비생활을 한다. 인간관계의 거의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한다. 그래서 늘 돈이 부족하다. 늘 뭔가를 사고 있는데, 늘 뭔가가 부족하다. 소비의 쾌락과 더불어 결핍의 고통이 동시에 덮쳐온다. (26)


대부분은 30대가 되어도 크게 별 볼 일이 없지만, 극소수는 이른바 잘 나가는 정규직에 진입하게 된다. 그런 계층을 일러 소위 중산층이라고 한다. 그럼 이제 살만해진 거 아닌가. 헌데, 어찌 된 영문인지 중산층이 될수록 빚도 늘어난다. 학자금 대출에 카드빚, 주택담보대출, 주식투자 등 한마디로 빚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 연봉이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다들 죽는소리가 체질화되어 버렸다. (27)


그런데 왜 스스로 자신을 치유할 생각은 않고, 일단 병에 걸린 다음 혜택을 받을 생각부터 하는가. 보험료에 쏟는 노력의 반만 들여도 자신의 몸은 자신이 지킬 수 있을 텐데 말이다. (...) 언제나 돈을 꿔주는 사회, 질병과 노후를 세심하게 배려해주는 사회, 이 정도면 참 좋은 세상 아닌가. 그런데 결과는 보다시피 정반대다. 빚은 늘어만 가고 불안은 쌓여만 간다. 보험과 대출이 빚과 불안을 해소해 주는 게 아니라, 거꾸로 거기에 기생하고 있다는 결정적 증거다. (46)


백수들은 정규직을 꿈꾼다. 비정규직 역시 정규직을 꿈꾼다. 정규직은 대한민국 청년들의 야망이자 꿈이다. 사회적 실천이라거나 자아의 구현 따위를 위해서가 아니다.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수입 때문이다. 이것이 정규직을 선호하는 거의 유일한 이유다. 헌데, 정규직 진입에 성공한 이들, 곧 승자들은 어떻게 사는가? 한마디로 죽지 못해 산다. 농담이 아니다. 피 말리는 경쟁 속에서 생의 의지를 헌납한 채 살아간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직장은 삶의 터전이라기보다는 죽어가는 현장이다. (52) -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 크리스티안 노스럽 / 한문화 / 2000 


소위 골드미스들 가운데는 주말마다 명품을 바리바리 사서 장롱에 처박아 두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오직 물건을 사는 그 순간만을, 자신의 구매력을 만천하에 과시하는 그 순간만을 즐기는 것이다. (53) - 실제로 이런 사람이 있었다. 가방을 모아서 쌓아두는, 그러나 언제나 불평불만 투성이었다. 


요컨대 우리 시대에 사회적 관계는 쇼핑과 회식을 통해서만 구성된다. 뭔가 관계를 맺으려면 이 회로를 따라 움직여야만 하는 것이다. 해완이 말처럼 우리 시대에 친구란 함께 소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연애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연애야말로 화폐 권력의 주요 타깃이니까. 각종 데이며 이벤트에서 일상적 데이트에 이르기까지 연애의 기승전결을 주재하는 건 어디까지나 화폐다. (57)


고대 그리스의 현명한 왕 미다스는 화폐가 발명된 것을 알고 화폐를 손에 들고 들여다봤는데, 그 순간 끔찍한 예감에 휩싸여 들고 있던 화폐를 엉겁결에 떨어뜨리며 이렇게 외쳤다. "이 화폐라는 것은 대지를 죽을 것이다!" 미다스 왕은 화폐 그 자체가 대지에 대한 저주라는 것을 직감했던 것. 과연 그의 예언은 적중하였다. 화폐는 탄생하자마자 마주치는 모든 것들 -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삶이든 가치든 - 의 고유성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66)


일찍이 일본 근대 문학의 아버지 나쓰메 소세키가 언명한 대로 현대인은 자의식의 화신이다. 자의식이란 일종의 의식의 비만에 해당한다. 육체적 비만도 문제지만 이 정신의 비만도 존재를 한없이 탁하고 무겁게 만든다. 그런데 몸을 많이 쓰게 되면 이 이중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 (...) 타자와 소통하는 능력, 그것이 곧 배짱이다. 따라서 배짱을 키우려면 하체를 최대한 움직여야 한다. 그러니 몸고생이야말로 여러모로 행운인 셈이다. 이런 마음가짐만 있다면 그렇게 죽어라고 정규직을 열망할 필요가 없다. 그보단 젊을 적에 거리에서 인생을 제대로 배우겠다고 발심을 하는 게 더 낫다. 20대에 이미 철밥통을 차고앉아 평생 똑같은 직장에 비슷한 일만 해야 한다면 그게 더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까. (89)


현대인의 일상의 도처에 마일리지와 쿠폰, 그리고 할인 세일 따위가 촘촘히 박혀 있다. 거의 모든 희로애락이 그 경로를 따라 움직인다. 마치 이 기회를 놓치면 엄청 손해 볼 것 같은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이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라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말이다. (91)


재테크와 처세술은 성공할수록 사람들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거라면, 가난뱅이의 기술은 익히면 익힐수록 사람에 대한 이해가 풍부해진다. 사람들 속에 섞이지 않고서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처지니 당연하다. (...) 이 노하우의 핵심은 그 순간 자신이 철저히 삶의 주인이 된다는 데 있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주인이 되는가? 그러자니 온갖 무형의 가치들을 총동원해야 한다. 정서와 인맥, 유머 등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무형의 가치들. 가난뱅이가 행복하게 살려면 이걸 활용하는 것 말곤 도리가 없다. 화폐가 잠식해 버린 삶의 다양한 가치들을 되살려 내는 것, 그거야말로 화폐에 대한 통쾌한 복수다. (94)


미다스의 손이 모든 걸 화폐화 해 버린다면, 브리콜라주는 그 반대다. 최소한의 화폐로 다양한 삶을 연출해 낸다. 다다익선에 한방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 가치와 효용성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돈놀이의 진수다. (120)


비결은 간단하다. 소비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집을 늘리지도, 자가용을 사지도 않았고, 기타 다른 소비 역시 거의 없었다. 공부가 생업이니 쓸 시간이 없기도 했고, 쉽게 말해 쓰지를 않았으니 모일 수밖에 (...) 재산이 많은 것과 풍요롭게 사는 것은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돈을 많이 벌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가난한 삶, 이것이 쇼핑과 부동산에 붙들려 있는 우리 시대 중산층의 풍경이다. (134)


젊은이가 고용주의 마음에 들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는 설명에 한마디로 역겨움을 느낀다. 우리 인간의 삶이란 고귀한 것이어서 취업시장에 나가기 위해, 또는 인생을 고용주를 위해 바치느라 커버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136)


당신의 일을 생명에너지로 환살할 때, 어느 정도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계산해 본다. 고된 노동으로 고갈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서 값비싼 휴가와 빈번한 병치레를 요구한다면 결국 당신은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138)


무하마드 유누스의 진단대로, 가까운 장래에는 모든 사람들이 평생 두서너 개씩의 직종을 바꿔 가며 살아야 하는 세상이 올 것이다. 이에 따라 개인이 혼자 독립해서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보다 빈번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젠 정말 홀로서기를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창안되어야 할 것이다.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고 순전히 내 힘으로 먹고살고 일을 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호모-에렉투스가 되는 길들이. (141)


학교가 저지른 가장 나쁜 일은 이 배움의 장에 교환 법칙을 새겨 넣은 짓이다. 근대 이후 사람들은 뭔가를 배우려면 학교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여,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이 공부라는 생각, 그리하여 학교를 마치면 스스로의 힘으로 공부를 한다는 생각을 숫제 망각해 버린다. (168)


중요한 것은 삶이고 자유인 것이지 조직 자체가 아니다. 조직을 위해 공동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주체들이 잘 살기 위해서 다방면으로 네트워킹을 하다 보니 공동체가 된 것뿐이다. 이 점을 결코 혼동해선 안된다. (180)


농사가 땅을 일궈서 먹고사는 노동이라면, 글쓰기는 마음의 대지를 일구는 노동이다. 농부들이 곡식을 수확하여 세상에 유통시키는 것처럼 지식인들도 글과 책을 통해 마음의 양식을 널리 순환시켜야 한다. 누구든 스스로의 힘으로 먹고살 수 있어야 하늘 아래 머리 굽히지 않을 수 있는 법, 지식인에게 그 길은 오직 글쓰기뿐이다. (188)


누구나 평생 돈을 만지며 살아간다. 그런 우리들에겐 돈이 일상이고 일상이 곧 돈이다. 또 돈은 기호이자 언어이다. 이 언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배워야 잘 쓸 수 있다. 돈이라는 언어로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그 언어가 내 일상과 어떻게 만나는지, 나는 할머니부터 이 언의 기술을 배웠다. 어디서든 부지런히 움직이면 밥 굶지 않고 빚지지 않고 살 수 있다. (247)


공자는 나이 삼십이 되어서야 스스로 서게 됐다고 했다.(삼십이립) 스스로 선다는 것은 자신이 발붙이고 살아가는 현장에서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선다는 뜻이다. 공부의 장에서건, 관계의 장에서건, 경제적 장에서건. 한편 정화 스님에 따르면 존재는 자립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모든 것이 인연으로 얽혀 있는 세계에서 어떻게 스스로의 힘만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하지만 스님은 이렇게 덧붙이신다. 자신이 온전히 자기 삶으로 충만해야 내 인연의 장까지 청정해진다.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만드는 훈련은 이 인연장에서 이루어진다. 공자님의 말씀이건 스님의 말씀이건 핵심은 하나다. 어떻게 우리는 스스로의 삶에서 주인이 될 것인가. (...) 벌거나 쓰거나, 어떻게 더 많이 벌고 어떻게 더 많이 쓸 수 있을까. 이것이 우리들의 고민이다. 여기엔 돈이 관계를 통해 오고 간다는 것, 돈을 쓰는 방식이 곧 내 삶의 방식이라는 자각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돈은 그냥 돈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경제적 언어이자 관계다. 이 언어의 속살을 들여다봐야 그것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장으로 진입할 수 있다. 돈과 삶, 돈과 인문학, 그것은 그리 멀지 않은 관계다. (263)



*읽을거리

1.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 크리스티안 노스럽 / 한문화 / 2000 

2. 화폐, 마법의 사중주 / 고병권 

3.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 / 나카자와 신이치

4. 가난뱅이의 역습/마쓰모토 하지메/이루/김경원 옮김

5. 버리고, 행복하라/비노바 바베 / 산해 / 김문호 옮김

6.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무하마드 유누스 

7. 학교 없는 사회/이반 일리히

8. 비노바 바베/칼린



매거진의 이전글 [#하루한줄] 이해는 언제나 비언어적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